2025년 새해 첫 출근길, 유럽발 뉴스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EU 공급망 실사법 CSDDD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다는 소식이었다. 물류업계에 몸담은 지 십여 년, 이런 규제 소식들을 수없이 접해왔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한 규제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꿀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마신 아침 커피 한 잔도 생각해보면 참 복잡한 여정을 거쳐 내 손에 도달한다. 남미의 커피 농장에서 시작해 로스터리를 거치고, 물류센터에서 분류되어 트럭에 실려 카페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기계들의 움직임이 있었고, 연료가 소모되고 탄소가 배출됐다. CSDDD는 바로 이런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고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다.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길고 복잡한 이름이지만, 그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업들이 자신의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 침해는 없는지, 환경 파괴는 일어나지 않는지, 그 모든 것을 살펴보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막막했다. 우리가 다루는 물류망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 번의 배송을 위해서도 수십 개의 업체가 관여하고, 수백 개의 프로세스가 연결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런 변화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마비, 수에즈 운하 봉쇄 사태, 그리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더 이상 단순한 비용 효율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변화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하나는 도전으로서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회로서의 관점이다.
먼저 도전의 측면을 살펴보자. CSDDD의 적용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2026년에는 직원 5천 명 이상, 매출 15억 유로 이상의 대기업부터 시작해서, 2028년에는 직원 천 명 이상, 매출 4억 5천만 유로 이상의 기업까지 확대된다.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고객들의 요구로 인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류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부터 트럭이 내뿜는 배기가스까지, 모든 것을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협력업체들의 배출량까지 포함한 전체 공급망의 탄소 발자국을 관리해야 한다.
어느 날 오후, 우리 회사의 지속가능성 담당자와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데이터가 없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부터가 엄청난 일이에요." 그의 말이 맞다. 정확한 측정 없이는 효과적인 관리도, 의미 있는 개선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전이 있는 곳에는 항상 기회도 있다. 지속가능성 관리 역량을 일찍 갖춘 기업들은 분명히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들이 점점 더 환경을 고려한 선택을 하고 있고, 투자자들도 ESG 경영을 중시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CSDDD 준비는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니라 미래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탄소중립 물류'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전기 트럭, 수소 연료전지 선박, 재생에너지 기반 물류센터 등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서비스 영역도 생겨나고 있다. 지속가능성 컨설팅, 환경 데이터 분석, 공급망 투명성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어제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 모든 변화가 결국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외부의 압력이 있어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다.
기술의 발전도 우리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IoT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AI가 최적의 경로를 찾아 연료 소모를 줄여준다. 블록체인 기술은 공급망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기술들이 결합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CSDDD 대응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고객사, 협력업체, 정부기관, 국제기구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업계 전체가 함께 표준을 만들고,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주 업계 세미나에서 한 전문가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이제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시대입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편이에요." 그의 말이 맞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는 인류 공통의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최근 우리 회사에서도 지속가능성 전담 팀을 새롭게 구성했다. 경영진부터 현장 직원까지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었고, 협력업체들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평가하고 개선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정확한 데이터 수집 방법론, 검증된 소프트웨어 솔루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등.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나씩 해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업계 전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2026년, 이제 1년 남짓한 시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되고,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위기가 될 것이다.
어제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어떤 세상이 될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물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까?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나도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CSDDD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는 변화의 촉매제다. 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 측정, 투명한 공급망 관리, 혁신적인 기술 도입을 통해 CSDDD 시대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기업이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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