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이 얼마나 아프고 있는지를. 매일 아침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이 예전만큼 푸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물류업계가 이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물류&운송산업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에서 일하며 매일 마주하는 숫자들은 때로는 절망적이고, 때로는 희망적이다. 전 세계 5,000개 이상의 기업이 SBTi 목표를 설정하며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치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지는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인증은 단순한 환경 인증서가 아니다. 이것은 기업이 지구에 쓰는 진정한 러브레터이며,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약속의 메시지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특히 물류·운송 기업들과 함께 일하며 느끼는 것은, 복잡한 공급망과 다양한 배출원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들의 고민이다. 마치 거대한 퍼즐을 앞에 두고 첫 번째 조각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 답답함이랄까.
그렇다면 이 복잡한 여정의 첫 걸음은 어떻게 떼어야 할까.
과학이 말하는 목표의 힘
SBTi의 핵심은 파리협정의 1.5℃ 목표에 부합하는 탄소감축 목표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설정하는 것이다. 이 말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매우 단순한 진리를 담고 있다. 우리가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려면, 각 기업이 얼마나 탄소를 줄여야 하는지 과학이 정확히 계산해준다는 것이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Scope 1, 2, 3라는 용어를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이 숫자들이 그저 복잡한 분류 체계로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법인지 깨닫게 되었다.
Scope 1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는 배출량이다. 트럭이 달리면서 뿜어내는 배기가스, 물류센터에서 사용하는 보일러가 태우는 연료까지. 이는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Scope 2는 전력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다. 물류센터의 불빛,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는 전력, 사무실의 에어컨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까지 우리의 책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Scope 3, 이것이 물류업계에서 가장 큰 도전이다. 공급망 전체의 간접 배출량을 의미하는 이 영역은 종종 전체 배출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가 운송하는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우리와 협력하는 다른 물류업체에서, 심지어 우리가 구매하는 사무용품을 만들면서 발생하는 배출량까지 포함한다.
2025년 현재 SBTi는 Scope 3 배출량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에게 반드시 이 영역의 목표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과도한 요구처럼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정한 탄소중립은 우리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차근차근
SBTi 인증 취득 과정은 마치 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 단계인 커밋(Commit)은 여행을 떠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CEO와 최고경영진이 중심이 되어 조직 전체에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순간이다. 이 단계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감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순간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감정이다.
두 번째 단계인 개발(Develop)에서는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된다. 과거 3년간의 모든 배출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이다. 차량 운행 데이터, 연료 사용량, 전력 소비량 등 수많은 숫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IoT 센서와 텔레매틱스 시스템 같은 디지털 기술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확한 데이터 없이는 정확한 목표 설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인 제출(Submit)은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SBTi에 공식적으로 제출하여 검증받는 과정이다. 6개월에서 12개월이라는 긴 검증 기간 동안 우리는 목표의 과학적 근거와 달성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마치 논문 심사를 받는 것과 같은 긴장감과 함께, 우리의 노력이 과학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뿌듯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마지막 단계인 실행(Act)에서는 승인된 목표를 실제로 실천하는 일이 시작된다. 매년 CDP를 통해 진행 상황을 공개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성과를 투명하게 보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인증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속적인 개선과 실천이 진정한 목표임을 깨닫게 된다.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SBTi 인증을 취득한 후의 여정은 오히려 더 흥미롭다. 인증서를 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물류업계에서 탄소감축을 실현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적용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전기차와 수소차로의 전환, AI를 활용한 최적 경로 설정, 물류센터 옥상의 태양광 패널, 실시간 배출량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나씩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Scope 3 관리는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급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함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며, 때로는 어려움도 함께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 지구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월별, 분기별로 성과를 분석하고 점검하는 일은 때로는 지루할 수 있지만, 숫자가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임직원들이 하나둘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천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단순히 인증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선택
SBTi 인증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환경 인증서 하나를 더 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ESG 경쟁력 강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며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도전적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친환경 솔루션들이 하나씩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불가능해 보였던 탄소중립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SBTi 인증은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변화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도 나는 사무실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는 그 하늘을 다시 푸르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탄소중립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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