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오후의 깨달음

by GLEC글렉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한 장의 보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연간 탄소배출량 현황을 담은 그 문서는 단순한 숫자들의 나열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류업계에서 십여 년을 일하면서 나는 수많은 트럭들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새벽 첫차부터 밤늦게까지, 끊임없이 화물을 나르는 그 차량들 하나하나가 우리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 지구는 조용히 신음하고 있었다는 것을.


탄소 인벤토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왠지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마치 우리 회사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 매일매일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었는지를 기록하는 소중한 기록물 말이다.


서울 본사에서 부산 창고까지 화물을 운송하는 우리 회사의 트럭 한 대가 하루 종일 도로를 달린다. 그 트럭이 소비하는 디젤 연료, 창고에서 사용하는 전기, 심지어 직원들의 출장까지도 모두 탄소 발자국의 일부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바로 탄소 인벤토리의 핵심이다.


국제 표준에 따르면 이러한 배출량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배출원들이다. 회사 소유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사무실 보일러에서 사용하는 가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전력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사업과 관련된 모든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기타 간접 배출량들이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먼저 우리 회사의 모든 배출원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본사 사무실, 전국 각지의 창고, 수십 대의 운송 차량, 그리고 협력업체들까지. 마치 우리 회사의 DNA를 분석하는 것 같았다.


데이터 수집은 정말 세심한 작업이었다. 매월 주유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고, 전력 요금 고지서를 분석하고, 차량 운행 일지를 점검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점차 이런 데이터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GPS 시스템과 운행 기록 장치를 연동했을 때의 일이다. 실시간으로 차량의 위치와 연료 소비량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어떤 경로가 가장 효율적인지, 어떤 운전 습관이 연료를 절약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숫자로만 보던 배출량이 갑자기 생생한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배출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배출계수를 사용했다. 디젤 1리터당 얼마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지, 전력 1kWh당 얼마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지 같은 기준들이 있었다. 이런 계수들을 활용해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데이터였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 방법이 있어도 기초 데이터가 부정확하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 검토 과정을 거쳐 데이터의 품질을 확보하고, 필요할 때는 외부 전문기관의 검증도 받았다.


탄소 인벤토리를 구축한 후에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였다. 매월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전년 동기와 비교하며, 개선 사항을 찾아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마치 건강검진을 받듯이, 우리 회사의 탄소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톤-킬로미터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해서 개선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경쟁사보다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동시에 개선할 여지가 많다는 희망도 생겼다.


특히 운송 부문이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 부분에 집중했다. 친환경 차량 도입, 운행 경로 최적화, 운전자 교육 등을 통해 조금씩이지만 의미 있는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숫자로 확인되는 성과를 볼 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최근에는 IoT 센서와 AI 기술을 활용해서 더욱 정교한 관리를 시도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연료 소비량을 모니터링하고, 인공지능이 최적의 경로를 제안하며, 자동화된 시스템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기술의 발전이 환경 보호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탄소 인벤토리 구축은 단순히 환경 부서의 업무가 아니었다. 경영진의 의지와 전 직원의 참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회계팀이 정확한 연료비 데이터를 제공하고, 운송팀이 운행 기록을 성실히 작성하며, 관리팀이 전력 사용량을 모니터링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의외의 발견을 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환경 보호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도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연료를 덜 쓰면 연료비가 줄어들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전기요금이 절약되며, 최적화된 경로로 운행하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낄 수 있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창밖을 바라본다. 예전과 같은 풍경이지만, 이제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지나가는 트럭 한 대 한 대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탄소 인벤토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존재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편리함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하고 어려울 수 있다. 기업 규모와 복잡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초기 구축에는 서너 달에서 여섯 달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한 번 구축해놓으면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규모가 작을수록 더 빠르고 유연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눈 내리던 그날 오후, 나는 우리 회사의 탄소 발자국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 작은 시작이 언젠가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룰 것이라고.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미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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