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물류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여전히 종이 서류를 들고 분주히 오가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었다.
최근 물류 경영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2024년 문제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변화에 대한 절박함의 표현이다.
제조업 현장을 둘러보면 여전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하도급업체의 약 70퍼센트가 종이와 엑셀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수치가 2022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도구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회귀'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다 포기하고 모국어로 돌아가는 것처럼, 현장은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세 가지 주요 원인이 숨어있다. 현장 적합성 부족으로 인한 비효율, 과도한 학습 비용, 그리고 시스템 간 연동 문제다. 새로운 기술이 현장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장은 기술의 문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었다.
2024년 4월, 트럭 운전자의 시간외 근로시간 상한 규제가 시행되면서 물류업계에 새로운 파도가 밀려왔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운영 방식을 재고하게 만드는 변곡점이었다.
조사 결과는 더욱 심각한 현실을 드러냈다. 절반 이상의 기업이 인력 부족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전년 대비 오히려 감소한 수치였다. 네 기업 중 하나는 사내 인재의 고령화로 인한 변화 저항을 겪고 있었고, 세 기업 중 하나는 여전히 디지털 전환에 착수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사내 인재의 고령화로 인해 개선이나 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크게 증가한 것은 물류업계가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변화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변화를 이끌 동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커머스의 급성장은 고객의 기대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과거 이틀 배송이 기적처럼 여겨졌던 시대는 이미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이제 고객들은 당일 배송, 심지어 몇 시간 내 배송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61퍼센트가 익일 배송을 원하지만 추가 비용은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물류업계에게 '더 빠르게, 그러나 더 저렴하게'라는 모순적 과제를 안겨준 셈이다.
실시간 추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고객들은 주문부터 배송 완료까지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기를 원한다. 단순한 위치 정보를 넘어서 배송 상태, 예상 도착 시간, 배송원 정보까지 포함하는 완전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의 폭발적 성장도 새로운 변수다. 유럽 온라인 쇼핑객의 거의 절반이 중국 판매자로부터 구매하고 있으며, 테무와 쉬인 같은 플랫폼이 국경 간 쇼핑을 일상화시켰다. 연간 수십억 개의 소포가 국경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기존의 아날로그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복잡성을 감당할 수 없다.
ESG 경영의 확산과 함께 물류업계의 탄소배출량 관리가 필수 요구사항으로 부상했다. 2050년 넷제로 달성 목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류 기업들은 운송 경로 최적화를 통한 연료 효율성 향상, 친환경 차량 도입,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 및 보고 시스템 구축이라는 삼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들이다.
맥킨지의 최신 조사는 희망적인 신호를 보여준다. 물류 기업의 85퍼센트 이상이 디지털 프로젝트를 통해 가치를 창출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기업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인정했다.
성공한 기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단계적 접근 방식으로 핵심 프로세스부터 순차적으로 디지털화를 진행했고, 경험과 직감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의사결정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기술 도입과 함께 직원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Samsung SDS의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레거시 물류 제공업체들이 느리고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으로 인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실시간 견적과 디지털 기반 화물 예약, 원활한 데이터 통합 같은 첨단 기능을 갖춘 디지털 물류 제공업체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물류센터를 떠나며 든 생각이 있다.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그곳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오래 지연할수록 더 뒤처진다"는 업계 전문가들의 경고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현실적 조언이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2024년의 위기는 단순한 일시적 어려움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아날로그 시스템의 한계가 명확해진 지금, 디지털 전환을 통한 혁신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남은 것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앞서나갈 용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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