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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 시장에서 살아남기

배출권 거래제 Part 5.

by GLEC글렉

이론은 알겠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 해요?


세미나가 끝나고 한 기업 실무진이 다가와서 물었다.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지만, 여전히 막막하다는 표정이었다. 할당량은 어떻게 받는지, 언제 거래해야 하는지, 실무적인 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제도를 이해해도 실전은 다르다. 9년간의 K-ETS 운영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노하우들이 있다. 오늘은 그 실전 경험들을 공유해보려 한다.


첫 번째 관문, 할당량 받기

할당신청서, 생각보다 중요하다

많은 기업들이 할당신청서를 단순한 서류 작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1년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서다.


과소 신청하면 1년 내내 배출권 부족에 시달리고, 과대 신청하면 정부 신뢰도가 떨어진다.


실제 사례를 보자.


A화학회사는 2019년 할당신청서에 생산량을 보수적으로 적었다. 혹시나 해서 낮게 잡았는데, 실제로는 시장 상황이 좋아져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결국 연말에 배출권이 부족해져서 비싼 가격에 급매수해야 했다.


반대로 B철강사는 2020년 코로나19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평년 수준으로 신청했다.


실제 생산량은 크게 줄어들었는데 할당량은 그대로여서, 많은 배출권이 남았다. 물론 팔아서 수익을 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과다 할당으로 볼 수 있다.


핵심은 정확한 예측

할당신청서 작성의 핵심은 정확한 생산량 예측이다. 하지만 1년 후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몇 가지 팁이 있다.


첫째, 과거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하라. 최근 3년간의 생산량 트렌드, 계절성, 시장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둘째, 영업팀과 긴밀히 협력하라. 환경팀 혼자서는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세 번째 관문 : 거래 전략과 타이밍

배출권 시장의 리듬을 읽어라

배출권 거래에는 분명한 패턴이 있다. 9년간 시장을 지켜본 결과, 성공하는 기업들은 모두 이 패턴을 잘 활용한다.


연초에는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가격 변동성이 커진다. 특히 11월부터는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C정유사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연말에 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21년 11월에 가격이 갑자기 2배로 뛰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미리미리 사두는 게 답이라는 걸."


실제로 2021년 배출권 가격은 11월 한 달 만에 25,000원에서 40,000원까지 올랐다. 연말 물량 부족을 예상한 투기적 거래가 영향을 미쳤다.


성공 사례 : D화학의 분할 매수 전략

D화학은 독특한 전략을 썼다. 연간 필요 물량을 4분할해서 분기별로 나누어 샀다. 1분기에 25%, 2분기에 25%,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가격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해요. 대신 평균 매입가를 낮추는 데 집중했죠." D화학 환경팀장의 설명이다.

이 전략의 효과는 놀라웠다. 2022년 한 해 동안 이들의 평균 매입가는 시장 평균보다 15% 낮았다. 가격이 오를 때는 손해를 보지만, 내릴 때는 더 큰 이익을 봤기 때문이다.


실패 사례: E철강의 몰빵 전략

반대로 E철강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했다. 시장 분석을 통해 가격이 가장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1년치를 몰아서 사는 전략이었다.


2020년에는 성공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워질 것을 예상하고 3월에 1년치를 샀는데, 실제로 그해 최저가로 샀다.


하지만 2021년에는 큰 손실을 봤다. 6월에 가격이 바닥이라고 판단해서 대량 매수했는데, 그 후 가격이 계속 올라서 연말에는 거의 2배가 됐다.


"시장 타이밍을 맞추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제는 분할 매수로 전환했습니다." E철강 담당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리스크 관리 : 보험의 개념으로 접근하라

배출권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다. 많은 기업들이 수익을 내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본다.


F전력회사는 독특한 접근을 했다. 필요 물량의 80%는 연초에 확보하고, 나머지 20%는 상황을 보며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트레이더가 아니에요. 안정적인 사업 운영이 목표죠. 배출권도 보험료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F전력 환경담당 임원의 철학이다.


이런 보수적 접근 덕분에 F전력은 9년간 한 번도 연말 급매수를 한 적이 없다.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예측 가능한 비용 관리가 가능했다.


네 번째 관문 : 조직 운영과 전문성 확보

환경팀의 새로운 역할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되면서 환경팀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규제 대응이 주된 업무였다면, 이제는 사업 전략에도 깊이 관여해야 한다.


G자동차의 환경팀은 이제 매주 경영진 회의에 참석한다. 배출권 가격 동향이 투자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공장 건설을 검토할 때도 우리 의견을 묻습니다. 배출권 비용까지 계산해야 진짜 수익성을 알 수 있거든요." G자동차 환경팀장의 말이다.


전문성 확보의 딜레마

하지만 전문성 확보는 쉽지 않다. 배출권거래제는 환경, 경제, 금융이 모두 얽힌 복합적인 영역이다. 환경 전공자가 금융을 이해하기도, 금융 전공자가 환경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H화학은 독특한 해결책을 찾았다. 환경팀과 재무팀이 TF를 구성해서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소통이 어려웠어요. 서로 쓰는 용어부터 달랐거든요.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니까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H화학 TF팀장의 경험담이다.


외부 전문가 활용도 좋은 방법이다. I석유화학은 배출권 전문 컨설팅사와 연간 계약을 맺어서 월 1회 정기 리뷰를 받는다. 비용은 들지만 전문성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다섯 번째 관문: 2030년 대비와 국제 연계 준비

변화의 쓰나미가 온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이 목표 달성을 위해 K-ETS는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있다. 할당량은 더 줄어들고, 대상 업종은 늘어날 예정이다.


J시멘트는 이미 대비를 시작했다. 2025년부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2027년에는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설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2030년에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배출권 가격이 지금의 몇 배가 될 수도 있거든요." J시멘트 전략기획팀장의 위기의식이다.


국제 탄소시장 연계도 중요한 변수다. EU ETS와의 연계가 추진되고 있고, CORSIA(국제항공 탄소상쇄제도)도 확대될 예정이다.


K항공은 이미 국제 탄소크레딧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미리 경험을 쌓아두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배출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국제시장도 이해해야 합니다." K항공 환경담당자의 설명이다.


실무 체크리스트 : 연간 일정과 핵심 관리 포인트

배출권거래제는 1년 주기로 돌아간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모두 체계적인 연간 계획을 갖고 있다.

1분기 : 계획 수립과 기초 구매

1월 : 전년도 실적 정리 및 올해 전략 수립

2월 : 할당계획 검토 및 초기 물량 확보(연간 필요량의 20-30%)

3월 : 배출량 모니터링 시스템 점검


2분기 : 안정화 단계

4월 : 1분기 배출량 분석 및 연간 전망 수정

5월 : 추가 물량 확보(누적 50% 수준)

6월 : 중간 점검 및 하반기 전략 조정


3분기 : 본격 대응

7월 : 상반기 배출량 확정 및 연간 예측 정밀화

8월 : 배출권 확보 가속화(누적 70-80% 수준)

9월 : 시장 동향 모니터링 강화


4분기 : 마무리 단계

10월 : 최종 배출량 예측 및 부족분 파악

11월 : 부족분 확보 완료

12월 : 여분 물량 처리 및 내년 준비


성공 기업들의 공통점: 9년간의 관찰을 통한 인사이트

9년간 수많은 기업을 지켜보며 성공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조기 대응 성공하는 기업들은 모두 일찍 움직인다. 연말에 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연초부터 차근차근 준비한다.


둘째,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감에 의존하지 않는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한다.


셋째, 리스크 관리 우선 수익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한다. 큰 돈을 벌려고 하다가 큰 손실을 보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관리한다.


넷째, 조직적 대응 환경팀 혼자가 아니라 전사적으로 대응한다.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된다.


다섯째, 지속적 학습 시장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한다. 외부 세미나 참석, 전문가 자문, 동종업계 정보 교류 등을 활발히 한다.


마무리 : 개인적 소감과 다음 편 예고

9년간 K-ETS를 지켜보며 느낀 것은, 이 제도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모든 기업이 헤맸다. 할당량은 어떻게 받는지, 배출권은 언제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기업들의 학습 능력이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공 경험을 체계화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는 더 클 것이다. 2030년 NDC 목표, EU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국제 탄소시장 연계 등 새로운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변화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배출권거래제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탄소중립 시대, 배출권거래제는 어디로 가는가"다. 개인적인 전망과 함께, 실무진들이 꼭 알아야 할 미래 대비책들을 정리해볼 예정이다.


배출권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흐름을 읽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험난한 여정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통찰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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