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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시대, 배출권거래제는 어디로 가는가

배출권거래제 Part 6.

by GLEC글렉

2050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4살인 조카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어떤 세상이 될까? 탄소중립이 정말 실현될까? 배출권거래제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 읽은 보고서 때문이었다. 세계은행이 2030년까지 글로벌 탄소시장이 1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대비 10배 이상 성장하는 것이다.


1조 달러. 한국의 GDP가 2조 달러 정도니까, 그 절반에 해당하는 거대한 시장이 탄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건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탄생이었다.


글로벌 탄소시장의 대폭발

숫자로 보는 변화

2005년 109억 달러로 시작된 글로벌 탄소시장이 2021년 7,600억 유로까지 성장했다. 16년 만에 50배 이상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진짜 폭발이 시작된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정도만 탄소가격제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2030년에는 50% 이상, 2050년에는 8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에 가격이 없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참여자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새로운 참여자들의 등장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부와 대기업들의 게임이었다면, 앞으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들이 탄소 트레이딩 데스크를 만들고 있다. 연기금과 보험회사들도 탄소 투자를 늘리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개인 투자자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EU에서는 이미 탄소 ETF가 거래되고 있고,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조만간 우리도 스마트폰으로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국제 연계의 가속화

성공 사례들

지금까지 국제 연계는 제한적이었다. EU와 스위스, 캘리포니아와 퀘벡 정도가 연결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성공 사례를 보면 희망적이다. EU-스위스 연계는 2020년 시작된 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두 시장의 가격이 수렴하면서 더 큰 시장의 이익을 누리고 있다.


캘리포니아-퀘벡 연계는 더 인상적이다. 2014년 시작된 후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 색깔이 다른 두 지역이 성공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동북아의 가능성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동북아 연계 가능성이다.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다. 정치적 갈등, 제도 차이, 경제 발전 수준 격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 워낙 크다 보니, 결국은 실현될 것 같다.


상상해보자. 한중일 3국이 연결된 통합 탄소시장. 연간 100억 톤 이상의 CO2가 거래되는 거대한 시장. 이렇게 되면 아시아가 글로벌 탄소시장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과 메커니즘

자연이 만드는 탄소시장

가장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자연 기반 해법의 확산이다. 산림, 농업, 해양 등 자연 생태계가 탄소시장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마존 열대우림 보전 프로젝트에서 나온 탄소크레딧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는 시대가 됐다. 인도네시아 맹그로브 복원 사업에서 나온 크레딧을 한국 기업이 구매하기도 한다.


위성 기술과 AI의 발전으로 산림 탄소 모니터링이 정확해지면서, 자연 기반 크레딧의 신뢰성도 크게 향상됐다. 앞으로는 더 많은 자연 생태계가 탄소시장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공급원

직접공기포집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대기 중 CO2를 직접 빨아들여서 저장하는 기술이다. 아직은 비싸지만, 기술 발전으로 비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Climeworks라는 회사는 이미 상업적으로 직접공기포집을 운영하고 있다. 톤당 1,000달러 정도로 비싸지만, 2030년에는 100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면 탄소시장에 새로운 공급원이 생긴다. 자연적 감축과 기술적 제거가 함께 만드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혁신

블록체인 기술도 탄소시장을 바꾸고 있다. 탄소크레딧의 투명성과 추적가능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Xpansiv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기반 탄소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크레딧의 생성부터 소각까지 모든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해서 투명성을 보장한다.


디지털 트윈 기술도 유용하다.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출량 예측과 감축 시나리오 분석이 가능해진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도 일반화될 것이다.


부문별 확대 전망

교통부문의 본격 진입

지금까지 교통부문은 배출권거래제에서 소외됐다. 하지만 이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항공업부터 본격적으로 포함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의 CORSIA 제도가 2024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EU는 역내 항공편에 ETS를 적용하고 있다.


해운업도 곧 따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해사기구에서 글로벌 해운업 탄소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2030년대에는 선박들도 배출권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른다.


육상 교통은 더 복잡하다. EU는 2027년부터 교통 및 건물 부문에 별도의 ETS를 도입할 예정이다. 결국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마다 탄소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건물부문의 확대

건물 부문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대형 건물 중심이지만, 앞으로는 중소형 건물까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한 건 주거용 건물까지 포함하려는 움직임이다. EU는 장기적으로 가정용 난방도 ETS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집에서 보일러를 틀 때마다 탄소 비용을 지불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서민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것 같다.


농업과 토지이용

농업 부문도 서서히 포함되고 있다. 축산업의 메탄 배출, 벼 재배의 메탄 배출 등이 논의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25년부터 농업 부문을 ETS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소와 양이 트림을 할 때마다 농부가 돈을 내야 하는 세상이 온다는 뜻이다. 상상만 해도 신기하다.


토지이용 변화도 중요하다. 산림을 농지로 바꾸거나, 농지를 도시로 개발할 때도 탄소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CBAM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EU CBAM의 파급효과

2023년 10월부터 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아직은 보고만 하는 단계지만, 2026년부터는 실제로 돈을 내야 한다.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실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중국에서 만든 철강을 EU로 수출할 때 탄소 비용을 내야 한다. 인도에서 만든 시멘트도 마찬가지다. 결국 전 세계가 탄소 효율성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따라하기

미국, 캐나다, 영국도 비슷한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결국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탄소국경조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개발도상국들도 어쩔 수 없이 자체 탄소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 CBAM을 피하려면 국내에서 탄소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 세계가 탄소가격제를 도입하는 도미노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2030년대에는 탄소 비용 없이 사업하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금융시장과의 융합

탄소 파생상품의 등장

탄소가 거래되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파생상품이 따라온다. 이미 EU에서는 탄소 선물과 옵션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곧 탄소 파생상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가격 변동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탄소 보험도 등장할 수 있다. 배출권 가격이 예상보다 많이 오르면 보험금을 받는 상품 같은 것들 말이다.


ESG 투자와의 연계

ESG 투자 열풍과 함께 탄소 관련 투자상품도 급증하고 있다. 탄소 ETF, 탄소 펀드 등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도 탄소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탄소 ETF를 사서 탄소 가격 상승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기업 가치 평가에도 탄소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탄소 효율성이 높은 기업은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받고, 탄소 리스크가 큰 기업은 디스카운트를 받는다.


한국 K-ETS의 미래

단기 개선 과제

우리 K-ETS도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건 시장 효율성 개선이다.


유상할당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 10%에서 2030년까지 30% 정도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시장안정화 메커니즘도 도입해야 한다. EU의 시장안정화 예비분 같은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가격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금융기관의 경매 참여도 허용해야 한다. 시장 유동성을 높이려면 다양한 참여자가 필요하다.


국제 연계 추진

장기적으로는 국제 연계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EU와의 연계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CBAM 시대에 우리 수출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K-ETS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제도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동북아 탄소시장 구상도 흥미롭다. 한중일 3국이 연결된다면 세계 최대의 탄소시장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기반 거래 시스템, AI를 활용한 배출량 예측,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 등을 도입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배출권을 거래하고, AI가 최적의 거래 타이밍을 알려주는 시대가 올 것이다.


새로운 투자 기회들

탄소 전문 기업의 부상

탄소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생기고 있다.


탄소 자산 관리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기업들의 배출권 포트폴리오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탄소 데이터 분석 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배출량 예측, 가격 분석, 리스크 관리 등을 위한 데이터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탄소 제거 전문 기업들도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직접공기포집,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 등의 기술을 상용화하는 스타트업들이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 있다.


전통 산업의 대전환

전통 산업들도 탄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석유회사들이 탄소 포집저장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셸, BP, 엑손모빌 같은 메이저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탄소 중립 제품으로 승부한다. 탄소 발자국이 적은 제품이 프리미엄을 받는 시대가 됐다.


금융업계는 탄소 전문 부서를 신설하고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탄소가 새로운 자산군으로 자리잡고 있다.


도전과 리스크

기술적 도전

가장 큰 도전은 측정과 검증의 정확성이다. 탄소시장이 커질수록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국제 표준화도 시급하다.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호환성을 위한 글로벌 표준이 필요하다.


사회적 우려

탄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증가는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 서민들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지 고민이 필요하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대기업은 배출권을 사서 해결하고, 중소기업은 감축 투자를 해야 하는 불공정함이 있을 수 있다.


정치적 리스크

탄소 정책은 정치적 색깔이 강하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 있고, 이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국제 협력도 정치적 갈등에 영향을 받는다. 미중 갈등, 러시아 제재 등이 탄소시장 연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50년을 상상하며

2050년이 되면 어떤 세상이 될까?


아마도 탄소 비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커피를 마셔도, 비행기를 타도, 집을 지어도 모든 일에 탄소 비용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주력이 되고, 전기차가 보편화되고, 건물들은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것이다.


탄소시장은 지금의 주식시장만큼 중요해질 것이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 탄소 가격을 확인하고, 투자 포트폴리오에 탄소 자산을 포함시키는 게 당연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4살짜리 조카가 성인이 되어 탄소 투자로 돈을 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삼촌으로서는 미리 조금씩 가르쳐줘야겠다.


마지막 생각

배출권거래제는 이제 환경 정책을 넘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앞으로 30년간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이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과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이다.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출권거래제가 있다. 우리 모두가 이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빨리 준비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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