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으면 막 짜증 나고 성질나게 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도 같이 없으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하루종일 머릿속에 그 사람 생각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연애할 때의 감정이랑 닮지 않았나 싶어요.
주변에 드라마처럼 사랑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전 살면서 그런 사람 실제로는 처음 봤거든요. 그 친구가 연애할 때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정말 세상에 둘밖에 안 보이는구나. 사랑에 빠지면 주변의 공기가 이렇게 바뀌는구나.'를 눈으로 처음보고 엄청 신기해했었어요. 정말 드라마 같더라고요.
전 오히려 연애에 굉장히 둔한 편이라 그렇게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돌아보면 제가 딱 그 친구처럼 행동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니던 회사에서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7년인가 8년 만에 그만두고 나왔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별하면 이렇게 아프겠구나. 정말 미친 듯이 사랑하고 헤어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헛헛함에 몇 날 며칠을 이별노래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정말 온 힘을 다해 사랑하면 헤어지고 나서는 더 이상 아쉬움은 없다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은 다 줬기에, 내 할 수 있는 마음은 다 줬기에 더 이상 미련이 남을 것이 없다고. 그래서 아, 내가 아직 이 일에 미련이 더 남았구나 싶어서 다시 시작했죠.
7년 넘게 미친 듯이 사람에 빠졌던 것 같아요. 일하는 행위 자체에.
그래서 몸살이 나고 아파도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재밌고 막 설레고 그런 감정들이 더 커서 또다시 털고 일어나지고. 하나를 해내고 나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뭐 하나 잘못되면 속상해서 며칠을 이불 뒤집어쓰고 속상해하고 같이 고민하고. 좋은 연애를 하면 내가 그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를 가꾸고 성장시키는데 지난 7년을 돌이켜보면 매일이 부족한 나를 받아주는 연인을 바라보는 눈으로 일을 만나왔더라고요. 그러다 짝사랑이 끝나는 어느 시점이 되면 그제야 멈춰 나를 돌아보고,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자존감이 높지 않았던 사람인 탓인지 늘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해서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아 속상했던 날이 많았어요. 그래서 참 많이 배우러도 다니고 밤새워서 고민도 많이 했고요.
처음 프로젝트 기획안을 쓸 때는 빈 페이지 보면서 며칠을 고민했던 기억도 나요. 그때의 막막함이란 지금 생각해도 답답해요. 레퍼런스 찾아보고 기획서 잘 쓰는 법 막 강의 찾아다니고 다른 지역에서 특강 있다 하면 몇 시간 차 몰고 다녀오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배우러 다녔어요. 그렇게 뭐 하나 배우면 조금 힐링되는 느낌도 들고 그랬으니까 정말 미친 듯이 사랑했던 거 같아요.
잠 안 자도 시안 마무리돼서 넘기면 개운하고, 서버 다운돼서 지원서류 접수 안되었을 때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심장이 쪼여오는 그 느낌이 생생해요. 그런 여러 기억들이 쌓여서 일을 할 때 다른 직원들이나 다른 프로젝트 때는 그런 감정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죠. 그런 게 짬밥이지 않을까요? (웃음)
다시 돌아간 회사에 일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그사이 직원들 간 문제도 많았고, 회사들마다 사연 없는 회사들이 어디 있겠어요 마는 정말 뭔가 휘몰아치는 사건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난 누구고 여긴 어디고 뭐 이런 생각할 틈도 없이 하나 터지면 다음 것 따라오고 겨우 막고 나면 다음 것 따라오고.
그렇게 시간이 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요. 그렇게 허덕허덕 거리는 사이 한국은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전염병 이슈로 그동안 준비했던 플랫폼 사업이 완전 구식으로 바뀌어 버렸고 전면 다시 재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버리고. 설마설마하며 우려했던 일들이 최악의 상황들로 마주하니 와.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진작에 좀 막지, 그때 하지 말지 하는 원망도 잠시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빠져 1년 남짓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참 많이 변했어요. 사람한테 정도 많고 관계에 대해 굉장히 유한 사람이었는데 실효성이 최대 가치인 마냥 모든 것에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더라고요. 많이 냉정해지고 좀 기계적인 사람이 됐죠.
울어서 해결될 일이며 계속 울겠지만 일이 운다고 해결될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조금 더 단단해지기도 한 것 같아요. 조금은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감정을 조금 빼고 한 발자국 뒤에서 상황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아나 싶어요.
어찌 보면 권태기가 온 걸지도요. 그래도 함께한 정이, 그 시간이 의리와 같은 끈끈한 정으로 남아 잘됐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뭐 그런 관계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또 AI가 미친 속도로 빠르게 주단위로 세상이 바뀌고 있어서 잠시 호흡 고르고 다시 또 스위치 올리고 미친 몰입을 해봐야겠지요. 요즘도 관련해서 기사도 찾아보고 논문도 찾아보고 하는 게 꼭 헤어진 연인 SNS 뒤지고 있는 미련한 여자 같기도 한데 다르게 보면 아직 일에 대한 미련이 여전하다는 거니까, 어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