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 시작한 관계를 내가 끝낼 수 없는 아이러니
관계를 시작할 때는 언제나 단순하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시작과 끝에 대한 예측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간결하던 관계에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기울기가 생긴다.
힘의 우위가 만들어지고, 더 좋아하는 쪽이 덜 좋아하는 이들 앞에서 약자를 자처한다.
그 순간부터 관계의 균형은 서서히 무너진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모든 불편함을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그러다 어느 날, 선을 넘었다는 감각이 들면
그동안 눌러두었던 불편함들이 날을 세우며 수면 위로 올라온다.
내가 좋아 시작한 관계였다.
거침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좋아서 시작한 마음에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요구가 당연해지는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는 적당한 불편감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리와 불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한다.
하지만 감정의 소모가 커지는 순간,
‘어느 정도’라는 말에 대한 기준을 묻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단돈 5만 원이 기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5천만 원이 기준이 된다.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 기준을 말하지 못한 채 참아내는 관계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금전적인 거래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 것을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은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가족조차 돈이 오가면 서운함이 남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기준과 경계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규칙을 만든다.
최근, 눈치보지 않고 당당해서 좋았던 사람에게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과 달리 잦아지는 요구와 기대 속에서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관계라면,
내가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때 끝내도 되는 걸까.
시작은 내 마음대로 했어도
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관계라서,
그 질문은 늘 어렵다.
관계에는 감정의 크기보다
힘이 어디로 기울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양쪽의 균형이 유지되는 관계는
비록 연인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자극이 된다.
하지만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관계는
점점 건강해지기 어렵다.
무게를 견디다 지쳐 고개를 숙이는 쪽이 생기고,
누군가는 부담을 짊어진 채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
싫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싫을 수 있다는 인정만으로는
관계의 힘의 균형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늦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