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 맘대로 되나

흘러가는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by 글린더

그 사람을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을 계속 찾아다니며 연습을 했다. 학창 시절 갑자기 찾아온 공황으로 사람을 피하던 내게 아무런 조건 없이 묵묵히 옆에서 편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친구들에게 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마음먹고 사람들 속에서 극복해 보려 마구잡이로 여러 활동들을 시도했다. 처음엔 참석에 의의를 두고 다음엔 5분 버티는 것에 의의를 두고.

그렇게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해져 갈 무렵, 잠시 들른 모임에 약 10여분 자리했던 그곳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스치듯 마주친 인연, 그렇게 스치듯 사라질 줄 알았던 우리는 10년을 만났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유리벽을 쌓고 사람을 만나는 나와 열린 광장처럼 늘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은 처음부터 참 다른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이면서 자기애가 넘치는 그 사람은 무엇을 하든 자신감이 넘쳤다. 배타적이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던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우리는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 않은 연애를 시작했다.


나의 연애는 언제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다. 연애라는 감정보다는 쓰임에 가치를 더 두는 만남을 계속하는 나와의 연애는 언제나 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 불안은 내가 끊임없이 주입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난 네가 나를 필요로 하다 하니 그동안만 곁에 있을게. 그리고 그 쓰임이 다 하면 말해줘 언제든.'

그렇게 늘 떠날 준비를 하고 만나는 사람과의 연애가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까. 난 그 사람을 위하는 척 말을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를 그렇게 긴 시간 그 사람에게 강요해 왔던 것이다. 그걸 그 긴 시간 묵묵히 받아준 그 바보 같은 사람과의 결혼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혼주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결혼은 내 인생에 없는 단어였을 뿐. 단 한 번도 난 평생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라고 외친 적도 없지만 내 삶을 지켜본 내 지인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사람. 그게 나였다.

어쩌면 내 절친의 배신감은 그렇게 쌓여온 '믿음'이 한순간에 깨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애써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잠시 상황을 돌려보니 그럴 수 있는 감정이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발표는 늘 축하보다는 의아함과 황당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그 감정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동쳤던 건, 결혼식 전날의 나 자신이었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더 이상 아니었다.

가족의 확대, 나의 바운더리의 확장이고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닌 '우리'라는 세상의 시작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의 범주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밤새 이 결혼은 무효라고 이건 아닌 거 같다고 수백 번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그렇게 새벽이 왔다.


나하나도 돌보기 힘들어 도망치기 바쁜 내가 '가족'을 만들다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가 다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오래 봐온 친구들이 하나둘 신부대기실로 찾아오고 밖의 어수선한 상황에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혼주석은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하객들이 몰려들고 세상행복해야 할 신부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간간히 사람들의 축하의 말과 웃음소리, 시끄러운 웅성거림들이 마치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순간순간의 찰나들만이 남을 뿐이었다.

이 모든 어수선한 상황이 지금이 도망칠 마지막 기회야라고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조각조각 끊어진 정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신혼여행을 가기 위한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였다.


아.. 끝났구나 결혼식.


내 인생,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버릴 선택을 이미 해버렸구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면 내가 한 선택에는 '책임'을 져야 했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나의 최종 선택은 도망가지 않은 것이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겠지, 창아래 가득한 구름을 한참을 바라보다 강하게 들어오는 빛에 창을 닫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서 더 이상 이유를 찾지 말아야 했다. 그리곤 옆자리에 피곤함에 잠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내가 해야 할,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나의 선택이라면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 했다. 이제는 내가 도망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할 때구나. 잠든 그 사람을 보다 혀를 끌찼다.


'으이그, 바보야.. 바보야.. 대체 어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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