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은 싫은데 갈치조림은 좋다
어쩌다 진리를 만나다
오랜만에 별생각 없이 시작된 20년지기와의 통화에서 머리를 탁하고 치고 가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듣기 싫은 비아냥거림으로 쉽게 오해될 수 있는 걱정 어린 충고와 조언에서였다.
"모임회비 또 늦었어~"
"아 미안~ 자꾸 까먹네^^;;"
"자동이체를 해놔~ 그거 얼마 한다고~!"
"그거 걸어놓을 여유가 없어~"
"야 밤낮없이 일하면서 몇만 원이 없냐?"
"ㆍㆍㆍㆍ"
잠시간의 침묵이 길어질 틈도 없이 다음말이 이어진다.
"야 그것도 없으면 개인파산 아니냐?"
"ㅎ 파산이었다가 아니었다가 왔다 갔다 해~"
"그렇게 일밖에 안 하는데 그러면 어떡해~"
분명 걱정인데 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뭐, 사는 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 뭐~
대화를 종결하기 위해 뱉은 말에 긍정적이어서 다행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 대화에서 긍정적이었던 사람이 과연 누굴까 잠시 고민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에 육성통화를 위해 통화버튼을 이용했다. 더 이상 오해가 쌓일 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크게 관심 없었던 두 사람의 형식적인 대화에는 오해가 생길 틈 따위는 없었다. 으레 하는 형식적인 걱정과 습관처럼 나오는 난 너를 걱정한다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일방적인 위로와 격려가 이어질 뿐이었다.
이전의 대화도 비아냥이 들어갈 곳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듣는 내가 아픈 곳이 찔렸던 것이고 혼자 찔리고 상처받으며 상대가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지레짐작하려 했던 것뿐이다.
오래되고 소중한 관계일수록 이런 사소한 부딪힘이 크게 아프게 다가왔다.
신혼 초 사소한 것으로 가정에서 부딪힘이 싫어 일에 더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일이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야근이 잦아지고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인 마냥 피곤함에 녹초가 되어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도 드는 날이면 뭔가 조금 열심히 한 듯한 느낌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 삶의 포커스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 "나의"로 시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중심에서
"나의"로 시작하는 행위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일이 가정보다, 친구보다도 우선시 되었고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만족들은 일을 하는 행위자체에서 주는 만족감이 채워갔다.
그렇게 사람은 '피곤한 존재'인 반면 일은 '재밌는 존재'가 되었다.
그랬던 일에.. 너무 지쳐 퇴사를 했다. 몇 달간의 불안한 휴지기를 가진 후 다시 새로운 일로 돌아오고 보니 초반의 충만했던 의욕은 온데간데없이 일에 지쳐 쉬고픈 맘에 도망가고 싶단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곤 한다.
정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
살다 보면 우연한 기회에 아! 모먼트가 찾아오곤 한다.
오늘의 내가 그랬다.
월급은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리지고 없었고
통장의 잔액은 없다가도 어느 순간 적금이 쌓여갔다.
내 전부였던 사랑하는 가족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고
남편을 만나며 없던 가족이 또 생겼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어느새 의리만 남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는 없던 사랑이 무한 쏟아진다.
영원한 내 것도 없지만, 없는 상태가 영원히 가는 것도 아니었다.
피곤한 생각이 한참 오고 가던 중 신랑에게 카톡이 왔다
와이프~ 갈치 조림해 주려고 장 봐뒀어~ 일찍 와~~
와.. 우리 집에서 갈치조림이라니..!!!
결혼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우리 집에서 생선 조림이란 것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선은 비린내가 오래 남아 늘 싫었다. 나도 신랑도 집에 비린내가 나는 걸 좋아하지 않다 보니 집에서 생선요리는 잘하지 않았다.
특히 나는 억지로 먹다 보니 먹을 줄은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즐기지는 못하는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굳이 싫은 음식을 집에서 해먹을 일은 더 없었다. 그런데 신랑이 나를 위해 갈치조림을 했다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며 저녁시간이 기다려졌다.
집안에 퍼질 비린내보다 나를 위해 귀찮은 손질을 마다하지 않고 했을 그 마음이 더 크게 와닿아서였을까.
둘이 먹을 한 끼 분량 조절에 실패한 신랑이 내놓은 커다란 찜솥 한가득 담긴 갈치조림을 바닥까지 긁어가며 싹싹 비웠다. 남산만큼 커져버린 배는 차치하고 입안 가득 남은 비린 생선향이 거북할 만도 한데 기분 좋은 포만감만 남았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나를 보면 기가 차다 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내일의 나는 또 갈치조림을 쳐다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아까 다 먹지 못하고 남겼더라면 난 몇 날며칠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을 거다.
지금의 내게는 갈치조림은 사랑 그 자체이니까.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지금 내게 있는 갈치조림 사랑이 내일은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신랑의 정성 덕분에 없던 갈치조림 사랑이 생겼고 이는 또 수일 내 잊힐 마음일 테지만,
어제는 없었고 오늘은 있는 거니까~
지금은 있는 그 마음을 마음껏 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