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다물고, 귀는 열고..

추석은 언제나 뜨겁다

by 글린더

"간밤에 엄마랑 네 새언니랑 한판 했다.. 낼 분위기 알고 오라고..ㅠ"

추석 전날 오빠에게 온 문자 한 통.


'하아, 엄마가 또 한소리 하셨구나..'

짧은 한통의 문자에서 상황이 안 봐도 알 듯한 느낌이다.

하아... 엄마.... 아이고...

우리 형제는 엄마의 지난한 옛 시간을 기억한다.

몸이 기억하고 역사를 함께 했기에 같은 아픔을 기억한다.


그래도 그건 우리 사정이고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달가워할 며느리가 어디 있을까.

늘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난 며느리의 입장을 대변하며 새언니 편을 들었다. 그게 사랑하는 오빠와 오빠의 가정이 행복하고 평안한 길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며 엄마의 고집을 꺾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안다. 70 평생 살아오신 방식이 자식의 잔소리로 바뀔 리가 없다는 것을.



나의 비혼주의 아닌 비혼주의는 고달픈 엄마의 인생을 보고 자라서의 영향도 컸다. 엄마는 자신의 애잔하고 불쌍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자식을 인생최고의 가치로 두셨다.

그것을 알았기에 우리 형제는 엄마의 안위를 위협하는 행동은 자제하고 늘 행동에 스스로가 제약을 두고 조심했다.

그게 서로를 위해 안전했고 필요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클수록 분노도 함께 커졌고 슬픔도 함께 깊어졌다.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상처를 보듬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공감능력은 커져만 갔고 그 감정을 통제하고 분리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서로에게 서로는 전부였고 최선이었고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우리니 우리라는 울타리에 갑자기 끼어든 새언니 입장에선 많이 곤란했을 거다.

그 입장과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둘 사이의 부딪힘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레 '아이고 엄마...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우리 가족 안에 들어오면 피곤할 텐데.. 그 사랑의 최고봉인 오빠의 배우자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엄마의 잔소리와 타박은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컸을 테니 아무리 우리가 새언니의 편을 들어도 늘 외로웠을 터였다.


그런 피곤한 관계들을 보다 보니 결혼을 '굳이'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했고 엄마와 오빠가족과의 관계가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며 결혼이란 두 사람이 아닌 너무나 거대한 책임과 약속들이 무거워 보였다. 가족은 여기까지가 딱 좋다 싶었다.


그 외에는 조금은 멀리서 조금은 덜 뜨겁게..?


나이가 들수록, 사춘기를 겪으면서 더욱 강력해진 공감력은 집착과 과잉 배려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책임과 의무가 생기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내가 싫은 건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자 싶어 결혼은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한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과한 배려와 과한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닌 나를 위한 위안이다.

집 밖으로 나오면 몸도 마음도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다. 긴장도 불안도 내려가고 세상을 거리 두고 바라볼 수 있어 편했다.

언제나 열린 마음과 귀로 사람들의 말과 상황을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어떤 상황도 이해하려 들면 이해되지 않는 마음은 없었고 각자의 입장은 언제나 옳았다.

단지 그들의 온도와 언어가 달라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들이 전달되지 않을 뿐.

거리를 두고 상황을 객의 관점에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바라보는 나에게 사람들은 많은 고민들을 던져두고 갔고 이는 나를 여러 밤 잠 못 들게 했다. 습관성 공감력과 나에게 그 마음을 열어 내보이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하는 과한 몰입에 어떻게든 해결을 해주거나 해결책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그게 그들을 위한 고민이었는지는 지금 와서 보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러고 싶었던 내 위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빠에게서 온 한통의 문자는 내게 그 오래된 습관성 해결사 본능을 깨웠다. 하루라는 시간을 두고 각자의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을 즈음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로의 표현 방식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엄마의 외로움과 새언니의 외로움이 서로 다른 근간에서 시작된 두 감정이 결국은 위로가 필요했음을 보았다. 다만 다른 위로가 필요했을 뿐..


그래서..


엄마에겐 입을 다물고 그저 그 마음을 들어주는 "귀"를 가지고 조용히 그저 묵묵히 들어보았다. 때론 그저 말을 내뱉어 내버리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의 대나무밭이 되고 보니 잔잔하게 엄마의 흐느낌과 억울함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토해져 나왔다. 한참이 지나고 늦둥이 딸을 낳아 너도 경험해 보라는 농담과 함께 그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새언니에게는 그동안 듣고 싶었을 말을 "입"을 통해 소리 내어 전했다. 때론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진심을 말하며 닿지 못해 속상했던 마음에 똑똑 노크하고 보니 한마디 한마디에 울컥하며 목소리에 눈물이 맺힌다. 언니에겐 따뜻한 소리가 필요했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사랑도 전하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더 모른다.


결국은 시집살이시키고 싶지 않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며느리로서 누구보다 잘하고픈 며느리 간의 서로 다른 표현방식이 서로를 아프게 찌르고 눈물짓게 했구나 싶은 맘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난히 달이 선명한 밤이다.

슈퍼문이라 더욱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달이 예뻐 핸드폰을 꺼내 찍어보았다.

그 모습에 신랑이 한소리 한다.

"갤럭시로 달 찍으면 소용없어, 그대로 안 나와 갤럭시에서 자동보정하거든. 지금 모습 안 찍힐 걸~"

듣고 보니 자동보정이 된다.

"와... 대박!!! 진짜 바로 보정되네!!

근데 눈으로 봐도 이쁜데? 진짜 그냥 봐도 이렇게 보이는데?"

"그르네~ 오늘 진짜 선명하게 보이네~^^"


그 대화를 끝으로 집에 오는 길,

사람사이에도 이렇게 자동보정돼서 서로 이쁜 모습만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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