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했는데 출근했습니다

아이가 없는 밤

by 글린더

가끔 어머니는 푹 좀 자라며 아이를 데려가 재워주신다.

그럼 그날은 100퍼센트 날밤 새는 날이다.



아이는 엄마가 일에 빠져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으면 할머니와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많다. 갓난아기 때부터 늘 돌봐주셨던 덕에 일을 함에 육아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덕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 할머니는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반면 아이의 일상을 나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해 들은 상황을 통해 아이의 정서도 컨디션도 기분도 파악하고 배워간다.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서 이제는 엄마의 케어가 정말 필요하다 싶어 할머니집 근처로 이사를 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늘렸다.


그 결과 일이 끝나고 퇴근은 곧, 육아 출근이 되었다.


함께 놀고, 씻기고, 먹이고, 또 놀고, 재우다 보면 나도 함께 뻗어 잠이 든다. 가끔 재우려다 먼저 잠이 들 때도 있을 정도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좋은데 에너지 소모도 굉장히 크다.

늘 졸리고 또 졸린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워 잠 좀 푹 자라며 아이를 데려가 재워주신다. 엄마보다 더 편한 할머니의 집은 아이에게는 익숙한 환경이라 아이는 금방 깊은 잠에 드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내가 못 잔다는 거다.

함께 있을 때는 피곤하다며 그렇게 며칠 잠만 자면 좋겠다 입에 달고 사는데 아이가 정말 집에 없으면 허전함 탓인지 잠에 들지 못한다. 거의 동틀무렵즈음 돼서야 잠에 든다.

그것도 억지로 억지로 겨우 잔다.


대체 왜 그럴까?


오늘도 나이대비 큰 덩치로 무척이나 무거운 몸을 엄마에게 온전히 기대고는 마치 엄마를 의자 등받이처럼 편하게 사용하던 아이였다. 같이 있으면 늘 스킨십이 끊이질 않고 늘 함께 놀다 보니 혼자 잠드는 것이 어색해 정작 아이의 체온이 있어야 잠이 오게 되었나 보다.

내가 재워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반대였던 거다.

어느새 난 아이에게 의존도가 굉장히 큰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이를 가져야겠다 노력한 적도 없고 크게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빠듯한데 내가 아이를 잘 키워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다 덜컥 아이가 생겼고 갑자기 소중해졌다. 간절히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정말 듣기 싫을 말이겠지만.. 어쩌다 덜컥 그렇게 첫 번째 아이를 가졌었다.


아이라는 존재는 존재함을 인지하는 순간, 어떠한 노력 없이도 그냥 그렇게 소중해지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아이를 만나보지도 못한 채 뱃속에서 잃은 순간우 세상을 잃는 경험이었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게 어떤 감동과 힘을 가지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몰랐을 깨달음이었겠지. 첫 번째 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지금의 이 아이가 내게 온 그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


아이는 내게 늘 도전이고 배움이다.

늘 새롭고 신기하고 웬만한 이벤트엔 감흥 없는 내게 늘 감동을 던져준다. 그래서인지 가끔 육아도 일처럼 하나보다.

새로운 챌린지에 새로운 배움이 끊이지 않는 고난도의 태스크이지만 결괏값이 매번 새로운 감동과 함께 오니 지루할 틈이 없다. 체력소모도 웬만한 현장 백업 나갔을 때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 그런데 퇴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걸 보면 꿈의 직장이거나 복지가 혜자급인가 본데 난 아이의 미래에 나의 노후를 맡길 생각이 없으니 아마도 내가 느끼는 심리적 복지가 상당한가 보다.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 후딱 씻고 준비해서 다시 데리러 가야 할 텐데 기상알람이 울리기까지 고작 두 시간밖에 남질 않은 지금까지도 잠들지 못한 채 이러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내가 지금은 누가 봐도 아이들을 굉장히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걸 보면 사람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고, 그러다 보니 좋은 시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아이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졌다.

어쩌면 어쩌다 생긴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고, 모든 일들은 이렇게 운명처럼 연결되어 어떤 곳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생길 여러 우연 같은 일들은 그냥 쉽게 흘려버리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혹여라도 반드시 잡았어야 할 운명이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퇴근을 하지 못한 느낌..

날 밝으면 빨리 데리러 가야겠다.

나의 양질의 수면을 위해선 육아출근 후 퇴근 도장까지 깔끔하게 찍어야 하나보다.


하루가 48시간인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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