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발표가 힘들까
때때로 우리는 1대 다수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학 수업에서 발표를 하거나, 입사 면접을 보거나,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PT)을 해야 할 때 등등.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주고, 특히나 그 일이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왔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필자는 교사이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다수에게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때였다. 학교에서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온라인 수업 때 활용할 플랫폼을 정하는 회의였는데, 필자가 수업에 활용하고 있던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수업을 총괄하시는 부장 선생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셨던 플랫폼은 e학습터였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e학습터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교적 친숙했던 플랫폼이었던 반면에, 구글 클래스룸은 생소한 것이었다. 낯선 것에서 오는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필자는 갑작스럽게 선배 교사들 앞에서 구글 클래스룸의 사용법과 장점에 대한 발표를 해야 했다.
그 발표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것저것 구글 클래스룸 사용법을 설명했지만, 동료 선생님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보이는 듯했다. e학습터와의 차별점을 강조하기 위해 '클라우드 용량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학생과 개별 댓글 기능이 가능하다.'등 상품을 파는 것 마냥 영업(?)을 했지만, 불확신으로 가득 찬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막판에 당황해서 뱉은 멘트 한마디가 예술이었다. '구글이 세계 1등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청중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어쩌라고!'
직장인이든 개인사업자이든, 우리는 때때로 다수에게 내 뜻을 전하는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편의상 면접, 토론, PT등 내 뜻을 다수에게 전하는 일을 다 '발표'라 부르겠다.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긴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몇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더라도 막상 준비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잘 준비한 것 같다가도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예상과 다른 청중의 반응에 식은땀만 흘리다 마치기 십상이다. 예정에 없던 발표는 말실수 없이 끝내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토록 발표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배운 적이 없다.
첫째, 아무도 발표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유-초-중-고-대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중 대다수는 제대로 '발표'라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나마 '발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기는 유, 초 시기이다. 이때 아이들은 대개 선생님의 관심을 끌고 싶은 욕구도 강하고 적극적이어서, 너도나도 말하려고 한다. 내버려 두면 수업 진행이 안 될 수준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 발표 교육은 '발표 예절'에 집중되어 있다. '발표할 때는 손을 들고, 선생님의 지목을 받으면 말할 것',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말할 것' 같은 예절 말이다.
이런 교육은 필수적이지만, '발표' 교육이라기 보단 '예절' 교육에 가깝다. 그나마 발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유·초 시절이 지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발표 자체를 점점 안 하려 한다. 중학생쯤 되면 학력 격차가 나타나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계속 손을 들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틀리면 창피당할까 염려해 점점 발표에 소극적이 된다. 고등학생이 되면 입시 위주의 수업으로 인해 발표 기회가 점차 줄어든다. 그나마 요즘은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학생 참여형 수업이 확대되며 발표 기회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발표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학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신과 수능 공부에 찌든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온 새내기들에겐 1학년 때부터 조별과제와 발표과제가 주어진다. 그러나 이때 발표 수업은 전공 내용을 학생들이 먼저 공부해보고 이해하기 위함이지, '발표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수업이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있는 발표 기술에 대한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 이상, 혹은 별도의 공모전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발표해야 하는지'를 정규 교육과정 중에 배우긴 쉽지 않다. 그 누구도 발표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연습을 안 한다.
둘째, 발표를 연습하지 않는다. 수영을 잘하고 싶으면 수영장에 등록하고 레슨을 받고 수영 연습을 해야 한다.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영어 학원에 가거나 어플로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수영과 영어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말하기를 연습하지 않는다. '발표'가 이 글의 주된 주제이지만, 발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유형의 말하기도 우리는 잘 연습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말하기' 혹은 '발표' 실력을 기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말하기, 아니 적어도 '발표'를 연습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대개 발표를 연습하지 않는다. '나는 연습하는데?'라고 발끈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분들이 발표 연습을 할 때마다 타인에게 발표를 미리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거나, 적어도 실제 발표를 할 장소에서 실전 같은 상황을 만들고 리허설을 하며, 자신의 연습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다시 복기해보는 정도의 연습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인정한다. 그냥 방에서 대본 써보고 몇 번 읽어보는 정도의 연습이라면 그건 진정한 연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한 발표가 있으면 대본을 쓰고 읽어보거나, 머릿속으로 가상 리허설을 몇 번 해보는 정도의 연습은 한다. 발표의 기본은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내 음성이 명확한지, 주제는 명료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말하는 태도는 바람직한지 등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내 발표를 듣는 청자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이 배제된 말하기 연습은 진정한 말하기 연습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대부분은 발표 연습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발표를 배운 적도, 연습해본 적도 없는데, 직업 세계에선 발표 능력을 요구한다. 그냥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잘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켜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일터에선 친절히 발표를 가르쳐 줄 시간도 이유도 없다.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배워본 적도 없는 것을 잘하도록 요구한다. 못하면 책임이 따른다. 학교 다닐 때 발표를 망치면 그래도 괜찮다고 격려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직장에선 내 편이 돼주는 천사 같은 선생님은 없고, 호랑이 같은 학생주임 선생님 같은 사람들만 있다.
좋든 싫든 발표 능력, 나아가 말하기 능력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말을 더 잘하고 싶어 하고, 더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말이 잘하고 싶다고 잘해지는 것인가?' 우리가 말을 더 잘하기 위해선 다음의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말하기 실력은 연습을 통해 늘릴 수 있다.'
말하기가 연습한다고 늘까? 앞서 밝혔 듯 필자는 교사이다. 중등교원 임용고시는 1차 필기시험과 2차 수업 실연 및 면접 시험으로 이루어져있다. 즉, 2차에서 '말하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2차 시험은 보통 스터디를 조직해서 서로의 수업과 면접을 봐주며 피드백을 하는 형태로 준비한다. 1년여간 독서실에 박혀 필기시험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 막상 수업과 면접 연습을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정말 가관이 따로 없다. 말 더듬는 건 기본이요, 130BPM은 족히 넘을 듯한 속사포 랩으로 수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전한 한마디를 완성하기 힘들어하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이다.
필자도 다르지 않았다. 필자는 원래 말하기에 자신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경험도 많았다.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고 살았고, 스스로도 말을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 내 수업과 면접을 녹화해서 들어본 소감은 '쟤 어디 아픈애냐?'였다. 주의력 결핍 장애를 앓는 것마냥 몸을 가만 두지를 못했고, 말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으며,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던지고 자기 혼자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소위 '개판' 연습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와 이거 어떻게 하냐...'였다. 1차 시험을 마치고 2차 시험까지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말하기 연습뿐 아니라 내용 공부도 할 것이 많아 '과연 이 짧은 시간 연습한다고 말하기가 늘까?'라는 걱정에 수험생들이 사로잡히고, 나와 내 스터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말하기 능력은 평생 쌓아온 습관이 아닌가! 이걸 어떻게 두 달 만에 바꿀 수 있겠는가.
웬걸, 두 달이 아니라 두 주만 지나도 발표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시간 안에 수업을 마치지도 못하던 사람이 여유를 부리며 수업에 유머를 더하기도 하고, 면접 문제에 횡설수설 알아들을 수 없는 답변을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지는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자신의 발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타인에게 듣고, 영상을 통해 복기해보기만해도 분명 발표 실력은 는다. 경험상 2차 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수석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발표는 연습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일상 속 대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렵다. 매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사람에겐 통제권이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대 다수로 발표를 하는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제도 명확하고, 발표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설계하고 연습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 잘하기는 더 쉽다. 적어도 평균 이상의 발표를 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과 기술들이 존재한다. 이런 원칙과 기술들은 이후 글에서 자세히 소개토록 하겠다. 발표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말하기 위해 지켜야 할 대원칙과, 말의 내용 구성과 말하는 이의 태도와 관련된 내용적, 표면적 기술들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한 원칙과 기술에 앞서 발표 실력을 늘리기에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누구나 발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레전드' 발표는 못하더라도, 'A급' 발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대전제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이후 글을 읽을 의미가 없다. 기억하자. 누구나 연습하면 발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