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기 마련
왜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지?
사람과 대면하며 말을 하고 있는데,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상대의 눈은 나를 보고 있는데 영혼은 가출한 것이 보이거나, 잘 듣는 것 같다가도 질문 하나 던져보면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목에 핏대 세우며 말했는데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상대를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런 경험을 참 많이 한다. 어려운 내용을 가르칠 때나, 잘못한 아이들을 혼낼 때 주로 그렇다. 아무리 친절하게 가르치거나 상냥히 타이르려 해도, 아이들은 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딴짓을 하거나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몸을 베베 꼬기 십상이다. 요새 주의력 결핍에 행동조절도 잘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또 관심 있는 일을 할 때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필자의 학생 시절을 회상해봤다. 중학교 때까진 그다지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었던 나도 분명 저 아이들과 같았을 터. 어릴 적 내 모습 속에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선생님이 하는 말은 보통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라면 수업보다는 노는 게 좋은 것이 당연하다. 또한 아무리 선생님이 상냥해도, 잘못한 뒤에 선생님에게 불려 온 상황이라면 일단 그 상황이 불편하고 선생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선생님의 수업과 생활지도는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쏟아내는 선생님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줄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성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1대 1로 하는 대화에서든 경쟁 PT 혹은 사업계획 발표 같은 1대 다수의 상황에서든,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내 말이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어서이다. 생각보다 우리들은 더욱 편협해서,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고, 듣기 싫어하는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나뉠 수 있다. 관심이 없거나, 혹은 재미가 없거나.
관심이 없거나
상대가 내 말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다. 둘째, 강조점이 다르다.
첫째,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관심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내가 할 말'이 있다. 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든, 배우려고 질문을 하는 것이든 말이다. 할 말이 없는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큼 고역도 없다.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초수 때 함께 스터디를 했던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스터디를 워낙 잘했던 탓에 스터디원 4명 중 나만 빼고 3명은 모두 초수에 합격한 신규교사들이었다. 교사가 3명이 모였으니 당연히 대화의 상당 부분은 학교 현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동료 교사 이야기, 말 안 듣는 아이들 이야기, 학부모의 민원 이야기 등.
모두 임용을 준비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관심 없는 주제였다. 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학교 현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합격만 절실했던 나에겐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관심이 없으니 잘 듣지 않았고,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 친구들은 고맙게도 황급히 주제를 전환해주었다.
이렇듯 우리는 관심 없는 주제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아이들이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또 반대로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상대가 말을 듣게 하려면 상대가 관심 있어하는 주제를 던져야 한다. 훌륭한 강사들이 '000 들어보셨죠?'와 같이 청중에게 익숙한 이야기나 주제를 화두로 던지거나,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관심이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다른 주제, 혹은 다른 관점으로 이어져야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둘째, 강조점이 다르다.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주제라 할 지라도, 구체적인 강조점이 다르다면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투자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말하는 사람은 높은 수익성을 강조하고, 듣는 사람은 원금보장을 강조한다. 이 둘은 '투자'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지만, 듣는 사람은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말하는 이에게 귀 기울이지 않을 확률이 크다.
똑같은 강연을 들어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강의를 두 사람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A라는 사람은 강연 후에 '이론적 설명이 뒷받침된 강연이라 좋았습니다.'라고 말하고, B라는 사람은 '실제적인 사례는 별로 안 나오고 이론만 많이 나와서 따분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A의 강조점은 기초가 되는 이론에 있던 반면, B의 강조점은 실제 사례에 있던 것이다. 당연히 A가 강연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관심 있는 주제라 할 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강조점과 다르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상대가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려면 상대가 관심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다짜고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단,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의 상사에게 사업계획을 설명해야 한다면, 사업의 수익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리스크 관리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
재미가 없거나
재미가 없다면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재미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꼭 유머러스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들으면서 '아 재미없어.'라는 생각이 들면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내 말을 지루하게 느끼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앞서 논했듯 우리는 관심이 없는 주제에는 지루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관심이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유발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길다. 길게 말하면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좋은 말도 양이 너무 많으면 듣는 사람이 피로해진다. 우리가 말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모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너무 많은 말이 들어오면 그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늘어난다. 우리 뇌는 이런 에너지 소모를 좋아하지 않고, 에너지 소모가 늘어나면 피로와 지루함을 느낀다.
말의 총량이 많지 않더라도, 한 문장이 길면 재미가 없다. 일단 한 문장이 길어지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짧은 문장 여러 개가 낫다.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듣는 우리는 화자가 의도한 주어와 서술어가 무엇인지 추측하며 들어야 한다. 말을 듣는데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따분함을 느낀다. 좋은 책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인 것처럼, 좋은 말도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쏙쏙 꽂히는 말이다. 긴 문장은 이를 막는 걸림돌이다. 지양해야 한다.
둘째, 단조롭다. 말에는 말의 논리를 구성하는 언어적 측면과,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비언어적 측면이 있다. 언어적 측면에서 단조롭다는 것은 논리나 사례가 상투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비언어적 단조로움은 목소리의 결, 톤, 속도, 억양, 크기 등 '소리'와, 몸짓, 표정 등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같은 톤과 크기, 속도를 유지하는 말은 듣기 지루하다. 또한, 표정 변화가 없고 몸짓도 전혀 없는 사람의 스피치는 보기 지루하다.
언어적 측면에서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말의 논리를 향상하고 다양한 사례를 습득하는 것은 경험치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책을 많이 읽고 강연을 듣는 등 노력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향상해야 하며,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내 말을 빛내기 위한 다양한 사례를 쌓아야 한다.
반면에, 비언어적 단조로움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다. 목소리의 톤, 크기, 속도 및 표정과 몸짓들은 대개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습관들을 지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톤이 단조로움을 깨달았다면 몇 마디만 다른 톤으로 말하면 되고, 몸짓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지점에서 어떤 몸짓을 넣을 것인지 정하면 된다. 물론 바람직한 비언어적 요소들을 습관화시키는 것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지만, 당장 한 가지 습관을 바꾸기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언어적, 비언어적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이후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듣고 싶은 말을 듣기를 더 즐긴다. 상대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보다 바람직한 방법은 이런 본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된다. 조금 더 상대가 관심 있어하고, 재미있어하는 말과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는 게 우리의 본성이지만, 한 번 관심을 가지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우리의 본성이다. 상대가 내 말에 귀 기울이길 원한다면,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