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나와 같은 그림을 보게 하기
말귀를 참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이해하는 그런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말귀 어둡다.', '핀트를 못 잡는다.'라고 핀잔을 주곤 한다. 한 명도 힘든데 여러 명이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는 미칠 노릇이다.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 답답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이 아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들의 말귀가 어두운 것일까? 가끔은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들이 아닌 내가 문제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너무 당연한 말도 남들이 못 알아듣는 이유는, 그 말이 내게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게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주장을 펼치거나 개념을 설명할 때, 우리의 머릿속엔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 근거, 관련 통계 및 예상되는 반론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모여 한 장의 그림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떠올리며 말을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는 완성된 그림이 아닌 빈 도화지 한 장이 펼쳐져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 교사가 되어 중학교 1학년 아이들 수업을 할 때였다. 여느 신규교사들이 그러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잠도 줄여가며 수업을 준비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이들은 수업에 뜨겁게 반응했다. 첫 몇 차시 동안 아이들은 수업을 너무 재밌어했고, 학교 행사로 수업이 빠지기라도하면 아쉬워할 정도였다.
2주쯤 지났을까. 처음으로 본문 해석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무언가 잘못 먹고 온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상당수 아이들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듣고는 있는데 이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훌륭한 교사'인 나는, '아, 문장을 한 번에 해석해서 어려워하는구나. 나눠서 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자, 이 문장에서 주어는 진수야. 그리고 동사는 likes니까 진수가 좋아한다! 뭐를? sports. 스포츠를!"
표정만으로 아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다니. 1년차 교사치고는 너무 훌륭한 것 아닌가?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보다 쉽게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것도 못 알아들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직전 수업까지는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했지만 그 날따라 갑자기 과묵해진 한 아이를 불렀다.
"00아, 오늘 수업 어땠어?"
"해석을 이해를 못했어요."
"어떤 게 어려웠는데? 쌤이 설명해줄게."
"어... 주어랑 동사가 뭐예요?"
아뿔싸. 문장을 끊어서 해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중 1이라면 주어와 동사가 무엇인지 알 테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경제력이 비교적 어려운 지역에 위치해있는 학교이다. 경제력이 곧 학력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평균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지역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 수의 3분의 1이 교육복지지원대상인 우리 학교에는 주어, 동사를 모를 정도로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수업 전까진 제대로 공부하는 수업이 없었다. 오리엔테이션하고, 게임 활동 위주로 수업을 했으니 재미가 없을리가 있나. 그것도 모르고 수업을 잘하는 교사인 마냥 우쭐댔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일까, 내 설명이 잘못됐던 것일까? 당연히 후자이다. 기초적인 문법지식을 전제로 그린 수업의 큰 그림을 아직 머리 속데 스케치도 끝나지 않은 아이들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상대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채로는, 아무리 멋진 그림을 설명하려 노력한들 통할리가 없다.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겪는다. 말하는 사람은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하고 무의식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실상 듣는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할 때가 많다. 문제는 대부분의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상상하는 그림을 남들도 보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선 듣는 사람의 머리 속에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한 다음 채색을 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같은 그림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주식 투자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면 듣는 사람이 '시가총액', 'ROE', 'PER' 등의 개념을 이해하게하고, 이후에 투자 종목 고르는 법을 설명해야한다. 주식을 처음 접하는 소위 '주린이'에게 다짜고짜 'PER이 10이 넘으면 과대평가 된거니까 안돼.'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 사람은 투자자로서는 몰라도 선생님으로서는 0점이다. 사업계획을 설명해야한다면 '사업아이템'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수익성, 잠재적 문제, 확장 가능성 등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IoT(사물인터넷)의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이 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한한 확장성을 가졌습니다.'라고 어필해봐야 소용이 없다.
'명작'으로 인정받는 소설들의 공통점은 글을 읽기만 해도 소설 속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소설가들은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머리 속에 자신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능력을 갖췄다. 말을 잘한다는 것도 이와 같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내가 보는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말을 할 때마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하라는 것은 아니다. 소설과는 다르게, 말할 때에는 '확인 후 생략'이 가능하다. 내 말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개념과 생각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이해했다면 생략하고 넘어가면 된다. 내 말의 흐름을 따라오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머리 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발표나 면접 등 특수 상황 속 시간 제약으로 인해 상대의 이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면, 실전에 앞서 리허설 해보는 방법이 있다. 예상 청자들과 비슷한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준비한 이야기를 미리 해보고, 내가 전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점검해보는 것이다.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 말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이나 생각들을 PPT나 참고자료로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를 통해 상대방의 머리 속에 내가 그린 그림을 보다 정확히 투영할 수 있다.
'말을 잘한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에게 이해시킨다.'는 뜻을 포함한다. 내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나와 같은 지식을 갖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한다. 상대가 나와 같은 그림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라. 그렇지 않다면, 스케치부터 채색의 과정을 거쳐 상대의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