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생
대학만 가봐라, 마음껏 놀테다! 나의 고3 시절이 끝나가는 무렵, 엄마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내게 건넸다. 공무원 수험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영어 문제집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가장 머리 회전이 잘 되는 때가 지금일 테니, 공무원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쳐보라는 엄마의 큰 크림이었다. 19.9살, 이제 막 책상에서 벗어나 스무 살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는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었다. 그때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렸던 나는 6년이 지나 노량진에 입성을 했고 25살의 나는 그때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서울살이의 고됨과 사회생활의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된 나는, 회피인 듯 미련인 듯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고시생이 되어보자 결심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 홀로 타지 생활을 하며 온몸으로 현실에 부딪혀보니 안정적인 직장을 염원하는 수많은 취준생, 고시생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렇게 노량진의 한 복판에 들어서고야 말았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야만 하는 끈기가 나에겐 있었으니,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젊은 패기가 있었다. 노량진, 녹록지 않았다. 정말 치열한 전쟁터였다. 흔히들 말한다. 노량진은 공기부터 다르다고. 눈뜨고 감을 때까지 나와의 싸움에 시달려야 하고, 집 밖을 나서면 계속되는 시험과 옆 자리, 앞자리 사람들과 경쟁의 연속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잠이 들기 전까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곳. 누가누가 끝까지 살아남나, 엉덩이 싸움의 끝을 봐야만 합격을 기어코 손에 쥘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곳, 그것이 내가 겪고 느낀 공시생의 삶이다.
학원과 독서실을 왔다 갔다 하던 나의 무료한 일상에 포스트잇이 날아왔다. '코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되어 방해되니, 차라리 화장실에서 한번 풀고 와주세요' 감기에 걸려 무의식 중에 훌쩍인 소리가 같은 독서실 방에 있는 사람에게 방해가 된 것이었다. 그 정중하게 부탁하는 포스트잇을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훌쩍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역죄를 지은 것만 같은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깨금발로 총총총 나가서는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들어왔다. 고시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장소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코를 풀거나 훌쩍이는 것도, 펜을 꾹꾹 눌러쓰는 소리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노량진에 입성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친구들과의 즐거움 등을 내 생활 속의 모든 여유들을 포기하고 그곳에 있는 것이기에 더욱 간절하다. 간절한 만큼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1여 년 공시생 생활의 마음, 상황을 글 하나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결말부터 말하자면, 나는 준비했던 시험에서 떨어졌고 1년의 도전을 끝으로 노량진을 떠났다. 부모님이나 친구로부터 왜 한번 더 도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간단했다.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다시 도전하면 합격할 수 있어!'라는 나 스스로의 확신이 있던지,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대로 그만두는 건 너무 아쉬워!'라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난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대학생 때 전공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치렀던 자격증 시험마다 합격 소식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도 선천적인 공부머리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었다.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수험서를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막무가내처럼 적으면서 암기를 해댄 결과였다. 시험이 끝나면 언제 공부를 했냐는 듯 머릿속은 자동 리셋이 되어버리곤 했다. 말 그대로 나는, 장타가 아닌 단타에 강했다. 그것을 1년 간의 시험 준비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 하나, 감정의 동요가 심한 편이다. 중간중간 내가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물이 나와주면 그것을 발판 삼아 '나는 할 수 있어!' 하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전형적인 오구오구 형이다. 단기간의 공부에도 합격하여 노량진을 벗어나는 사람들 혹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서 합격을 이루어내는 고시생들을 보면 단 한 번의 큰 시험만을 바라보며 쪽지시험, 모의고사와 같은 작은 시험들은 결과가 안 좋더라도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 큰 동요 따위 없이 이번 시험의 틀린 것들을 보완하며 다음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나는 간단한 쪽지시험 하나에도 결과에 따라 '나는 틀렸어' 좌절모드가 되어버렸다. 좌절에 좌절을 더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같은 공간에 빼곡히 앉아있는 모든 이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약한 의지가, 파도치는 나의 멘탈이, 비가 내리는 나의 시험지가
한 두 푼이 아닌 돈을 1년 더 들여서 이 곳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난 노량진을 떠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