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고시생 #여행기자 #여행작가
사실, 하나의 큰 이유가 더 있다. 어쩌면 이것이 고시생 생활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노량진 생활을 청산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테다. 고시생이라면 시험 합격만을 바라보고 전력 질주해도 모자란 판에, 나는 다른 명함이 탐나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 봤지만, 자꾸만 눈에 밟혔다.
첫 번째 사회생활을 청산하고 나 홀로 제주 여행과 코레일 내일로 기차여행을 끝낸 후, 우연히 발견한 코레일 협회지 여행기 원고 공모를 보고서 나의 여행기를 응모한 적이 있다. 얼마 후, 코레일 협회지 담당자로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던 긍정적인 대답의 메일이 왔고 협회지에 나의 글과 사진이 실린다고 했다. 집으로 발송된 얇은 코레일 협회지 한 권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할 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온 세상 사람들이 보는 대단한 잡지도 아니었고 두 페이지 가량의 작은 분량에 혼자 간직하고 싶을 정도의 부끄러운 필력의 글이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듯이 기뻤다. 누군가가 내 글과 사진을 함께 보고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왜 그렇게 설레고 입꼬리가 올라가던지.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났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언니 방으로 들어가 켜켜이 쌓여있는 여행 잡지들을 꺼내서 살펴보았다. 제일 뒷 페이지에 적힌 '독자 원고 공모'라는 글자를 발견하니 심장이 뛰었다. 분명히 다른 매거진에도 있을 거야! 그 길로 1시간 거리의 시내 서점으로 달려갔다. 매거진 코너에 있는 여행잡지들을 모조리 품에 안고 원고 공모 페이지를 찾기 시작했다. 평소 친구들과 쉬지 않고 3시간을 기본으로 떠들어대도 지치지 않는 수다쟁이인 나는 에피소드 덩어리인 나의 여행의 순간들을 글과 사진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또 한 번 그 설렘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간 눈여겨보았던 여행 매거진 2곳에 나의 이야기를 실어보리라! 목표를 정하고 유럽 배낭여행 중에 끄적끄적 적어둔 메모들을 글로 적어보기 시작했다. 글을 적으며 다시 그 여행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도, 그 순간의 감정들과 그곳의 풍경들이 내 손을 거쳐 하나의 문장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 한 장의 글이 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미치도록 재미있었다. 다시 한번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 행복했다.
그리고 또다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투고했던 매거진 2곳에서 모두 내 원고를 매거진에 담고 싶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내 여행 이야기와 사진들을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따로 원고료를 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나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한 편에 자리 잡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글, 사진과 관련해 직업을 삼고 있는 지인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던 터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문득, 독자 여행기 투고 및 잡지 게재와 관련하여 메일을 주고받았던 기자님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실천해야 이루어지는 법. 생각났을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나의 여행기를 잡지나 책에 연재하고 책으로 담아내 보려면 앞으로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려도 되겠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메일로 보냈다. 여행 작가도 매거진 에디터 생활도 모두 경험해본 지금의 내가 그때 나의 메일을 열어보셨을 에디터님 입장을 생각해보자면, 정말 난감하고도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때 기자님은 아주 정성스럽고 현실적인 답장을 길게 보내주셨다. 여행 전문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시며 (지금은 뼈저리게 느끼는 중) 그럼에도 하고자 한다면 훌륭한 실력을 바탕으로 본인을 지지해줄 만한 인맥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말 초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여행을 다녀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히 신경을 쓰고 노력한다는 자체가 중요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조언까지.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자님의 메일은 그 당시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공부를 더 해보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었고 노량진 입성을 알아보고자 집에 머물고 있던 찰나, 오랜만에 심장이 뛰고 신나는 무언가를 찾게 된 것이다. 무슨 인생이 이렇게도 갈림길이 많고 자주 나타나는지. 평탄하지 않을 것이 눈 앞에 선하지만 심장이 뛰는 꿈을 찾아 나서거나, 월급이나 업무 환경은 물론 비교적 편안한 노후가 보장될 테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조금 답답해지는 현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이었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전공에 대한 마지막 미련 혹은 그것을 빙자한 안정된 미래를 바라보며 노량진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미 뛰기 시작한 심장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현실을 이해하고 이상이 아닌 현실을 좇으라고 말하는데, 나의 마음은 아직 청춘이었고 꽤 뚝심이 있었다. 2개 매거진에서 나의 글이 독자 여행기에 뽑혔다고 연락을 받았던 그 해 봄이 지나고 노량진에 입성하여 적응을 하기 시작한 여름이 한창이었을 때, 나의 글이 담긴 2개의 매거진이 서점 매대 위에 놓였다. '글·사진 이나윤'이라는 짧은 한 줄에 간신히 잠재워두었던 나의 심장이 다시 나대기 시작했다. 틈틈이 밥 먹을 때마다 찾아보던 매거진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여행 매거진 T사에서 콘텐츠 서포터즈 1기를 뽑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만 유독 빈번히 찾아오는 듯한 선택의 기로에 다시 한번 올라섰다.
그냥, 직업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푸는 겸 글 적는 거지 뭐.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잘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를 해대며 결국 지원을 하고야 말았고 겨울이 오기 전, 콘텐츠 서포터즈 10명 중 1명에 선정되었다. 두꺼운 수험서를 앞에 두고서 눈치 없이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났다. 그렇게 나는 공부와 글, 두 가지를 모두 놓지 못한 채 노량진 고시생으로 때로는 콘텐츠 서포터즈로서 한 해를 보냈다. 해가 바뀌어 여름에 있을 큰 시험을 앞둔 봄에는 가이드북 제작에 직접 참여하여 한 코스를 담당해 글을 쓸 수 있다는 매력적인 조건에 또 한 번 심장이 뛰었다. 자꾸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다그쳤고 나대지 말라고 마꾸 뛰는 심장을 잠재우려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비행기를 타고 마카오에 가 있었다. 돌아와서는 고시생으로서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했으나 역시나,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제까지의 나의 행보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럼에도 불합격, 탈락, 실패는 속이 쓰리고 아팠다.
돈과 안정된 미래는 저만치 멀어졌지만 지속적으로 한 눈을 판 덕분에(?) 고시생 생활을 청산한 나에게는 글에 대한 경험치(다수 매거진에 원고 투고 및 게재, 매거진 콘텐츠 서포터즈 활동, 마카오 가이드북 제작 참여 등)들이 꽤나 쌓여있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괜히 나대는 심장을 모른척하며 다른 곳에 힘 빼는 시간 낭비 따위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 평탄하지 않을 고생길이지만 이렇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라면 어떻게든 한번 부딪혀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샘솟았다.
지금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지금의 나이기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