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DI BOISO!

#여행산문집작가 #독립출판물기획자 #1인출판사대표

by 재이리

<마카오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마카오 워킹코스 가이드북 제작을 위해 글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미 사진과 글을 업으로 삼아 생활하는 이도 있었고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글이 좋아 함께 하게 된 이도 있었다. 몇몇은 나와 같았다. 글이 좋고 사진이 좋아서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제 갓 꿈을 좇아보겠다고 다짐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어리바리한 나에게 이 모임은 신세계였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들이 여기 모두 있지 않은가. 자신만의 블로그를 통해 여행 사진과 글을 올려 사람들과 공유하고 파워블로거로서 인정을 받는 방법, 잡지교육원을 다니며 체계적으로 배워 기자로서 성장하는 방법 등 물어볼 것도 들을 것도 참 많았다. 그중에 가깝게 지냈던 언니는 책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우와! 말만으로도 너무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하늘하늘 가녀린 모습의 그녀가 갑자기 엄청 강하고 커 보였다. 나도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언젠가는 내 보고 싶은데, 꼬부랑 할머니가 되기 전까진 할 수 있으려나. 나에겐 그저 먼 이야기인 듯 장난스레 내뱉은 나의 말에 그녀는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 말했다. 그리고는 출판사 없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출판하는 1인 출판, 독립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사진을 전공했고 감성이 가득 묻어난 사진들을 모아 그녀의 모습과 분위기를 닮은 사진집을 발간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말이다. 독립출판이란 대형 출판사를 통한 책 제작이 아닌,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기획, 편집, 인쇄 그리고 제본까지 모두를 도맡아 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편집하고 인쇄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떠한 방식이라도 괜찮은,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 바로 독립출판물이다. 이런 방법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독립출판을 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 돈은 필수요소일 텐데, 그 많은 돈이 지금 나에게 있을 리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벌었던 돈은 당시 생활비에 대부분을 써버렸고 그나마 모았던 돈은 퇴직 후의 프리덤에 의해 텅장이 된 지 오래되었다. 나에게는 염치라는 것이 남아있었기에 공무원 딸을 기대하고 계셨을 부모님께 독립출판을 할 건데 도와주실 수 있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다 또 금세 쭈글이가 된 나에게 그녀는 다시 힘을 실어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해보는 건 어때?!"


그녀도 책을 출간하기 위한 자본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마련했다고 했다. 텀블벅(Tumblbug)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문화예술분야의 창작자들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주제를 막론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펀딩 프로젝트를 개설해두면 텀블벅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취향이 맞고 응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원하는 만큼의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처음 프로젝트를 개설할 때, 일정 목표 금액을 설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할 경우에만 후원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세상에나,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가 분명했다. 트렌드에 뒤쳐져도 이렇게나 뒤쳐져 까막눈이라니.


한국으로 돌아와 마카오 워킹코스 가이드북 <Macau Step Out> 제작을 위한 작업을 모두 마친 후, 그녀에게 들었던 모든 정보들을 토대로 나만의 책 만들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제까지 운 좋게도 국내의 여행 매거진들을 통해 몇 차례 소개가 되었지만, 매거진에 독자 여행기로서 실릴 수 있는 페이지는 2-4페이지 정도의 사진 위주였다. 나의 사진과 글의 일부분만이 실릴 수 있었기에 더 많은 순간들을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던 터라, 이번 기회에 그동안 소개되었던 이야기를 포함하여 그 이상 담아내지 못했던 사진과 이야기들을 담은 여행 산문집을 만들자 싶었다. 거창하지도 필력이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의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기억 속에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는 그 순간들을 함께 여행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간단한 서류 작업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컴퓨터 실력이었던 나는, 이전까지 포토샵은 물론이거니와 출판에 필요한 편집 프로그램을 다뤄본 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기본적인 것들만 배워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수소문하여 서울의 한 독립서점에서 주최하는 인디자인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였다. 그 이상 필요한 것들은 서점에서 관련 책 한 권을 구입해 도움을 받았다. 책에 담길 글을 쓰고 사진 작업을 하면서 펀딩을 위한 홍보, 표지 작업 등 동시 다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책이 있고 나를 도와주는 후원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니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무로 인쇄소 사장님을 찾아가서는 '도와주세요'를 넘어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가격을 맞추었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내지, 외지를 직접 고르고 샘플본을 만들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1차, 2차 샘플.jpg 왼쪽이 1차 샘플본, 오른쪽이 2차 샘플본


책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ISBN(국제표준 도서번호)를 받기 위해 창업도 불사했다. 1인 출판사를 설립한 것이다. 경상도가 고향인 나에게 딱 맞는, 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은 출판사 이름은 '단디 보이소(DANDI BOISO)' 다. 너무 찰떡이지 않은가. 출판사 이름을 생각해내고는 나 혼자 어찌나 뿌듯해했던지. 소량의 책을 출판하는 독립출판의 경우, ISBN 발급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이를 발급함으로써 책이라고 인정받는 기분이랄까. 더욱이 ISBN 발급을 한 경우, 대형 서점 입고도 가능하다고 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2 달이면 되려나 생각했던 '나만의 책 만들기'는 혼자 모든 것을 이끌어 가다 보니, 예상했던 기간보다 6개월이나 더 걸려 내 손에 들어왔다. 성공할 수 있으려나 노심초사했던 펀딩 프로젝트도 텀블벅을 통해 응원해주신 후원자분들과 가족 친지와 친구들의 사랑으로 목표금액을 13% 초과 달성하며 모금에 대성공하였다.


텀블벅 펀딩 성공.jpg


2017년 4월,

37명의 후원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태어난 내 인생의 첫 책,

[ 꽃다운 스물일곱's 여행 이야기 <오늘은,> ] 이 출간되었고


하루 아침에 나는

1인 출판사의 대표자, 독립출판물 기획자, 여행 산문집 작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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