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정의의 몰락
새로운 DC 유니버스의 서막을 알리는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이 개봉과 동시에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에 담긴 얄팍한 정치적 메시지가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보편적 가치를 깡그리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진실, 정의, 그리고 미국적 가치'를 수호하는 모두의 영웅을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천박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준엄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의 근본 원인은 비단 감독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할리우드 전체를 좀먹고 있는 '워크(Woke)' 바이러스가 마침내 슈퍼맨마저 오염시킨 것이다.
이 '깨어 있다'는 가면을 쓴 정치적 올바름(PC)은 작품의 서사를 짓누르고 캐릭터의 본질을 훼손하며,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할리우드의 PC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와중인데 말이다.
<슈퍼맨>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특정 감독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예술의 자유를 침범하고 모두의 공감을 파괴하는 할리우드 전반의 퇴행적 행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장이다.
슈퍼맨은 1938년 유대계 이민자 창작자들에 의해 시대의 부패와 나치즘에 맞서며 탄생한,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보편적 정의의 상징이었다. 그는 결코 특정 정파의 나팔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이 숭고한 보편성을 잃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대중을 '얼간이(jerks)'라 비하하며 "엿 먹으라"라고 내뱉는 감독의 오만한 발언은, 슈퍼맨이 더 이상 모두의 영웅이 아님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슈퍼맨을 '이민자'로 규정하며 '근본적인 인간적 친절'을 설파한다. 그러나 원작 슈퍼맨의 이민자 비유가 보편적 정의와 희망을 상징했던 것과 달리, 이번 슈퍼맨 영화는 얼핏 인도주의적 메시지로 포장되었지만, 속에는 법치주의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논리가 숨겨져 있다.
불법을 불법이라 부르지 못하고, 불법 이민자를 옹호하는 감독의 시각은 슈퍼맨의 정의가 법과 질서의 틀 안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배신했다.
슈퍼맨이 특정 진영의 정치적 구호에 이용되는 '불쾌한 정치적 캐리커처'로 전락하는 본말전도(本末顛倒)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영화 속 가상의 국제 분쟁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무자비한 민간인 기습으로 촉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압도적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이 유색인종 거주 지역을 침공하는 모습만을 부각하며 노골적으로 편향된 서사를 보여준다.
압도적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이 유색인종 거주 지역을 침공하는 모습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노골적으로 비유한 편향된 서사다.
이는 슈퍼맨의 보편적 정의가 특정 진영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모든 서사는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도덕적 개입을 감행한 뒤 비판에 직면하자 이를 '극우', '폭력',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의 공격으로 치부하는 좌파 엘리트의 전형적인 피해 의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대중문화가 정치적 의제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영웅 서사의 몰락을 예고하는 비극적인 선례가 될 것이다. 슈퍼맨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초월해 인류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믿을만한 무엇'이어야 했다.
영화가 특정 이념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순간, '선과 악의 싸움'이라는 보편적 서사는 편협한 '진영 논리'로 쪼그라든다. 이 영화가 유발한 격렬한 논쟁은 슈퍼맨이 특정 진영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남기며, 캐릭터의 본질적 가치를 영구적으로 훼손했다.
제작사는 제임스 건의 슈퍼맨으로 월드와이드 6억 불을 돌파하여 성공의 축배를 들고 있을진 모르나, 그는 '모두의 영웅'이었던 슈퍼맨을 '어느 누구의 영웅'으로도 온전히 남기 어려운 시대를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