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참 신기한 영화다. 이 영화는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 봤었다. 내가 먼저 봤는데, 아내가 영화가 어떠냐길래 "그냥 봐봐, 재밌어" 라는 말 밖에 못 하겠더라.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근 1, 2년간 본 영화 중에 가장 사건 사고 없이 흘러가는 영화인 것 같다. 그런데도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다. 극적인 에피소드 없이 밥 하고, 떡 찌고, 술 빚고, 빵 굽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장면이 반복된다. 강아지도 등장하니 예능 삼시세끼와의 차이점을 더 찾기 힘들어졌다.
물론, 굵직한 에피소드가 없다 뿐이지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의 휴식의 중요성,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류의 메시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SKY캐슬의 차민혁 교수처럼 피라미드의 정점을 위해 경쟁하고 또 경쟁하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쉬는 것만이 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점에 나가보면 온통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퇴사하라는 이야기, 퇴사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책으로 가득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퇴사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격 퇴사 권장 영화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퇴사 이후의 농촌에서의 삶을 평온하게 그린 것은 사실이다.
나도 퇴사를 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못 받아들이고 더 민감해졌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퇴사 이후에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스트레스의 종류도 달라진다. 어느 쪽을 더 견딜 수 있고, 잘 대처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렸으니 퇴사는 권할 것도 말릴 것도 아니다. 3년 전에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하자, 또래 친구들은 많이 부러워했다. 나는 그들에게 "너네도 퇴사해" 라고 쉽게 이야기했지만, 요즘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이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 않지만, 이게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메시지가 짙게 깔린 이 영화를 못마땅해 해야 될 것 같은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참 신기한 영화다. 그럼에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긍정적인 감상에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과 배우들도 한몫을 한 것 같다. 특히 김태리의 연기가 참 좋았다. 정작 대표작인 아가씨는 아직 안 봤지만,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몰입하게 되는 뭔가가 있다. 목소리도, 발성도 참 좋다.
이 영화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딱 하나, 배고플 때 보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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