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당신의 인생 영화는 언제 본 영화인가요?
위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봤던 영화들을 대답할 것 같다. 만화도 마찬가지고, 음악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뭐가 재밌어? 무슨 노래가 좋아?”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건 항상 잔뜩 오래된 것들이다. 나에게 인생 영화를 묻는다면, 만인의 인생 영화인 쇼생크 탈출을 비롯해, 백투더 퓨쳐 시리즈나 터미네이터 2, 가타카, 살인의 추억, 피아니스트 등 다 오래된 영화들만 대답하게 된다. 도대체 요즘엔 영화를 왜 보나 싶을 정도로 업데이트가 안 된다 :)
정말 드물게 30대에 인생 영화가 추가됐다. 바로, 그래비티다. 집에서 TV로 보고선 극장에서 못 본 게 한이 됐던 영화였고 심지어 재개봉도 놓쳤었는데, 이번에 또 재개봉을 했다. 그리고 아내도 못 봤다고 하길래,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면서 억지로 3D IMAX로 끌고 갔다. 집은 분당인데 뭐라도 다를까 싶어 굳이 용산까지 가서 봤고, (용산이라서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봐도 정말 좋았다.
아바타 이후 처음 보는 3D 영화였는데 (안경을 쓰기 때문에 기피하는 편), 3D 효과가 원래 이렇게 좋았었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초반에 나사를 카메라 쪽으로 놓쳐서 나사가 나한테 날아오는 느낌이 드는, 대놓고 3D 효과를 살려준 서비스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오프닝 롱테이크 씬만으로도 “뭐지, 이 영화” 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주얼이었으니 말이다.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한 우주형제라는 만화를 보면, 우주에 가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과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는 장면이 나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고생해가며, 그리고 목숨까지 걸고서 우주에 나가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그 대답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재난 영화로 분류될 만큼 우주는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았다. 초반에만 우주비행사의 도전이 이해됐을 뿐, 그 이후의 재난을 간접 체험하다 보니 역시나 그 도전이 이해되지 않았다. :) 숨소리만으로 느낄 수 있는 우주에서의 고독감, 우주선의 충돌로 파편이 퍼져나가는 장면 등에서는 다른 재난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종류의 공포가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매년 좋은 우주 영화가 1,2편씩 나오고 있다. 그래비티를 시작으로, 마션과 인터스텔라, 히든피겨스가 그랬다. 아직 못 본 올해의 우주영화 퍼스트맨은 평가가 안 좋아서 아쉽긴 하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가 또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인생 영화가 또 업데이트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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