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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Jul 17. 2023

시어머니의 두 목소리

기꺼워질 수 있었던 나의 몫



엄마 갈비뼈가 세 대나 나갔대! 전화 한 번 해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칠십 노인에게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미 심각한 상황은 아님을 파악했단 의미였다. 나도 거기까지는 가늠이 되었기에 전화를 한 번 해보라는 그 말의 의미를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예전엔 남편이 내 마음에 공감해주지 않는다 서운해했지만 그는 자기 어머니의 마음도 헤아릴 줄 몰랐다. 지금은 내가 놀랄 만큼 내 마음 가까이에 그의 생각과 행동이 닿아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농도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늘어났다. 나도 혼자된 친정 엄마를 그 누구보다 애잔히 여기고 그 역시 장모님에게도 살뜰하니 나로서는 당연히 지금이 낫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어머니, 어쩌다 그러셨어요??

걱정과 염려로 무장된 내 목소리를 듣자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욱 맥없이 가라앉는다. 대중목욕탕 바닥에 묻어있던 오일 때문에 미끄러지셨고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으셨는데 기침하는 게 두려울 만큼 통증이 심하다고 하셨다. 한동안 들어드리고 몸조리 잘하시라 말씀드린 다음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뭐래?

많이 아프시대. 기운이 하나도 없으셔

아까 내가 전화했을 땐 평소랑 똑같았어. 괜찮다고, 시간 지나면 붙는 거라고 걱정 말라면서.

그 말을 듣고 나도 피식 웃었다.

아프시긴 많이 아프실 거야



우리 부부가 어머니의 이런 다른 반응을 서로 웃으며 넘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내게 하소연하는 일이 잦았는데 몰입하여 듣다 보면 가슴 아프고 답답하여 아들인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일이건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해결책을 찾는 일이 우선순위인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마지못해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곤 했는데 늘 같은 얘기를 했다.



너는 좀 오바가 심한 거 같아



늘 내가 과장한다며 자기가 확인하면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나를 거짓말쟁이 오바쟁이로 만드는 어머니의 이중메시지가 싫었다. 우리 부부 사이의 분란을 원하시진 않을 터인데 대체 뭐지?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 어머니가 어딘가 불편하고 속상하단 얘기가 결코 듣기 좋을 순 없었을 거다. 그럼 나는 귀만 열고 입은 닫고 살아야 한다는 건가?



어느 순간 어머니는 그저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고 실질적인 대책을 원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일단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 일은 내게 의미 없다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어찌 됐든 남편의 어머니가 아닌가. 이런 어머니로 인해 마음의 피로가 쌓여감을 느끼게 되면서 어머니와 눈 마주치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은근슬쩍 자리를 피했다. 물론 그때마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어머니의 두 목소리는 우연한 기회에 남편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실 때마다 안부 전화로 컨디션을 여쭙곤 했었는데 내가 잊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퇴근길에 통화할 땐 별말씀 없으셨다며 내가 아직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니 한 번 더 전화를 걸어주길 바랐다. 흔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어머니께 전화를 하며 남편은 아직 귀가 전인 양 굴었다. 하지만 남편은 옆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방금 전 아무렇지 않다며 씩씩하게 전화받은 어머니가 졸지에 중환자 마냥 가라앉은 목소리로 며느리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제대로 목격한 것이다.



그가 정색하며 어머니를 옹호하거나 맞닥뜨린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변명하고 역성 들으며 되레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갔다면 정말 다른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그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네가 잘 들어주니까, 너에게 엄마가 그러는구나



그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간 내가 느낀 고충을 늘어놓았다. 가만히 들어주던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엄마 얘기 잘 들어주라. 나도 더 잘할게.



얼마나 단순한지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버렸다. 남편의 말이 충분히 이해되어서라기보다 그가 사실을 제대로 알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 어머니는 내게 그다지 바라시는 것이 없다. 내가 와서 간병하기를, 병원에 모시고 가기를, 맛난 거 사들고 와 부엌을 들여다 보길, 바라시지 않는다. 그러니 기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듣고 위로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내겐 다른 일보다는 수월한 일이다. 어머니가 그것 외에 내게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도 한몫할 테지만.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길어질걸 감지하면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에 닻을 내려본다.



어머니의 두 목소리를 남편과 내가 공평히 알고 있기에 더없이 기꺼워진 며느리로서의 나의 몫을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두 목소리가 두 마음은 아님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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