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9학년을 마무리해냈다. 좌충우돌이 이어졌고, 실패, 그리고?
의자에 붙었는 줄 알았다.
그냥 숙제에 불과한데, 하루 8시간 이상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중이라고 한다.
수학과 과학 프로그램 등도 일정이 바쁠 텐데....... 분명히 일정이 뒤로 밀렸을 텐데.......
방학에는 실컷 놀아야 하는데, 고등학생이니까 다른 경험들도 좀 해 보는 게 좋은데........ 책도 읽고 싶다면서.... 영화도 보고 싶은 리스트가 끝이 없다더니..... 과연 일정 내에 저 많은 Art 과제를 무사히 제출해 낼 수 있을까? 자꾸 물어볼 수도 없고, 대신해 주고 싶지도 않고, 내 일이 아니니 함부로 해 줄 수도 없고, 도대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확 신경 끄고 있어? 마미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오프라인 수업은 하나도 없이 100퍼센트 온라인으로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그것도 다른 나라의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듣는다는 것.....
9학년이라는 1년 과정을 드디어 마치고 나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2학기는 그래도 1학기보다는 수월해하는 것 같았다. 수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1학기에 고생 고생을 하며 파악해 두었기에 2학기는 그나마 일정면에서는 나았다.
아뿔싸......
그런데 내용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낮은 목소리로 말해주는 짱이.....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해 보자."
이렇게 한 달 두 달 버텼고 드디어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엄마, 나 Art는 포기해야겠어."
"그렇구나. 그러자." (다행이었다. 난 "왜? 어째서?"라고 묻지 않았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포기하는데 괜찮아? 그럼, 한 과목은 펑크 나는 거야."
"네가 그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겠지. 네가 좋으면 된 거지." (갑작스러운 상황이어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잘했다.)
"고마워. 엄마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내가 마음이 훨씬 편하네. 응. 그래야 될 것 같아."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잘했네." (어떻게 이런 말이? 응? 내가 내가 하는 말을 통제 못 하고 있음. 눈치 보나?)
"Art까지 기말 보려고 하다가는 다른 과목들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 클 것 같아. 맞아. 그거야."
"와~~~ 너 판을 읽는구나. 멋지다. 그래, 지는 판은 하지 않는거야. 이기는 판을 골라야지." (어라? 내가?)
"응, 엄마. Art를 버리는 게 내가 이기는 거야. 그래야 다른 과목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좋네. 잘했네. 역시 넌 머리를 쓰는구나. 그래. 아주 좋네." (다행이다. 기말을 잘 보려고 그러는구나.)
"응. Art만 포기하면, 나는 시간도 확보되고, 다른 과목들 충분히 볼 수 있어. Art는 다음에 다시 듣을게."
"그래, 여름 방학에는 좀 놀자. 놀아야 또 공부하지. 방학에는 아주 푹~~~ 노는 거야. 정신없이 놀기!"
"근데 말이야. 그렇게 놀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나 Art를 방학 때 보강할 수도 있어. 괜찮지?"
(너..... 너!!! 네가 선택해서 방학 때 땜빵하고서, 또 충분히 못 놀았다고 나중에 툴툴될 수도....)
"그건 곤란해. 방학은 놀라고, 쉬라고 있는거야. 방학에는 노는거야."
결국 짱이는 Art를 방학 때, 얼른 해 버리기로 선택을 했다. 몇 주 전에 책도 읽어 두었고, 조금이라도 기억이 있을 때 해 버리는 게, 어차피 해야 할 과목이라면 낫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우리는 "방학에는 놀아야지, 실컷 놀아야지"라는 카드를 계속 들이대었다. 짱이는 "난 (재수강해도) 이래도 잘 놀 수 있어. (못 놀까봐) 걱정하지 마. (재수강) 하게 해 주라"로 주장, 우리는 졌다.
한 학기 동안 작업해야 할 작품은 모두 25개 정도. 여기에 에세이를 쓰는 것도 3개 정도가 있었다는! 마미는 이제야 알았네. 그동안 스스로 다 챙겨서 하느라 수고 많았네. 에세이 주제도 흥미로웠다. 미술사에서 3가지 시대를 골라 주고 이 각각의 시대에 있었던 아름다운 교회 건물들을 비교 분석하고, 시대적인 변화를 담아내고, 그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스스로 이해를 해 내고, 다시 온라인 프로그램에서 수업 내용을 이해해서 에세이를 무사히 작성해 내었다고 한다.
책 사진 + 온라인 학교 사진
종강일이 다가오면서 짱이는 밤과 낮이 다시 바뀌었고,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고,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최종 마감은 미국 텍사스 시간으로 10일 자정, 한국 시간으로는 11일 오후 1시 59분! 아, 정말 싫다. 이렇게 59분~~ 이런 거 챙기는 거가 참 부담이 될 텐데..... 우리 딸은 흔들림 없이 59분을 또록또록 말하면서 시선 집중하고 계속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감날 아침 늦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엄마, 상자가 필요해. 지난번에 엄마 운동화 샀던 그 상자, 찾아서 (경기도) 미사로 가져다줄 수 있어?"
"응? 지금?" (눈에 힘이 팍! 들어갔지만, 숨 고르기를 하면서)
(얼른 이어서) "그럼! 그러지, 뭐..... 근데 다른 상자로 하면 어떨까."
"안 돼. 난 그 상자를 원해. 찾아봐."
이 와중에 왜 꼭 그 상자야!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일단 찾았다. 또 찾았다. 없었다.
"없네. 혹 더 작은 상자는 어떨까?"
이 대화가 있었던 건 마감날 오전 11시 40분. 부리나케 챙겨서 집을 뛰쳐나왔지만, 택시는 없고, 문자를 쳤다.
"시간 내에 못 갈 것 같아. 다른 상자를 구해 봐."
"일단 와." (언제 우리의 관계가 뒤집힌 것이지? 누가 대장인 거야?)
"응." (=마미)
전철 지도로 계산을 해 보니 우리 동네에서 택시 타고, 전철 타고, 뛰고 뛰어도 1시 15분 도착이라고 뜬다.
전철로 몸을 날리며 생각났다.
"아, 마감은 1시가 아니라, 1시 59분이지. 휴.... 다행이다."
우리 집 역사상 중요한 순간을 딱 잡았다.
어마어마한 양을 그린 스케치 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짱이는 지난 몇 주 동안 보냈던 "나 홀로 온라인 Art Class"를 이야기해 주었다. 마지막 작품은 내가 엎고 뛴 박스에 담았다. 이렇게 9학년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들고뛴 보람이 있었다. 짱이는 오후 1시 44분에 무사히 다 제출하고, 빠진 건 없는지를 매의 눈으로 점검! 마감 전 16분이라니! 마미는 "훌륭하다! 정말 훌륭하다!"를 외치며 옆에 그냥 서 있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과제의 양이 어마 어마 했다. 애썼네....... 이 순간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오래간 만에 느긋하게 같이 밥을 먹었다.
"이번 Art 수업, 너한테 뭐가 가장 도움이 되었어? 창의력? 끈기?"
"내가 갖고 있던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연습에 도움이 되었어. 아주 많이. 예를 들어서, 에세이가 500-600 단어로 쓰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300 단어로 제출했어. 쓸려면 더 잘 쓸 수 있어. 옛날의 나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지? 불안했니?"
"불안이고 뭐고, 일단 제출이었어. 제출이 나한테는 중요했어. 2번째 에세이는 300 후반 정도로 써서 보냈어."
"점수는 어땠는데? 만족했어? 하긴 단어수를 줄일 때 너의 기대치도 조절했겠다, 그렇지?"
"첫 번째 에세이는 단어수는 꽉 채우지 않았지만, 나름 완성도가 높았어. 그래서 100점. 이 정도면 돼라고 계속 생각했지.
"야~~ 너 훌륭하다."
"응. 맞아. 옛날의 나라면 만족 못했을 것을 지금은 만족하고 보냈어."
"완벽주의를 내려놓았다고 해서 내가 대강 대강한건 아니야.
최선을 다하기는 했어. 복잡하게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거야."
짱이에게 완벽주의는 무척이나 힘든 단어였다. 어떤 놀이를 하던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최대한 해야 했고, 무슨 일을 하던 자신이 만족할 만큼이 아니면 결과에 관계없이 자신을 비난했다. 꼬마인 짱이가 머리를 푹 숙이고 자신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는 건 마미에겐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어린이 짱이가 이렇게 완벽주의를 발동하며 무한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과정을 살필 수 있도록 횟수를 목표"로 정해 두고, 그 숫자를 달성하면 만족하자고 초등생이던 짱이에게 제안을 여러 번 했었다. 짱이는 교내 음악 콩쿠르를 6년 내내 자진해서 나갔기 때문에 연주할 곡을 몇 번 연습하자로 주로 완벽주의 내려놓기 연습을 했었었다. 중학생 짱이는 연설 대전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100번 읽기"를 스스로 목표로 세우고 걸어갔었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짱이는 "나는 알아, 내가 더 할 수 있었다는 걸. 부족했었어"라며 자신을 괴롭혔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Art 수업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과제를 딱 보면,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싶은 것도 있었어. 그럼, 현실 적으로, 나름 머리를 썼어. 그래. 이번 Art 수업에서는 내가 생각을 하고, 힘 조절하는 것, 해야 할 일들을 계산하는 것, 원래 (제대로 하면) 걸릴 시간을 계산해 내고, 하지만 "나는 몇 시간 내에 끝낸다"로 마음을 고쳐 먹고, 그 시간 내에 끝내는 걸 연습했어. 그게 가장 컸네. 좋네."
짱이가...... 고맙다고..... 했다..... 감동받았다.......
"이제 Art는 다 된 거니?"
"무슨 말이야, 기말 쳐야지."
"아, 맞다, 시험도 있구나. 시험은 어때?"
"미술시험이 만만치 않음! 엄마, 우리 교과서 봤지? 그거랑 온라인 내용까지 다 봐야 돼."
"너 너무 힘들겠다. 이번에도 완벽주의 내려 놓을거지?"
"물론. 시험은 70점 이상이면 돼. 난 안전하게 75점 정도까지 받으려고."
"그렇구나. 좋다! 아주 좋네. 그럼, 최종 점수는 네 마음에 들 정도야?"
"응. 오늘 제출했던 것들의 점수를 받아 보면 정확하게 아는데, 현재까지 실기는 95점 살짝 넘어."
"대박! 너 진짜 열심히 했네. 완벽주의 내려놓았는데도 점수가 무지하게 높네."
"응. 이제 감이 좀 와. 완벽주의까지 안 해도 되는 거였어. 시간 내에 제출하면 점수가 높아."
"훌륭하네. 우리 딸 진짜 훌륭하네."
"아, 그리고, 코로나여서 이번엔 엄마가 내 시험 감독해야 돼. 시간 잡아둬."
"그래? 학교에서 허락받았어?"
"물론이지. 학교에서 지난번에 그렇게 설명회도 했잖아. 엄마도 들었지?"
"내가? 그랬구나. 네 시험이지, 내 시험은 아니니까, 네가 챙겨야지. 그럴게. 시험 감독할게."
"고마워. 내가 Art 시험지는 미리 신청해뒀어. 과제 제출 다 하고 하면 늦을 것 같아서 미리 해 뒀지. 시험공부하고 치기만 하면 돼."
"그랬구나. 잘했네. 휴~~ 엄마는 이제 알았네."
"내가 생각해도 시험지 신청해 둔 건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느긋하게 & 숨 막히는 대화, 즉 방학 마무리와 신학기 시작을 위한 시간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Art는 17일까지 끝내고 싶은데, 18일까지 가면 곤란해져."
"그래? 공부할 양이 어느 정도야?"
"엄마, 우리 교과서 봤지? 그거 반이야. 1년 동안 배우는 거야. 그거랑 온라인 내용이 다 들어가."
............ 교과서를 다시 봤다. 일단 496쪽이다. 하드 커버라. 내용이 빡빡하다........
"완벽주의를 이번에도 내려놓을 거잖아."
"응. 내 목표는 75점이야."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
"다음 주에 포스텍 캠프가 시작해. 나 이거 제대로 하고 싶거든. 근데 그전에 CTD 수학을 마무리해야 해. 이게 아주 힘들어."
"CTD 수학은 지금 어떤데?"
짱이는 세세하게 자기가 지금껏 했던 공부와 들어갔던 시간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음악 듣고, 하루 10시간씩 자고, 스펀지 밥 보며 노는 시간은 모두 빠져 있었다. 그래도 귀엽다. 엄마는 이렇게 신나게 노는 것도 못했고, 공부도 이 정도로 못 했다. 네 판은 참 재미나는구나.
"CTD수학은 나 제대로 해야 돼. 이거 Honors야. 더구나 학교로 제출해서 credit인정받을 거야. 이것 들으려고 엄마랑 내가 얼마나 고생 고생했는데. 10학년 때 AP 수학 들을거야. 그리고 내가 나중에 내 공부할 때도 이 점수는 계속 남아. 대강하면 안 돼."
"그렇구나. 고생은 네가 했지, 나는 뭐....... 그나저나, 우리 딸, 방학인데 공부 너무 많이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 이거 extension 하고 싶어. 근데, 아빠가 처음부터 분명히 안 된다고 해서 지금 힘들어."
"네가 한다는데, 해~~."
"아빠가 안 된다고 할 거야. 그래서 내가 요즘 더 열심히 하는 거야. 아빠가 마음 돌리도록 하려고."
"그럼, 아빠 몰래할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extension 비용은 내 돈으로 낼께."
"돈도 없으면서. 용돈 6만 원인데, 어떻게?"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래도 100 불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엄마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근데 내가 낼 거야. 아빠 허락만 받게 해 줘."
"근데, 이 수업이 그렇게 연장이 되는 거야?"
"안 되나? 그럼, 안 되는데. 엄마도 CTD로 메일 보내줘. 나도 선생님한테 메일 보낼게."
아....... 또 재수강 비스무리한걸로 가는구나...... 그래도 좋다. 네가 원하는 게 얼마나 고맙니......
모두가 잠든 밤을 꼬박 새우고, 짱이는 그 어려운 Pre-Cal을 낑낑대며 혼자서 배우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우리 고딩 홈스쿨러는 깊은 잠에 빠졌다. 1시간만 잔다고 했는데...... 몇 시간이 될는지...... 블라인더를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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