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고등학생들의"국어,"우리에겐 "진짜 영어." 높고 높은 산이었다.
10학년의 막이 내리는 순간은 역시 드라마틱 + 쌉쌀 + 새콤 + 달콤 + 짜릿 +++였다. 며칠 동안, 아니 몇 주 동안 짱이는 망부석이 되어서 "그냥 하자"를 스스로 외치며 하루하루를 꽉꽉 채워갔다. 하지만, 이번 학기도 마찬가지로 종이 치는 그 순간까지 달렸다. 지칠만 할 텐데도 (베) 짱이는 끝까지 이성과 감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옆에서 보는 나는 "내적 동기"가 충만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저력을 보고 있다는 감동을 받는다.
오후 2시 정각! "끝"이라는 짱이의 톡이 뜨고서야 우리 집은 다시 침묵을 가르고 활기찬 공기가 돌았다. 열심히 열심히 달려왔지만, 10학년의 교과목들을 혼자 힘으로 해 내는 것은 역시 버거웠다.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인 상황.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파악하면서 지난 9학년을 보내더니, 짱이는 올해는 홀로 공부해 내는 방법을 조금 더 터득한 것 같았다. 2학기 말의 마감을 하루 앞둔 화요일 오후부터 짱이의 머리는 쉴 새 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외부로도 보이는 듯했다. 두뇌의 한쪽으로는 미국 정부론, 미국인들의 국어, AP Cal 등 교과목의 나머지 진도를 달리면서, 또 한쪽으로는 이 과목들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건질지를 수없이 계산하고 또 계산을 했다. 마감날인 수요일 아침, 미국인들의 국어, 즉 English의 마지막 과제가 남았다. 5분짜리 영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촬영을 하는데 10분을 계획한다고 했다. 짱파의 출근시간도, 내가 미국에 있는 동료와의 미팅도 10시로 "넉넉하게" 잡아 두었다. 우린 9시 부터 "충분히" 도와 주려 했다. 세팅 등도 짱이가 그려둔 대로 그대로 구도를 잡았다. 짱이가 시키는 대로 나름 신속히 몸을 움직이며 준비했고, 10시가 가까워졌지만 짱이가 흘리는 땀과는 거리가 멀게도 아직 과제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초조해졌다. 내가 업무를 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인 동료와 "청소년 프로그램"에 대해 미팅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내 옆에 있는 "청소년"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엄마의 역할을 선택할 것인가, 워킹 우먼으로 회의를 선택할 것인가?
"짱, 미팅을 저녁으로 바꿨다. 마음 편하게 해."
"진짜? 아.. 엄마, 진짜 고마워. 어쩌지, 미안해서."
"괜찮아.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우리 회의가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자고 하는 건데, 너 정도도 못 도와주면 말이 좀 안 맞잖아. 천천히 해. 하긴 네 사정이 천천히 하지는 못하겠네."
"진짜 고마워, 이해해줘서."
촬영 카메라는 왜 자꾸 넘어지는지. 세 명이 머리를 돌려야 했다. 짱파는 사무실에서 계속 카톡이 뜨고....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해야지 효율도 나는 법! 카메라를 살금살금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가면서 다시 또다시 잘 세웠다. 5분짜리 영상을 계획했는데 거의 9분!으로 나왔다. 편집을 해야 할지, 편집은 포기하고 그냥 갈지를 딱 2초 생각하더니, "그냥 가자! 시간이 없어." 아직 이 마지막 과제를 업로딩 하기까지 해야 할 작업이 많나 보다.
"나 영어, 그러니까 국어를 선택해야겠어. 놓칠 수가 없어. 근데 그렇게 되면 AP Cal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학기말 스트레스로 짱이는 넘어지고, 주섬 주섬 일어나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자꾸자꾸 이 생각이 떠오르나 보다. 다행인 것은 마음속으로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표현해서 우리가 짱이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도록 소통해 준다는 것이다.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좋네!"
"하루만!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나 진짜 이번에 환상적인 기록을 깰 수 있었을 거야."
"이 이상 어떻게 더 잘해? 난 네가 대단해. 아주 좋아."
"난 왜 시간이 계속 부족한 거지? 난 뭐가 문제인 거지?"
"넌 정성과 노력이 이미 넘쳐. 아주 아주 넘쳐. 단지 너처럼 외국인이 미국 아이들처럼 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도전했고, 시련을 겪고 있고, 여전히 버티고 있어. 훌륭하잖아? 혼자 해 내야 하는 양이 너무 많을 뿐이야. 문제는 그거야. 네가 아니야."
"그런 거지? 그치? 나 잘하고 있지? 나 수학을 너무너무 아깝지만, 내려놓아야겠어. English를 포기 못 하겠어. 정말 이번에 대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야."
"........... (별나다, 참말로 너 별나다, 뭘 그렇게 잘하고 싶어서 그러니?) 그래! 좋아! 넌 해낼 거야!"
오후 2시에 10학년이 마감될 때까지 옆에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도 외부 미팅을 나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굿 럭!"만 외치고 나왔다. 일을 보면서도 마음은 짱이에게 가 있었다. 미안함과 대견함, 안쓰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쳤다. 혼자서 마무리를 하면서 승리감을 오롯이 느껴 보길!
2시에 최종 과제를 제출한 후 아침은 패스, 점심도 굶고, 짱이는 다시 영등포로 뛰어갔다.
매주 수요일은 하자센터에서 메이커 교육에 참여하는 날! 이제 바야흐로 10학년 기말고사! 공부할 책들을 가방에 담아서 전철역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 교육에는 휴학을 한 언니 오빠들과 함께 배우는데 이 날 각자의 사업 아이템을 브레인스토밍 하면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유익한 내용을 배울 예정이어서 빠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마친 후 즐거워진 짱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다는 것을 알기에 귀갓길에 마중을 나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하고, 졸고 있는 그녀. 심지어 기말을 준비하느라 몇 주 동안 집 밖에도 못 나와서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도 아주 오랜만에 갔거늘.... 피곤에 절어서 반도 못 먹고 녹이고 마는 고딩이!
"오늘만큼은 나는 나에게 보상을 주어야겠어. 잘 거야."
학년말을 마무리한 이제 기말고사가 바로 열렸지만, 오늘만큼은 "실컷" 자겠다는 선포를 한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따지지도 않거늘, 그냥 신경이 쓰이나 보다. 짱이의 친구들, 코끼리 인형, 고양이 인형, 백곰 인형들, 호랑이 인형들이 모두 모여서 같이 꿈나라로 빛의 속도로 떠났다. 최근에 읽은 자료에서 동물 인형들이 우리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한 후로는 더욱 동물 인형들을 아끼는 짱이와 마미!
"결과 나왔어. 마지막 과제로 촬영해서 제출한 거, 100점."
다음 날 새벽 잠결에 우연히 눈을 뜨는 나에게 짱이가 던지는 한 마디였다! 오래전에 깨서 책상에 앉아 있었는 듯한 눈치였다. 흠칫 놀랐다. 시간이 없어서 거의 "악착같이"한다는 모습으로 투박하게 제출했던 마지막 과제였는데,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밤에 이 점수를 받고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여러 번 자고 있는 우리를 쳐다봤을까? 깨우라니까. 깨워도 된다고 했거늘 또 배려를 하는 거니, 넌.
"내 선택이 맞았어."
"수학을 내려놓은 대신에 English를 잡은 건 정말 잘한 것 같아.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커리어를 생각해도 English 점수가 Math보다 더 중요해. 작년에는 내가 엔지니어링 쪽으로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아서 AP 수학이 제일 중요했는데, 이젠 아니야.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은 나 같은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영어를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가 더 중요할 것 같아. 나 진짜 선택 잘한 것 같아."
".......... (10학년인데 벌써 거기까지 생각을 하니....... 넌 참 생각이 많구나, 딸!) 그렇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축하해, 딸!"
"응. 고마워. 엄마, 이 점수면 지금까지 내 평균이 얼마인 줄 알아?"
"............ (기말 시험이 아직 남았는데.......) 글쎄..."
"있어봐. 계산해 보자............ 헐! 대박! 90.98! 나 드디어 A선을 넘었어. 해 냈어."
"난 다른 과목은 몰라도 국어는 초등, 중등 때 늘 90점 이상이었어. 딱 1번 89점 받았는데, 그때도 공부 하나도 안 하고 가서도 그 정도였어. 그땐 수학을 선택하느라 국어를 시험공부를 못했었어. 미국 학교에서는 계속 English (미국 고등학생들의 국어)가 점수가 제일 안 좋았는데, 이제 해 냈어. 아, 기분 정말 좋다."
"대단하다, 너. 진짜 대단하다."
"더구나 이건 내 국어도 아닌데, 난 해낸 거야. 아, 진짜 좋다."
한 학기 동안의 과제는 최종 평균 90.98!
1년 반 전에 9학년으로 처음 미국 교육시스템을 시작할 때 동서남북 방향을 모르고 방황했었는데, 짱이! 그간 이걸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공부는 못 도와줄 망정 하소연은 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점수가 바라고 예상하던 것과는 달리 차이가 있을 때마다 최근 몇 주는 옆에서 들어주었다. "공감" "컴패션"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이 English가 얼마나 방대하고 깊었는지, e-textbook이 한도 끝도 없이 클릭 한 번으로 좌악 ~~ 촤악~~~ 펼쳐지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말을 하지..... 짱.... 고생했다.......
English, 이제 "기말고사"라는 산이 남았다.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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