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

3월 4일에 내가 가장 많이 한 말

by 코알라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개학이 다가왔다.

정확히 개학은 3월 3일 화요일, 어제였지만, 둘째 아이가 갑자기 개학 전날부터 열이 나서 등원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한 놈은 보내고, 한 놈은 보내지 못한 어정쩡한 해방을 맞이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정말로 진정한 의미의 개학이었다.

혹시 몰라 오늘도 둘째 아이에게 유치원 가지 말고 엄마와 놀자고 했는데 아이가 유치원 못 갈까 걱정이 됐는지 눈물이 반쯤 차오른 눈으로 날 바라보며 정색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해. 언니도 없잖아.”

네 의견이 정 그렇다면. 열도 떨어졌겠다, 가야지!


두 놈 다 집을 나서려니 오래간만에 활기찬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들은 제각기 수업을 들으러 갈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오래간만에 혼자 도서관 가서 그동안 밀린 일을 하려고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가방에 주워 담았다.

곧 첫째가 친구와 만나서 같이 학교에 가기로 했다며 잔뜩 설렌 표정으로 가방을 메고 나갔다.

나도 준비가 끝나 나가려고 하니 둘째는 벌써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서 나를 부른다.

“엄마, 저 여기 있어요. 벌써 신발 다 신었어요.

이름표는 잠바 입고 걸라고 제가 들고 있어요.

저 실내화 가방도 챙겨야 해요.

태권도 띠는 가방에 있죠?

아 맞다, 저 실내화에 지비츠 꽂아야 해요.

쿠루미 떨어졌어요.”

아니, 준비가 끝났으면 자기가 다 챙겨 나갈 것이지, 얼마나 유치원에 가고 싶었으면 몸만 먼저 나가 있다.

입만 동동 떠다니는 게 정 씨들의 특징인가.

개학의 설렘+너저분한 집+산더미같이 쌓인 일로 뒤죽박죽 엉망인 내 정신을 집에 다 내려놓고 현관문을 잽싸게 닫았다.

혹시라도 정신없는 정신이 문틈으로 새어 나올까 한 번 더 문을 눌러 밀폐를 시켜버렸다.

그리고 둘째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입만 동동 떠다니는 둘째를 태우고 지하주차장을 나섰다.

유치원 가는 길에 아이의 친구를 태웠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유치원에 도착했다.

차 문이 열리자 아이들과 나는 습관적으로 서로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이파이브 타임이다.

짝-

“좋은 하루 보내!”

짝-

“재밌게 놀아!”

드라이브스루로 차량 도우미 선생님께 아이들을 패스한 후 드디어 적막한 차 안 공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개학이다!

기쁜 마음으로 성당을 향해 달렸다.

개학했으니 미사를 봉헌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갔냐고?

봉사하는 성물방에 첫째 아이가 ‘왕자와 거지’ 책을 두고 와서 가지러 간 것뿐...


‘왕자와 거지’ 책을 되찾아 다음 목적지인 도서관으로 갔다.

주차하고 도서관 건너편에서 커피를 한잔 샀다.

“고맙습니다.”

를 마지막으로 첫째가 하교하기 전까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예정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오늘은 숙제를 끝내야 하기에, 도대체 내가 오늘 무슨 말을 많이 하게 될까?

말을 안 해서 쓸 말이 없으면 곤란한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해가 조금 드는 창간데, 얼굴까진 침범하지 않아 눈부시지 않을뿐더러 비교적 다른 자리에 비해 따뜻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다.

조용히 앉아 노트북을 켰다.

꼬마들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반드시 기사 여섯 개는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초울트라 집중을 해서 ai와 열심히 작업을 했다.

드디어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그분께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끝났어!!! 바로 피아노학원 간다~”

“응, 어땠어?”

“좋았어, 끊어~~!”

한 시간 뒤면 그녀와 만나게 된다.

서둘러하던 일에 다시 정신을 끌어모았다.

한 시간 뒤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끝났어!!! 친구들하고 놀다 가도 돼? 응? 제바아아 알~”

“응, 피아노 어땠어?”

“아싸! 좋았어, 끊어~~!”

주섬주섬 짐을 챙겨 도서관에서 나왔다.


머릿속엔 온통 오늘 학교에서 어땠는지 궁금할 뿐.

가는 길에 전화로 어땠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친구들하고 오래간만에 신나게 놀고 있는데 방해하는 건 아무리 딸이래도 예의가 아니지.

‘어땠냐’는 물음을 애써 삼키고 집에 들어왔다.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인지 기운이 없어서 소파에 누웠다.

누워있는데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의 인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인사했다.

“응~ 어땠어?”

아이는 가방끈을 양손으로 잡고 간식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좋았어.”

“뭐가 좋았어? 어땠어!”

“그냥 재밌었어. 좋았어.”

“수업 시간엔 어땠어?”

“기억 안 나.”

“선생님은 어때?”

“무서워.”

“어땠길래 무서워?”

“목소리가 좀 커.”

“왜? 화내셨어? 벌써 화내셔? 개구쟁이가 많니?”

“아니, 화낸 건 아닌데 목소리가 커.”

“그래~ 짝꿍은 어때?”

“나만 여자야. 좋아.”

“오~ 좋은데?”

“엄마, 저 원래 수업 시간에 가위바위보나 이런 거 하나도 안 하잖아요.

근데 오늘 수업 시간에 친구들하고 가위바위보 했어.”

“오? 대박! 진짜? 어때? 해보니 재밌지?”

“응... 처음엔 안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복도로 나오라고 하셔서 나갔는데 전혀 안 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세명만이라도 꼭 하라 그러셔서 했어.”

“너 선생님 제대로 만났다. 야, 너무 좋다!”

“힝구”

“이리 와봐”

나는 소파에 누워 아이를 불러 껴안았다.

그리고 1교시 땐 어땠냐, 2교시 땐 어땠냐부터 5교시까지 차례차례 어땠냐는 질문을 했다.

대답을 회피하면 즉시 간지럼으로 응징하며 어땠냐고 계속 물어봤다.

이러면 앞으로 더 나에게 얘기해 주지 않을 거란 슬픈 예감이 들었지만 나의 폭주는 멈출 수 없었다.

1, 2학년 때와 비교해 주며 기를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이상한 집착으로 튀어나왔다.

한참을 어떠냐는 질문으로 공격당하던 아이는 지금 놓아주지 않으면 엄마 몸에 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강수를 뒀고,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마취총을 여러 대 놓으며 아이를 풀어주었다.


한 시간 뒤, 둘째 아이가 태권도 차에서 내렸다.

“ㅉㅈㅇ~~~~~ 어땠어?”

“엄마, 차 안에 수빈이 있어요.”

“수빈이? 귀염둥이야~ 오늘 유치원 어땠어? 선생님 어땠어? 친구들 어땠어?”

“괜찮았어요.”

“우리 아기 배 아팠어 안 아팠어? 열났어? 기분은 어땠어?”

“괜찮았어요.”

둘째를 만난 나는 또 한참을 붙들고 아이에게 어땠냐는 질문을 했다.

‘괜찮았다’는 답을 내뱉으며 평소엔 잘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왜 저러냐는 당황스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아이에게 ‘어땠냐’는 물음은 절대 하지 말라고 육아 서적에서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입을 닫게 만드는 질문이라나, 뭐라나... 내가 이렇게 ‘어땠냐’고 많이 물어보는 사람인 줄 몰랐다.

그나저나 나는 새 학년 초라 그런 거겠지...? 당분간 ‘어땠냐’고 물어보기 조심스러울 것 같다.

아, 뭐라고 물어봐야 하지.

궁금한 내 아이의 사회생활.


그나저나 나는 오늘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도 같은 소리를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녀왔어? 어땠어~?"

... 나의 오늘은 어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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