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우연히 아파트 모델하우스 구경을 갔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분양권을 계약을 하고 나왔다. 미분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동호수를 고를 수 있었다. 쭉 살펴보다 나는 천사니까 1004호로 마음을 정했다.
우리 가족은 첫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분양받았던 1004호에 입주하게 되었다. 거의 입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 가족도 1004호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둥지에서 우리 세 식구는 설렘과 희망으로 부푼 마음으로 이삿짐을 정리했다. 이사를 왔으니 아랫집, 윗집, 옆집 정도는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인사를 가기로 했다. 윗집은 아직 공실이었지만 옆집과 아랫집은 우리보다 먼저 입주를 마친 상황이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아랫집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러 갔다. 904호 초인종을 누르니 한참 뒤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1004호, 윗집에서 왔어요.”
“잠시만요, 기다리세요.”
나와 남편은 어떤 분일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904호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꽤 시끄러울 텐데 제발 좋은 분이면 좋겠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문 앞에 서서 기다렸는데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아이고, 윗집이구나~ 미안해요. 내가 목욕을 하고 있었어요.”
샤워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어주신 분은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뒤로는 커다란 개 모양 조각상이 보였다.
“아, 그러셨구나.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안녕하세요~ 저희 어제 이사 와서 인사드려요.”
“아이고, 애기가 있구나? 요즘 애기 보기가 참 힘든데 윗집에 이렇게 예쁜 공주님이 산다니 내가 기분이 너무 좋네요.”
“아직 걷지 못해서 지금은 괜찮은데 클수록 시끄러워질까 봐 걱정이에요."
“아 애들이 좀 뛰고 그래야지. 막 뛰어다녀도 나는 괜찮아요. 애가 뛰는데 왜 미안해요. 애는 뛰는 게 당연하지. 뛰면 소란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지. 나는 진짜로 괜찮으니까 절대 애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편하게들 지내요. ”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상투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다.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좋은 분인 것 같아서 진짜 다행이라며 30대 초반이었던 우리는 기뻐했다.
몇 달 뒤 아이의 돌잔치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돌잔치가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돌떡을 들고 아랫집 초인종을 다시 한번 눌렀다. 9층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시며 아이에게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라는 덕담을 얹어주셨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 영양제인 텐텐을 한 통 사가지고 오시더니 돌떡은 공짜로 먹는 게 아니라며 아이에게 선물해 주셨다. 돌떡은 공짜로 먹는 게 아니란 것을 할아버지 덕에 알게 됐다.
904호 할아버지는 그동안 봤던 노인들과는 사뭇 다른 할아버지였다. 종종 목격되는 모습은 유기농 식빵을 사가지고 오시는 모습, 해가 쨍할 땐 선글라스를 끼고 칼라티를 입고 산책하시는 모습, 운동 삼아 집에 올라갈 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시는 모습. 오가다가 마주친 아랫집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향기까지 났다. 이런 멋쟁이 할아버지는 처음이었다.
나와 아이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애기엄마, 요즘 왜 애기 노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애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니죠? 나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절대 애한테 조용히 하라고 뛰지 말라고 하지 마요.”
그때마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고, 같이 있던 동네 언니들은 아랫집 진짜 잘 만났다고 부러워했다. 가끔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는데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말씀하셨다.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겠네~ 우리 딸 생각나. 우리 딸은 친정엄마가 빨리 돌아가셔서 애기 낳고도 엄마 도움을 못 받았어. 나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 그때 딸이 하필 미국에 있을 때여서 내가 미국까지 가서 애기 봐주고 그랬는데. 애기엄마는 엄마가 있어 참 좋겠어요~”
어느 날은 아랫집에서 월패드로 전화가 왔다. 윗집사는 사람 특유의 두근거림을 안고 죄인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당신께서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우시는데 깜박하고 비트를 잔뜩 시켰다고 한다. 비트 한 상자가 오면 잘 보관해놨다가 반은 우리 먹고 반은 당신이 돌아오면 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비트가 904호에 도착하면 전화 주겠다고 굉장히 미안해하며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셨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다음 날 비트가 왔고, 일주일 후 아랫집 할아버지가 돌아오셔서 비트를 전해드렸다.
“노인네가 아프면 골치 아파. 안 아프게 살려고 내가 아침마다 사과하고 비트를 갈아 마시거든~ 아니 제주도에 내가 항상 비트를 시켜 먹는 농장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많은 걸 혼자 다 먹을 수는 없고 애기엄마네 하고 같이 먹으려고 진짜로 산거야. 타이밍이 이래서 거짓말 같지?”
904호 할아버지는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비트가 몸에 얼마나 좋은 채소인지, 어떻게 먹으면 맛이 좋은지 등을 늘어놓으셨다. 건강에 참 관심이 많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분이라 멋져 보였다.
내가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904호 할아버지는 좋은 이웃이셨다. 출산일이 점점 다가오자 어떤 녀석이 태어날지 너무 궁금하다고 함께 기대해 주셨다. 드디어 지원이가 태어나서 근 한 달 정도 내가 병원과 조리원에 있다 집에 돌아왔다. 얼마 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가느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9층에서 할아버지와 만나게 됐다. 할아버지는 내가 돌아온 것을 무척 반겨주셨고, 출산도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애기엄마, 그동안 윗집이 너무 조용해서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가끔 이 녀석이 예전엔 노래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했었는데 요샌 통 노래도 안 부르나 봐. 좀 애 뛰게 하고 소리 지르게 하고 그래줘요. 내가 아무 소리가 안 들리면 외로워서 그래. 얼마 전에 우리 딸네가 미국 발령 나서 다시 미국 갔거든.”
불현듯 엘사 코스프레를 하고 “다이져~ 다이져~ 하늘 바람과 살테야아아~”하며 노래를 부르는 큰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며 부끄러워졌다. 다 들렸었구나.
할아버지는 이날 이후로 부쩍 외로워하시는 게 느껴졌다. 어떤 날엔 펑펑 눈물을 쏟다 나오셨는지 눈물을 훔치시며 주책맞게 나이 먹으니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마주치면 나는 그분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다고 하셨다.
작은 아이는 둘째로 태어난 탓에 100일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언니를 따라 유아차를 타고 바깥을 돌아다녔다. 작은 아이에게는 아랫집 할아버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황색 유아차만 보이면 멀리서부터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작은 아이를 들여다보고 말을 걸어 주셨다.
“오구오구, 많이 컸네! 우리 공주님 캬~ 이 녀석 나 보고 웃는 것 좀 봐요. 세상에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웃어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 사람은 얘밖에 없어. 또 웃네! 네가 할아비 애간장을 아주 녹이는구나, 녹여!”
904호 할아버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작은 아이가 벙긋벙긋 웃으면 같이 웃을 수 밖에 없긴 했다. 아이는 중력을 거부하며 하늘로 솟아 오른, 자기 주장이 강한 직모를 가진 아기였기 때문이다. 내 딸이지만 당시 아이는 아기의 얼굴을 한 사자였고, 큰 아이의 표현에 따르면 민들레 홀씨였다. 외로웠던 904동 할아버지에게만은 작은 아이가 사자와 민들레 홀씨가 아닌 해바라기로 보였을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둘째 아이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랫집 할아버지의 배려를 받으며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기 전까지, 어림잡아 5년을 1004호에서 살았다. 셋이 들어갔다가 넷이 되어 나왔다. 우리의 이사는 여러 가지 운명적인 흐름이 겹쳐서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 이삿짐이 빠지기 전날 나와 아이들은 친정에 가 있고 남편 혼자 이사 당일 이삿짐센터와 함께 1004호에 남아있기로 했다. 친정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904호 할아버지에게 인사는 하고 가는 게 도리인 것 같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우리 넷은 904호 초인종을 눌렀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반갑게 문을 열어주셨다.
“어쩐 일로 다 같이 왔어요~?”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고 가기 전에 인사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놀라시더니 잠깐 기다리고 있으면 당신께서 금방 찾아갈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1004호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우리 가족 명의의 첫 집. 이 집에서 울고 웃던 날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는 이 집을 기억하고 싶어 꼭꼭 눈에 눌러 담았지만,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집을 담아 넣는 것을 방해했다. 남편은 아쉬우면 가지 말라고 나를 짓궂게 놀렸다. 왜 이렇게 늦으시지, 하며 기다림에 지쳐갈 때 초인종이 울렸다. 904호 할아버지였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이사를 가는 게 어딨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정이 들었다고. 이제 이 예쁜 공주님들 못 봐서 내가 너무 서운해서 그냥 보낼 수가 없었어요. 요놈들 크는 거 보는 게 참 좋았는데 이제 못 보잖아.”
건네주신 하얀 봉지 안엔 첫째 아이 돌 때도 주셨던 커다란 원통에 담긴 텐텐이 두 통이나 들어있었다. 그 봉지를 건네시며 904호 할아버지의 두 눈엔 눈물이 반짝였다. 남편은 황급히 뭐 드릴 게 없나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있던 유자차를 탔다. 큰 아이가 자기도 먹겠다고 해서 네 명이 식탁 앞에 모여앉아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유자차를 홀짝였다. 할아버지는 어디로 이사 가는지, 다시 돌아오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 이래저래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셨고 우리는 대답했다. 건강하게 이사 가서도 잘 살아라, 하셔서 할아버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는 말을 전했다. 그게 904호 할아버지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첫째 아이는 이날 우리가 유자차를 마셨던 커피잔이 인상 깊었는지 한동안 그 커피잔을 볼 때마다 이사 오기 전날 아랫집 할아버지와 이 잔에 유자치를 마셨던 일, 텐텐을 두 통이나 선물해 주셨던 일을 얘기하곤 했다.
우리는 1004호에 세입자를 두고 지금 사는 곳서 전셋집을 구해 살게 되었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기 바빴다. 시간이 제법 흘러 1004호를 떠난 지 2년이 되었다. 1004호에 머물던 첫 번째 세입자는 2년이 지나자 그 집을 떠났고, 우리는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 이날은 새로운 세입자가 1004로 이사오는 날이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우리 집에서 좋은 일 많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있는데 내 스마트폰에 전화가 왔다. 화면에 904호 할아버지라고 쓰여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애기엄마! 잘 지내죠? 혹시 다시 돌아와요? 지금 윗집에 이사 들어오는데 애기엄마네가 다시 돌아오나 해서. 내가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아서 전화해 봤어요.”
잔뜩 들뜬 목소리의 아랫집 할아버지였다. 나는 반갑고 또 반가워서 코끝이 찌릿해지며 빙글빙글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사오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지만 그 가족은 큰 아이와 동갑인 남자아이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얘기해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혹시나 싶어 전화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는 우리 가족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라는 말을 전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가 떠나기 전 많이 외로워 보이셨는데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았다.
나는 904호 할아버지 덕분에 1004호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동네에서 거의 매일 함께 지지고 볶았던 육아 동지들보다 이 할아버지가 더 생각나는 이유는, 진심으로 우리 가족을 아껴주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1004호에서 가장 처음 만난 이웃, 가장 마지막에 만난 이웃이 904호 할아버지라는 점도 돌이켜보니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이웃이라니! 할아버지는 분명 지금 1004호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좋은 분이실 거다. 우리 가족과 그랬던 것처럼 지금 1004호와 정을 나누며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