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는 자리

세 번째 글

by 정보화

설을 앞둔 한 달이 벼락처럼 지났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백 번 낫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한 주를 남긴 막바지에 이르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모래를 삼킨 듯 거칠게 들고일어난 입 안과 주먹조차 제대로 쥘 수 없는 상태가 오전 내 이어지면, 행여 완주하지 못할까 염려가 깊어진다.


콘크리트 울타리 안에서 해가 뜨고, 까무룩 한 밤이 되도록 종종거리다 보면 겨우 회귀할 여력만 간신히 남는다. 점심, 저녁을 김밥과 햄버거, 포케와 볶음밥으로 돌려 먹는 일도 지겨워진다. 입맛은 없는데 달고 짜고 매운 것들이 마구 당긴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틈틈이 비치된 초콜릿 묻은 과자를 두서없이 집어 먹는다. 기력이 밀린다 싶을 땐 의지보다 단 게 최고다. 설득할 필요 없이 즉시 작동하므로 긴급할 땐 피로회복제보다 빠르다. 물론 부작용도 어마어마하지만.


체력이 노동 강도를 이기지 못하면 최소한의 생활 규칙은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진다.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관대해진다. 합리화는 쉬워지고, 때로는 그 생각조차 건너뛴다. 생각이 필요한 일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그렇게 작은 균열이 생긴다. 생활의 둑은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사소한 규칙 하나가 사라지면 그 뒤로 시작되고, 덮어두고 방치하면 기어코 무너지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복잡성이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며칠 전엔 잠에 들지 못해 밤을 꼬박 새웠다. 머리 댈 곳만 있으면 상황이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잘 수 있는 생존 능력을 가졌는데도, 몸이 축나는 날에는 마음과 달리 잠에 들지 못한다. 평소라면 서서히 의식이 눕고 이내 남은 빛을 거두어가거늘, 이런 날에는 도리어 온몸으로 빛을 받은 의식이 보란 듯 꼿꼿하게 선다. 넘어가는 시간이 아쉬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쓰다듬고 어루만져 보지만, 그럴수록 찌뿌둥한 감각이 온몸에 번진다. 이쯤 되면 잠자기를 포기하고 일어난다. 때로는 빠른 체념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베란다를 열어 잠시 나갔다가, 거실로 돌아와 책을 조금 읽는다. 자려고 애쓰던 괴로운 시간이 옅어질 때까지.


다시 잠자리에 누워서는 잠을 자야 한다는 압박 대신, 의식 있는 상태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만든다. 잠들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만들어보려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불을 덮지 않은 채 대자로 누워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두고 눈을 감는다. 천천히 나를 끌어올려 상공으로, 구름 위를 넘어 더 높이 데려간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내가 머문 집과 동네, 도시와 나라를 벗어나 중력조차 닿지 못하는 우주에 이른다. 내 번민은 저 눈앞의 창백한 푸른 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잠시 떼어놓은 번민의 무게만큼 나는 가벼워진다. 머리칼을 자르고 돌아오는 발걸음처럼 가뿐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 나는 종종 우주를 상상하며 숨을 고른다. 창업 7년 차에 맞은 경영난과 번아웃을 지나며 터득한 방법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싫어하는 일과 번거롭고 귀찮은 일, 해본 적 없거나 잘하지 못하는 일을 훨씬 더 많이 감당하며 일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아홉을 내어준 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이 일이 되기 위한 구조적 특성이라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그렇다고 낭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지나지 않고서는 달리 알 길이 없었을 테니까.


지금은 이 자질구레한 일들이 루틴 하게 돌아가도록 많은 시간을 겸허히 할애한다. 트렌드를 반영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정체성을 다듬는 기획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이 자질구레한 일들은 지속 가능성을 여는 동력을 만든다. 곧 일이 일이 되게 하는 기초다. 7년 차의 위기는 이 기초를 다지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예측하지 못했고, 대비하지 못했다. 선 채로 맞은 바람을 피할 길은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로 귀결되는 순간이었다. 한계에 다다라 무력해진 나는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게 내 한계라며 선을 긋고 또 그어, 잊을까 봐 자꾸 덧대어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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