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고, 있고

네 번째 글

by 정보화

시간과 깊이는 서로 비례한다고 믿어왔다. 붙잡고 늘어진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그 위로 시간이 쌓이면 자연히 깊어질 줄로 알았다. 성실하게 반복하면, 언젠가는.


나는 뭐 하나 진득하게 오래 하는 일이 없었다. 흥미를 잃으면 다른 흥미를 찾아 자리를 옮겼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흥미가 생기면 하던 일에 대한 열기가 자연스레 식어 흐지부지되는 식이었다. 물론 매 순간 진심이었다. 대신 돌아서면 미련도 없었다. 좋아하는 일 하나를 찾기보다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나씩 지워가는 방식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가까워지는 나름의 최선이었다. 그러다 창업을 시작했다. 창업이라는 말이 조금 거창할 만큼 귀여운 자본과 규모로.


돌이켜보면 도대체 무슨 용기로 덜컥 시작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헛웃음이 나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참말이다. 할 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물어보고 찾아보며 알아가는 일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과연 일이 될까 의심이 드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했고, 피해야 할 일은 그리했다. 시행착오는 이어졌지만, 그 실패들은 결국 내일의 나를 도왔다.


하지만 분명 한계는 있었다. 작은 회사라고 해도 규모만 작을 뿐, 경영과 운영 전반의 일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할 사람은 달랑 둘 뿐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소박한 기대와 긍정 덕분이었다.


우리도 구색에 맞춰 업무 분장이라는 걸 했다. 재무, 제조, 배송, 패키지, 디자인, 채널, 기획, 콘텐츠…를 뚝 떼어 반으로 나눴다. 실상은 내 일 네 일 나눌 여유도 없었지만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맡은 바를 해내기 위해 모르면 백방으로 물어보고, 찾아보고, 위험을 감수하며 시도했다.


광고대행사 인턴 시절 사수를 보조하며 포토샵이라는 툴을 몇 가지 배운 적이 있다. 고작 그 경험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맡게 됐다. (동업자는 해외 봉사 총무 경험이 있어 재무를 맡았다.) 그날로 서점에 가서 포토샵 책과 디자인 책 몇 권을 사 펼쳐놓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더듬으며 익혔다. 실력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으니 자주 속이 터졌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인쇄를 감으로 맡기고, 운에 결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인쇄를 넘기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는 식이다. 그런 시절을 지나며 나는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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