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배우며 성장했건만 서양인들은 물론,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일단 수레가 요란하면 비어 있을 리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소리 내라! 무조건 튀고 시끄러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박재희, ⟪그 여자, 정치적이다⟫
제가 요즘 출판사와 계약하고 ‘젊은 번역가의 공부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잖습니까. 처음에 연재와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 내가 해도 될까 싶었어요. 내가 뭐라고 내 습관에 대해 글을 쓰나. 번역을 10년 넘게 하긴 했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역서가 있나, 독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나,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주제에 글을 써봤자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이며 또 습관이라 봐야 뻔한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겠나. 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재가 3분의 1쯤 진행된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시작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요. 몇몇 편은 브런치 조회수 5,000~10,000을 돌파했고 브런치 외에도 연재 글을 올리는 네이버 카페에서는 도움이 된다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내가 과연 출판사의 요구대로 매주 4,000자씩 쓸 만한 콘텐츠를 갖고 있을까 싶었는데 써보니까 기본적으로 5,000자는 나오더라고요.
제안에 응할 때 까놓고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자시고는 둘째로 치고 번역가로서 나를 알리는 게 제일 큰 목적이었는데요, 연재가 완료되고 책이 나오면 일반 독자들에게는 몰라도 번역계, 출판계에서는 인지도가 올라갈 것 같아요. 번역가 중에 자기 책 낸 사람이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습관을 이야기한다는 콘셉트로 책을 쓴 번역가는 제가 알기로는 제가 최초니까요.
그리고 글을 쓰고 조회수가 상상 이상으로 올라가고 반응도 좋으니까 제가 좀 잘나가는 번역가처럼 느껴져요. 번역계에서 명함 좀 내밀 만한 사람이 된 것 같달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아직 그런 급이 아닙니다만, 왠지 그렇게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번역가가 될 날이 제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영어에 “Fake it till you make it”이란 말이 있습니다. 될 때까지 척해라, 라고 옮길 수 있겠네요.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된다는 뜻이에요.
지금 제가 딱 그렇죠. 처음에는 내가 뭐라고 이런 연재를 하나 싶었는데 나 스스로 그런 글을 쓸 자격이 된다고 세뇌하면서 쓰다 보니까 점점 내가 뭐나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쓰게 돼요. 그리고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분명 뭐가 돼도 되겠다는 믿음이랄까, 자신감이 생깁니다.
연재를 하기 전까지는 무의식 중에 저를 빈 수레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한 게 많은 번역가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리 10년이 넘게 번역을 했는데 제가 어떻게 빈 수레겠어요. 꽉 차진 않아도 최소한 절반은 찬 수레지. 그렇게 보면 제가 번역에 대해서, 번역가의 습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떠들 자격이 되는군요.
좀 더 자신 있게 떠들겠습니다.
연재가 총 조회수 50만 돌파하게 해 주세요. 아니, 50만 더 써서 100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