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터 드러커에게 배운 바는 이것이다. 때로는 A라는 문제에서 벗어나야만 A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달리 말해,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문제들 중에는 나에게서 벗어나야만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 삶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그 자체로 꽤 유익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황보름, ⟪매일 읽겠습니다⟫
한 10년 전 일인 것 같습니다. 몸이 허해서 병원에서 영양제 맞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왈칵 울음이 나려는 걸 참았어요. 얼른 다른 데로 전화를 돌려서 대충 문제를 봉합했지만 그 봉합선이 또 언제 투두둑 뜯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참담했습니다. 해가 쨍한 토요일이었는데 제 마음은 태양이 박살 난 태양계 같았어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블랙홀에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서점에 들렀습니다. 널찍한 서점에서 책 구경하면서 인파 속을 거닐고 있으니까 왠지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우울한 기분을 달랠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완득이⟫.
집에 돌아와서 바닥에 축 늘어져서 책을 펼쳤어요. 별 기대는 안 했는데 곧장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다 읽었어요. 전 원래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라 어지간한 책은 암만 빨리 읽어도 이틀은 걸리는데 그 책은 완전히 몰입해서 네댓 시간 만에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시종일관 낄낄 웃으면서요.
정말 그랬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한없이 우울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문제는 잊고 한참 웃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참 책 속 세상에 빠져 있다가 다시 현실로 나왔더니 나의 문제가 처음만큼 커 보이지 않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까짓것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으로 그 문제를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단 몇 시간 만에 내 마음가짐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다니.
그때 저는 재미있는 책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잠시나마 현실의 문제를 잊게 해주는 것.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문제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혹은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흡인력 있는 책의 힘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책을, 소설을 쓰고 싶어요.
어서 소설을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