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쓰고 싶지만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그렇게 소설을 쓰려고 갔던 대학에서 소설을 포기했다. 소설을 쓰기에 엉덩이는 너무나 가볍고 성미는 너무나 급하며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 자신은 단거리용 폐활량의 소유자인데 소설은 장거리용 폐활량의 소유자에게 잘 맞는 장르란 걸 알게 됐다.

—은유, <출판하는 마음> 중 문학편집자 김민정에 대한 글에서



묵상

와, 내 얘기 하는 줄 알았네요.


저도 어릴 적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심오하고 심금을 울리는 문학 작품 말고 그냥 싸우고 터지고 심심풀이로 읽는 글요. 플롯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적당히 궁금증을 일으키는 선에서 단순한 소설. 그게 제 취향이거든요.


실제로 써보기도 했어요.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 <북두신권>(18세 미만 관람불가였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거 안 지켰으니까)에 심취해서 그와 비슷하게 세기말을 배경으로 한 액션 소설을 썼죠. 그때 하이텔 주니어였던가, 여하튼 PC통신 하이텔에 청소년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거기다 올렸어요.


그때 누가 짧은 평을 썼는데 대충 내용이 “문장력만 좋다”였어요. 하긴, 꼴랑 2편 쓰고 말았는데 뭐 평가할 건덕지나 있었을까요.


왜 2편만 썼냐 하면 답답해서요. 나는 빨리 화끈한 액션신을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일단 인물 묘사도 하고 나쁜 놈이 왜 나쁜 놈인지도 보여주면서 차근차근 이야기와 감정을 쌓아나가야 하잖아요? 그러지 않고 다짜고짜 주인공이 너 나쁜 놈이지, 하고 두들겨패봐야 독자로서는 기존에 쌓인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재미도 카타르시스도 없죠.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쌓는 게 체질에 안 맞는 거예요. 전 원래 소설이든 영화든 디테일은 신경 안 쓰고 큰 줄기만 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쓰려니까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거리더라고요. 속도가 안 나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포기.


이후로 몇 년에 한 번씩 소설 쓰기에 도전해봤지만 역시 매번 앞부분만 깔짝이고 포기.


최근에는 온라인 소설 스터디에 참여해서 단편 두 편을 썼어요. 둘 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중반으로 접어들기도 전에 의욕이 다 바닥나서 간신히 완결 지었어요. 당연히 재미없었죠. 쓰는 과정도 썩 재미있지 않았고 완성된 작품을 읽어봐도 재미가 없었어요.


선생님에게 물어봤어요. 소설을 쓰는 과정이 재미있으시냐고. 재미있대요, 선생님은. 쓰면서 뒷내용이 궁금할 때도 있대요.


전 아니라고, 쓰는 과정에서 별 재미를 못 느낀다고 하니까 선생님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보통은 자기 글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자꾸 새 작품 쓰겠다고 쓰던 작품 중간에 버리지 않고 꾸준히 쓰면 재미가 붙을 거라고 격려해줬어요.


그러면서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은 엄청 스케일이 크고 멋진 활극인 것 같은데 아직은 역량이 부족해서 만족을 못하는 거라는, 아주 정확한 진단도 덧붙이셨죠.


스터디 과제가 총 세 편의 단편을 완성하는 거였는데, 결국 마지막 작품은 못 썼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원하는 만큼 속도가 안 나니까 답답해서 관뒀어요.


유명한 소설가들 책 보면 글을 쓰고 싶고 말고를 떠나서 매일 규칙적으로 쓴대요. 그 사람들도 쓰기 싫을 때가 있는 거죠. 저도 쓰기 싫을 때가 있다는 점은 똑같네요. 다만 그들은 싫어도 꼬박꼬박 쓰고 저는 몇 자 쓰다 때려치운다는 게 차이점이고요.


만약에 내가 김민정 편집자의 말처럼 단거리용 폐활량의 소유자여서 소설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어쩌죠?


어쩌긴, 뭐. 못 쓰는 거지.


내가 못 쓰면 출판사 차려서 남이 쓴 글 발굴하면서 살면 되지, 뭐.



기도

포기할 땐 포기하더라도 일단 뭐라도 좀 끈덕지게 쓸 수 있는 끈기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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