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와 눕는 건 어떤 기분잉까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낯선 여자와 누워 있는 기분이군.

—커트를 한 아내에게



묵상

아내가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애 키우느라 관리하기도 어렵고 기분도 전환할 겸해서요.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인데 남자가 제일 매력을 느끼는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


그래서인지 아내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입니다. 원래도 예쁘지만요. 하긴 안 예쁘면 왜 결혼했겠어요.


커트한 아내와 같이 침대에 누우니까 낯선 여자와 같이 누운 느낌이 살짝 듭니다. 나쁘지 않아요. 익숙한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는 게요.


문득 낯선 여자와 같이 누우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가끔 묻는 말이 있어요. 바람피울 거야?


연애 때 사주 카페에서 사주 아저씨가 저보고 50대에 바람피운다면서 딸이 있으면 그걸 막을 수 있댔어요.


그 후로 가끔 저한테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제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1. “바람피울 돈이나 주고 물어라.”


한 달에 30 받던 용돈 20으로 줄이고 억돌이 낳은 후로는 15로 줄였습니다. 아니, 15만 원으로 바람은 무슨 바람이에요. 허리띠 졸라매느라 허파에 바람도 못 넣습니다.


2. “귀찮아.”


연애를 시작할 때의 설렘이 좋아서 그때를 그리워하고 그 설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전 아니에요. 처음 만나면 서로 알아가고 이것저것 맞춰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싸우고요.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입니까.


저는 아내랑 4년 연애하고 결혼한 지 4년 됐는데요, 편해서 좋습니다. 물론 아직도 안 맞는 부분이 있고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괜한 일로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잘 아니까 어지간한 일은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싸워도 금방 풀려요.


내가 혹시라도 저 사람 심기 건드릴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장난도 많이 치고 같이 있는 게 즐거워요. 지금 이 글 쓰면서도 아내한테 몇 번이나 장난을 쳐서 “못살아. 재밌냐?” 소리를 들었어요. 자기도 재미있다고 깔깔 웃고 나서 꼭 저럽니다.


낯선 여자와 눕는 기분, 글쎄요, 그런 걸 느낄 기회나 있을까요. 돈이야 나중에 생긴다 해도 귀찮음병은 불치병이라서요.


저 사주 아저씨 그때 아내한테, 당시는 여자친구였죠, 30대 초반에 사업하면 대박 난댔어요. 근데 아내도 인정하고 제가 봐도 그렇지만 아내는 사업할 사람은 아닙니다. 사업가 체질이 아니에요. 아마 30대 초반에 사업했으면 마음고생만 하다 몸져누웠을 거예요.


그러니까 돌팔이었단 말이죠.


아, 그러고 보니 아내가 그 돌팔이 때문에 하는 질문에 위의 두 가지 말고 또 제가 써먹던 대답이 있었네요. 요즘은 잘 안 써서 잊고 있었어요.


아내: 오빠 오십 돼서 바람피울 거야?

나: 그때까지 기다릴 거 뭐 있어?


맞는 말이죠. 처맞는 말.



기도

아내랑 억돌이랑,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벤츠랑, 그리고 아내는 안 된다지만 혹시 또 태어날지도 모르는 셋째까지 해서 우리 식구가 나날이 더 재미있게 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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