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니?
—평경장, 영화 <타짜>
<타짜>를 봤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극 중 곽철용의 대사가 회자되고 있어서 다시 보고 싶었어요. 2006년작이니 벌써 13년 전 영화네요.
이 영화에는 대단히 많은 배우가 출연합니다. 그런데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 외에는 요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 옛날 영화 보면 지금은 유명한 배우가 단역으로 나오는 걸 찾는 재미가 있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그런 재미가 없어요. 여기서 무명이었던 배우들은 여전히 무명이거나 영화판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게 단순히 그들이 연기력이 부족해서라곤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비록 짧게 나오지만 연기를 곧잘 하는 배우들도 있으니까요.
제가 볼 때는 운이 없었던 개 아닐까 싶어요. 실력도 갖췄고 노력도 했지만 배우로 성공할 운이 오지 않았던 거죠. 그 운이 나중에라도 오리라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아 떠났을 거예요.
저는 늘 생각합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정말 운이 좋아요. 남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는 길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번역계에 번역 수업 고작 몇 개월 듣고 바로 진입했어요. 그리고 일감이 원활히 들어오지 않거나 소득이 너무 적어 떠나는 사람이 많은 업계에서 제법 꾸준히 일을 받고 아주 나쁘진 않은 보수를 받으며 12년째 버티고 있어요.
이건 물론 제가 번역 실력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번역 잘하는 사람이 어디 저뿐인가요. 운이 좋은 겁니다. 번역계에 손쉽게 진입하고 큰 어려움 없이 이때껏 살아남은 건 운발이에요.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이 안 따랐으면 진작에 일이 끊겼을 거고, 애초에 번역가가 되지도 못했을지도 몰라요. 번역계는 공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출판계에 인맥이 없으면 처음 일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면 겸손해져요. 제가 순전히 잘나서 지금껏 번역가로 버티고 번역료도 오른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어제는 마치 제가 겸손은 모르는 사람처럼 글을 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겸손해야 할 때는 겸손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운이 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