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는 후보자들이 수두룩한데 카메라 화면 밖에는 사람이 없어서 연탄을 전달하기 힘든 현상이 벌어졌다. 막상 카메라 앞의 후보자들보다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열심히 한 후보자들이 많았는데도 그런 사람보다 카메라 앞에서 사진 찍기에 급급한 사람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이상하게 보였다.
—몰레, ⟪나만 안 되는 미스코리아⟫
한 십 년쯤 묵은 얘기입니다. 모임에서 엠티를 갔어요. 그런 자리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갔습니다. 밤늦게까지 놀았죠, 난 자고 싶은데 못 자게 해서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다음날 새벽 다섯 시인가, 여섯 시에 일어났을 거예요. 전 원래 아침잠이 없거든요.
물 마시러 주방에 갔어요. 어제저녁에 쓴 조리도구와 식기가 전부 개수대에 처박혀 있더군요. 그냥 놔둘까 하다가 에이, 어차피 새벽에 혼자서 할 일도 없는데, 하면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참가자가 10명쯤 됐으니까 설거지거리가 꽤 많아서 한 30분쯤 씻었던 것 같아요.
설거지를 끝내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서는 보드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주방에서요. 저는 당연히 그들이 개수대를 보고 아닛, 누가 그 많은 조리도구와 식기를 손수 씻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지, 하고 감탄할 줄 알았어요. 하다못해 누가 설거지했냐고 물어보기라도 할 줄 알았죠. 그러면 뭘 그런 대수롭잖은 걸 갖고 호들갑이냐는 듯이 슬쩍 내가 했다고 말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요.
근데 아침 식사를 차려서 먹고 설거지를 할 때까지 그 누구도 새벽에 누군가 홀로 고생스럽게 설거지를 하는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모르지? 니들이 어제저녁에 논다고 그냥 방치해 놓고 잤잖아! 얼씨구, 지들끼리 아침 차리느라 수고했다, 설거지하느라 고생했다 칭찬해주고 있네?
결국 저의 아름다운 선행은 그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저와 신만이 아는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알았어요, 자랑은 셀프란 걸.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한 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하긴, 내가 뭘 했는지 알아야 알아주든 말든 하죠.
그 후로 저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똑똑히 알려주자” 주의자가 됐습니다. 남몰래 하는 선행,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 그런 건 제 사전에서 박박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안에서 착한 짓을 했으면 반드시 아내에게 생색을 냅니다. 가령 아침에 아내가 자는 동안 억돌이 분유 먹이고 같이 산책을 다녀왔으면 아내가 일어난 후에 꼭 그렇다고 말합니다. 이제 10개월 된 억돌이가 말해줄 것도 아니고 내가 안 말하면 누가 말하겠어요? 화장실을 청소했을 때도, 알파룸을 정리했을 때도 아내가 먼저 알아차리지 못하면 “화장실(알파룸) 가봤어?”라고 대놓고 묻습니다. 뭐 하나 티 안 내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번역하다 보면 원문에 사람 이름이나 책 이름 같은 게 잘못 기재되거나 수치가 잘못 인용된 경우가 종종 나와요. 그런 걸 발견하면 당연히 고쳐야죠. 하지만 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꼭 그 옆에 내가 고쳤다고 써 놓습니다. 그래야 편집자가 내가 꼼꼼히 번역한 걸 알죠. 안 적으면 아무도 몰라요. 그런 정보는 혼자만 알아봤자 아무 득도 안 돼요. 널리 공유해야죠.
그러고 보니 오늘 출판사로부터 받은 피드백이 문득 생각나네요. 저는 번역할 때 책의 1장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서 의견을 듣거든요. 오늘은 이런 피드백이 왔어요.
역시 김고명 역자님은 안심하게 되네요.
보내주신 1장 원고, 잘 읽히고 좋습니다.
계속 잘 부탁드릴게요.
정말 문득 생각난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귀한 정보를 출판사 편집자님과 그것을 전달해준 에이전시 팀장님과 저, 이렇게 세 사람만 알 뻔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직도 자랑할 때 일말의 망설임이 있습니다. 더욱 뻔뻔하게 만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