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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Oct 09. 2019

잠이 안 와서 쓰는 글

나는 지금 무척 빡쳐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9시 40분부터 잠을 청했는데 새벽 2시가 넘은 지금까지 말똥가리처럼 땡그란 눈으로 깨어 있기 때문이다.


잠이란 놈은 8시부터 호시탐탐 나를 노리더니 정작 나를 잡아먹으라고 벌러덩 누운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괘씸한 놈을 잡아다 일단 싸대기부터 한 대 올려붙이고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고 수면 고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총각 때였으면 잠 좀 못 잔다고 문제 될 것 없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니까 늦게까지 놀고 낮에 늘어지게 자면 그만이다. 그때가 좋았지. 이제 휴일 낮잠은 사치다. 아니, 양심 불량이다.


휴일엔 애를 봐야 하니까. 평일에 일한다고 육아를 아내한테 떠넘겼으니까 휴일에는 양심이 있으면 한나절이라도 애를 보면서 아내에게 쉴 시간을 줘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둘이서 같이 보기라도 해야 한다. 휴일도 고단하긴 평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찍 누웠다. 내일 심신이 피곤할 테니까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다. 그러고는 족히 3시간은 뒤척이다가 이 야심한 시간에 서재에 나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잠은 간만 보다가 달아났을까? 그놈 속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하다.


아마도 글을 안 쓰고 누워서일 거다. 나는 원래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지, 유감스럽게도, 원래 어제 글을 한 편 완성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저녁이 되자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침대에 누웠는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아무래도 그 불쾌한 기분이 잠을 쫓아낸 것 같다.


아니, 글이야 오늘 못 쓰면 내일 쓰면 되지, 그게 그리 거북할 문제인가? 그건 이제 내가 일주일에 최소 두세 편은 글을 쓰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아니, 다짐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는 판단이 섰다고 하는 게 낫겠다.


왜? 남의 글 팔아먹는 걸(번역) 넘어서 내 글을 팔아먹고 싶어서다. 번역은 암만 봐도 벌이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 번역료를 얼마나 더 올려 받을 수 있을지, 업계 상황 대충 아는데 썩 낙관적이진 않다. 지금 같은 벌이로는 평생 일해야 한다. 돈을 더 벌어서 편하게 살려면 번역가를 넘어 매문가가 되는 게 상책이다.


내가 가진 기술이라야 글 쓰는 재주가 고작이다. 그러니까 살 길은 글을 팔아먹는 것밖에 없고, 그러자면 출판사와 독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정도의 글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좋으나 싫으나 매일 글을 써서 실력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김연수,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내로라하는 글쟁이들도 매일 글을 쓴다는데, 그에 비하면 아직 하바리에 불과한 내가 변비 걸린 놈 똥 싸듯이 어쩌다 한 번씩 찔끔찔끔 글을 쓰는 건 안 될 말이다.


그러니까 글 안 쓰고 자려니 잠이 안 오고,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에 나올락 말락 하는 글을, 끙아, 애써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야밤에 쓴 글은 절대 공개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밤에는 감성이 충만해져서 제정신이 아닌 글이 나오기 때문에 아침에 보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세상에 지나고 나서 보면 부끄럽지 않은 글이 어디 있나. 그런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 원래 뭐든 팔아먹으려면 뻔뻔함은 기본으로 장착해야 하는 법. 글쟁이라고 예욀까.


나는 지금 무척 뻔뻔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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