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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n 21. 2020

코로나 2차 파동을 기대한 자의 최후

나는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길 바랐다

마이너스 40퍼센트. 지난 4월 내 미국 주식 계좌의 수익률이다. 사실상 반토막이 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상승하더니 지금은 플러스 10퍼센트대로 회복됐다. 올 1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자했으니 6개월 만에 10퍼센트면 내 기준에서는 대단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마이너스 40퍼센트를 찍었을 때 돈을 더 넣었으면 지금쯤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더 넣을 현금이 없었다. 집을 사기 위해 떼어 놓은 돈을 쓸 수는 없었다. 이제 집을 샀고 잔금은 대출로 돌릴 테니까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 2차 파동을 기대했다.


다시 공포가 확산돼서 주가가 폭락하길 바랐다. 그러면 지금 들고 있는 돈을 다 쏟아붓고 주가가 회복되면 돈을 쓸어 담으리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그땐 코로나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흘 전까지는 그랬다.



아이의 진료를 거부당하다

열흘 전 금요일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열이 난다고 했다. 집에 와서 재보니 세상에,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부랴부랴 해열제를 먹이고 동네 소아과로 향했다.


의사는 단순한 바이러스성 발열 같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코로나 검사가 필요한지 보건소에 문의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열이 나는 아이를 선별 진료소가 아니라 바로 소아과에 데리고 오다니 너무 안일했다.


사실 코로나는 전혀 생각을 못 했다. 여기는 벌써 몇 주째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건 다 위쪽 지방 이야기였다.


집에 돌아와서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선별 진료소를 방문해서 의사의 소견을 들어보기를 권하며 선별 진료소가 설치된 병원 중 J병원에 소아과가 있다고 했다. 바로 J병원에 전화를 넣었다. 소아과 진료는 4시 30분까지니까 그전에 도착해야 한다지만 순간이동이라도 하지 않는 한은 무리였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는 열 때문에 온몸이 축 늘어졌다. 해열제를 먹여도 차도가 없었다. 해가 지니까 걱정이 더 커졌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나 싶어 J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열이 나면 선별 진료소를 방문해야 한다며 선별 진료소는 24시간 운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데 소아과 선생님은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이 상태를 좀 더 지켜보다가 밤 9시가 넘어 아내와 함께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평소 안 다니던 병원이라 불덩이 같은 애를 안고 다급하게 모퉁이를 세 개나 돈 끝에 출입구를 발견했다.


입구에서 직원이 열을 재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고열이라 선별 진료소에 가야 하는데 J병원은 소아과 의사가 당직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화했을 때 한 말이 그 말이었다. 그럼 그때 그냥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지! 다행히 소아과가 있는 K대학병원이 차로 1분 거리에 있었다.


다시 차로 돌아왔다. 아내가 K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 측은 이렇게 안내했다.


1. 아이가 오면 대학병원이라 무조건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2. 만에 하나 코로나 검사를 하게 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실에 격리돼야 하는데 일인실이 없으면 성인 환자들과 같은 병실을 써야 한다.

3. 일인실 유무는 그때 가서 알 수 있다.

4. 응급실에 올 것인지 집에서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는 부모가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2번 때문에 망설여졌다. 어른들과 좁은 병실에 같이 있다가 괜히 없던 병도 옮을지 몰랐다. 고심 끝에 차를 집으로 돌렸다. 2시간마다 해열제를 먹은 아이는 동이 틀 때쯤에야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토요일, 진료 시작 시간에 맞춰 J병원으로 출발했다. 바로 선별 진료소로 안내됐다. 야외에 컨테이너로 진료실을 만들고 그 앞에 간이 벤치와 천막으로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의사는 바이러스성으로 보인다며 굳이 코로나 검사를 할 필요는 없겠다고 했다. 약국에서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이는 오후가 되자 또 열이 40도까지 올랐고 종일 늘어져서 잠만 잤다. 지금껏 18개월을 키우면서 아이가 그렇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라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저녁에 다시 K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애가 열이 펄펄 끓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물었다. 대답은 전날과 동일했다.


우리는 오전에 J병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역시 아이는 새벽이 돼서야 열이 떨어졌다.



급기야 코로나 검사를 받은 18개월 아이

그 주말은 우리가 가을에 입주하는 아파트의 사전 점검 기간이었다. 원래는 장모님이 토요일에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동안 아내와 같이 점검하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토요일에는 병원에 갔다 와서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요일은 장모님이 시간이 안 되셨다.


일요일 오전에 아내에게 아픈 아이를 맡기고 아파트를 보러 갔다. 새 집에 들어가는 건 처음인 데다 혼자서 아파트를 꼼꼼히 보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대충 과자로 점심을 때우고 났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애가 다시 열이 오른다고.


얼른 점검을 끝내고 아내를 위한 김밥과 샌드위치, 아이도 좋아하는 피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쓰러져 있던 아이는 피자 냄새를 맡자 벌떡 일어나서 걸어왔다. 하지만 손톱 만하게 뜯어준 피자 끄트머리를 몇 개 집어먹고는 다시 픽 쓰러졌다. 평소 같았으면 뜯어준 걸 다 먹고 더 달라고 성화였을 식성이다.


그날도 아이는 새벽에야 열이 떨어졌다.


월요일 아침 일찍 다시 J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 아이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월요일이라 선별 진료소에 사람이 많아서 다닥다닥 앉아 있다 보니 그중에 누구 하나 감염된 사람이 있으면 전부 확진자가 될 것 같았다.


수액을 다 맞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수액발로 기운이 나는지 좀 노는가 싶더니 다시 쓰러졌다.



이번엔 내 차례

아이가 회복되기 시작한 건 다음날인 화요일부터였다. 열이 확실히 떨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종일 기운 없이 잠만 잤다. 수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열이 내리면서 몸에 열꽃이 피는 걸 보니 돌발진이었다. 찾아보니 돌발진에서 회복될 때 잠만 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요일부터는 내가 아팠다. 목이 붓고 열이 났다.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굳이 선별 진료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 일반 병원에 가서 의사 소견을 따르라고 했다. 하지만 동네 내과에 갔더니 열을 재보고는 선별 진료소로 가라고 했다. 목요일 아침 일찍에 근처 선별 진료소에 가서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혹시나 싶어서 종일 집에서 마스크를 끼고 살았다. 금요일에 음성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2차 파동이 온다면

이게 나의 코로나 체험기다. 코로나에 걸리진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별것도 아닌 상황을 얼마나 꼬이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아이가 아픈데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없으니까 부모로서 애가 탔다.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는데 진료를 거부당하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갈지 집에서 지켜볼지 결정해야 할 때는 덜컥 겁이 났다. 전문가도 아닌 우리 부부의 결정으로 애한테 큰일이 생기진 않을까 두려웠다. 밤에 위급한 상황이 와도 제때 손을 쓰지 못할까 무서웠다. 혹시라도 아이가 코로나로 확진되면 그 조그만 게 낯선 병실에 격리될 걸 생각하니 막막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아무 탈 없이 상황이 해결됐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운이 따른다는 보장은 없다. 누군가는 코로나가 만든 현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절망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주식으로 돈을 벌겠다고 탐욕스럽게 코로나 2차 파동을 기대했던 것을 뉘우친다.


위기에 대비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나는 요즘 온라인에서 마스크를 사 모으고 있다. 그게 현명한 행동이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릴 테지만 부도덕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득을 위해 누군가에게 큰 위협이 될 사태가 닥치길 ‘소망’하는 건 몹쓸 짓이다. 선량한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


전문가들은 가을이면 코로나가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제 그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대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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