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썰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Jun 06. 2020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번역가 지망생들이 흔히 하는 고민이 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번역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망생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내가 얼마간 노력한다고 바로 등용문이 열린다는 보장이 없고 대부분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내야 하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성과 없이 세월만 흘러가면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내지는 절망감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 하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는 것만 같은 길이 정말 내게 맞는 길인지, 내가 시간과 노력이라는 귀한 자원을 뿌려도 되는 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의 3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면 된다.


1. 그 일이 재미있는가?

어떤 일이 내 길이라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체질에 맞기 때문이다. 단, 재미란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히 고통이 있어야 재미도 있다. 쉽게 술술 풀리는 일은 금방 질린다. 진짜 재미있는 일은 적당히 짜증 나고 답답한 상황을 만들어 그 적당한 고비를 이겨내는 쾌감을 선사한다.


번역가 지망생일 때 까다로운 원문을 한참 붙잡고 있자면 부아가 치밀었다. 어설픈 내 번역문을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보지만 이렇다 할 해법이 안 보이면 신경질이 났다. 그렇게 문장과 씨름하다가 좀 더 한국어다운 번역문을 만들어내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런 번역의 맛은 번역가로 13년째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하다.


재미가 있으면 그 일을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아도 버티는 힘이 생긴다. 내가 번역은 벌이가 시원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여태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그 자체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2. 지금 안 해도 나중에 할 것 같은가?

나중에 가서도 미련이 남을 것 같으면 내 길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번역가가 안 됐으면 아마 지금도 번역가를 지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부터 꿈이었고 곧 마흔인 지금도 여전히 소설가가 되고 싶다. 번번이 소설 쓰기를 시도했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완전히 마음이 접히지 않는다.


가끔 비소설 작가로 대성공을 거두는 미래를 생각해본다. 그래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게 소설에 대한 열망이다. 아무리 성공한 작가가 돼도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면 이런 염원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얼마간 아예 그 일에서 손을 떼보면 된다. 예를 들어 배우 지망생이라면 한 달간 연기 훈련도, 오디션 지원도 끊어보는 것이다. 한 달이 지나서도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라면, 혹은 더욱 뜨거워졌다면 아마 지금 포기한다고 해도 미련이 남아서 나중에 또 도전하게 될 것이다.


3. 업계 사정을 잘 알고 있는가?

내가 막연한 환상으로 그 직업을 동경하고 있는지, 아니면 구체적인 현실을 알고서도 그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출판번역으로 말하자면 박봉이다. 시간은 많이 들어가는데 보수는 짜다. 거기다 프리랜서다보니까 까딱하면 도태될 수 있다. 더군다나 출판계는 만년 불황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줄면 줄었지 늘어나진 않는다.


이처럼 부정적이고 비관적 현실을 알고도 번역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막연히 프리랜서니까 좋겠다는 생각으로 번역가가 되려고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막연한 동경만으로 귀한 세월을 투자하는 건 현명치 않다. 현실을 알고 들어와도 힘든데 모르고 들어오면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 업계 현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터넷 검색, 책, 현업자와 상담이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건 현업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그쪽 분야의 책을 쓴 사람 중에서 찾아보면 된다. 베스트셀러 저자 말고 책도 많이 안 팔리고 본인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런 사람은 독자의 연락이 반갑다. 그래서 성의 있게 답해준다. 나만 해도 책이 출간되고 나서 몇몇 독자에게 메일과 쪽지로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는데 일하는 시간까지 빼가면서 답을 해줬다.


요즘 웬만한 저자는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브런치 중 하나쯤은 하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메일이든 쪽지든 보낼 수 있다. 정 안 되면 출판사에 물어보자. 간절하다면 어떻게든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이 길이 내 길이 맞나?’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세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자신의 길이라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단,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평생 직업,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시대가 됐다. 인생을 꼭 한 길로만 걸을 필요가 없다.


나는 번역가이지만 말했다시피 소설가를 지망한다. 출판사와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꿈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경양식 돈가스와 페퍼로니 피자만 파는 ‘기름칠’이란 이름의 식당을 운영하는 상상도 가끔 해본다. 그중에서 어느 하나만 내 길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은 변호사이자 유튜버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케터로 일하다 강연자가 될 것이다. 우리 삶은 한 길로만 뻗어나가지 않는다. 인생길은 여러 갈래로 확장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동시에 여러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멀티태스킹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니 내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나의 가능성을 탐색하자. 그리고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일단 걸어보자. 길은 걸어야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탐색하며 걷기. 어쩌면 그게 인생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를 때릴 순 없으니까 나라도 때려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