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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Apr 22. 2021

고인물에겐 아쉬웠던 글쓰기 책


저는 글쓰기 고인물입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글을 썼어요. 하이텔… 아시죠? 90년대 PC통신 서비스요. 인터넷 보급되기 전에 쓰던. 그때부터 해서 중간중간 좀 뜸할 때가 있긴 해도 제법 지속적으로 글을 썼어요. 그리고 2008년부터 번역을 했으니까 13년 동안 남의 글을 우리 문장으로 부단히 옮겼죠. 제가 지금까지 쓴 문장을 모두 이으면 아마 지구의 허리 둘레 정도는 잴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오래 글을 썼는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그런 걸까요, 지금도 글쓰기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요. 더 잘 쓰고 싶거든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글쓰기도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한계가 느껴져요. 그걸 넘어서고 싶죠. 그래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채우려고 자꾸 글쓰기 책을 보는 거예요.


근데 저도 알아요. 이제 뭔가 새롭고 대단한 걸 발견하긴 어렵단 걸요. 이제 저한테 글쓰기 책은 자기계발서처럼 뭔가를 배우기보다는 이미 아는 걸 되새기고 다시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읽는 책이에요. 그래서 뭔가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이 책도 그랬어요. 제목만 보고 SNS 글쓰기에 대해 조금만 배워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결론적으로 기대를 안 하길 잘했습니다. 실제 SNS 글쓰기에 관한 내용은 후반부 30퍼센트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럼 앞에선 뭔 얘기를 하느냐 하면 일단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말해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써야 한대요. 그다음은 일반적인 글쓰기 강의예요. 저같은 고인물은 이미 다 어디서 읽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죠.


SNS 글쓰기 부분은 배울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명이 좀 아쉬워요.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약간 밥 로스 아저씨 같아요. “이렇게 이렇게 쓰면 됩니다, 참 쉽죠?” 네?!?!


그래서 차라리 뒷부분만 떼서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최근에 번역한 책이 딱 그런 내용이었거든요. SNS에서 꽂히는 콘텐츠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데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매우 깊이 들어가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비교가 됐어요.


아, 그 책은 아직 출간 전이고 이제 역자 교정 끝냈어요. 제가 그 책 내용 대로 해서 막 SNS 팔로워 1만 찍고 했으면 홍보에 도움이 될 텐데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죠. 그러니까 뭐든 백날 천날 읽기만 하면 소용이 없어요. 실천을 해야죠. 그런 면에서 제가 꾸준히 브런치와 인스타에 글을 쓰고 있는 건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뭐라도 실천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책에서 배운 이론 대로 실천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고 그냥 지 꼴리는 대로 쓰고 있지만…… 근데 김용 무협 소설에도 그런 말 나오잖아요.


무초가 유초를 이긴다.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지 꼴리는 대로 검을 휘둘러도 검끝이 살아서 춤을 추는 게 고수란 거죠. 오늘부터 저는 무초 김고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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