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봤자 자식 손바닥

by 김콤마

집을 나왔다.


자초지종을 말하자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난 억돌이(5개월)가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나도 요 며칠 징하게 보채는 억돌이에게 쌓인 감정이 있어서 짜증이 났지만 꾹 참았다.


엉덩이에 코를 들이밀자 똥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화장실로 가서 다 씻겼다. 그러고서 침대로 데려와 물기를 닦고 기저귀를 채우려 하니 또 짜증을 낸다. 후우. 아침부터 맨손으로 똥 닦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아침부터 애 짜증을 받아내는 건 못할 짓이다. 신경질이 나서 기저귀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것을 느꼈다. 애는 울고 나는 씩씩대고. 아내가 오늘은 일하지 말고 나가서 놀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달간 집 밖에 나가서 여유 있게 쉬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있진 않았지만 집에 있으면 폭발할 것 같아서 옷을 입고 짐을 쌌다. 그러고서 집을 나서려는데 엄마한테 안겨 찡찡대던 억돌이가 어깨너머로 나를 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내가 누구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가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장난감은행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이 억돌이가 가지고 노는 아기 체육관을 반납하고 다시 빌려야 하는 날이어서 도리가 없었다. 하루 밀리면 하루 동안 못 빌리는데, 이 아기 체육관이 억돌이의 지루함을 달래는 데 그나마 효과적이라 하루라도 없으면 곤란하다.


장난감은행을 나와 차에 오르자 문득 오늘 억돌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돌이는 지금껏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택시 타고 5분 거리에 병원이 있다. 하지만 왠지 내가 차를 끌고 너무 멀리 나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바다로 향했다.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항구도시에서 자라며 바다를 질리게 본 나는 바다에 아무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국도와 해안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그런데, 드라이브도 해본 놈이나 하지, 길을 몰라서 시내 길 타고 가서 해안 도로는 구경도 못했다. 바다라고 하지만 좁은 만에 고깃배 몇 척 정박해 있는 살풍경이었다. 더욱이 날씨까지 우중충했다. 오줌 한 번 찍 갈기고(물론 화장실에서) 다시 차에 탔다.


그리고 왔던 길을 돌아와 집 근처 샤브샤브 뷔페로 향했다. 아이를 낳고 외식다운 외식을 거의 못 했다. 특히 한번 가면 1시간은 앉아 있어야 본전을 뽑는 뷔페에는 언제 울음을 터트릴지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이 기회라 생각했다.


혼밥 좀 하는 나지만 뷔페에 혼자 가긴 처음이었다. 그런데 망설여지긴커녕 기대로 가슴이 두근댔다. 그리고 과연 기대만큼 흡족했다. 1시간 동안 미친 듯이 흡입했다. 뱃가죽이 더 늘어나지 않아 더는 먹을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계산을 하고 나서면서 억돌이 좀 크면 아내와 셋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다음 목적지는 영화관. 역시 아이 태어나고 얼씬도 못하던 곳이다. 저녁에 혼자 보러 와도 되지만 돌아보니 그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아쉬운 대로 <OOO>을 택했다. 제목은 아래에 내용 누설이 있을 수 있어 밝히지 않겠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와 달리 영화관에 있으면 바깥세상의 일을 잊을 수 있어 좋다. 그게 많은 사람이 영화관에 가는 이유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집안일을 잊을 수…


맙소사. 영화가 중반에 이르자 갑자기 애가 태어나더니 영화 전개의 한 축이 되어버린다.


고 조그만 걸 보니 당연히 억돌이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영화가 끝나고 쇼핑몰 구경 좀 할 겸 한 층 내려왔더니, 또 맙소사,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아기 내복이라니. 억돌이에게 입히면 귀여울 것 같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집에 옷 있을 만큼 있는데 굳이 살 필요 없겠다 싶어 돌아섰지만 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얼마 하지도 않는 옷 안 사고 온 게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더니 잠시 후 잠에서 깬 억돌이가 나를 보고 또 해죽해죽 웃는다. 하아. 내가 괜히 얘를 '김여시(여우)'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아주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도대체 누구한테 물려받은 유전자인지 의문이다.


여하튼 이것이 내 짧은 가출의 전말이다. 억돌이에게서 단 하루라도 해방되어보겠다던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봤다시피 곳곳에 매설된 억돌이 지뢰 때문에 산산이 박살 났다. 아무리 뛰어봤자 억돌이 손바닥 안인 나의 숙명에 이대로 항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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