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대 사나이로 말한다

아들과 오붓한 시간으로 아빠 레벨업

by 김콤마

월요일 오전이면 아내는 캘리그래피를 배우러 간다. 그럼 애는 누가 보고? 물론 내가 봐야지. 남편이 돼서 돈을 못 벌면 시간이라도 벌어줘야지, 라는 주의다. 그래서 육아 휴직 하고 쉬는 동안 배우고 싶은 것 마음껏 배우라고 했다.


지난 월요일은 아내도 나도 아침부터 긴장했다. 내가 지난주부터 며칠째 억돌이 때문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그 며칠 동안 억돌이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찡찡댔다. 자꾸만 보채고 신경질을 내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밤에는 새벽 2시부터 거의 30분 간격으로 악을 써댔다. 맘마를 줘도 안아줘도 기저귀를 갈아줘도 그때만 잠깐 진정할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내가 침실에서 자고 내가 아이 방에서 같이 잔다. 낮에 아이를 보는 사람이 밤에라도 푹 자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난 주말까지 나는 새벽에 달래고 나서 누우면 또 난리를 치는 아이 때문에 밤을 꼴깍 새워야만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면 고문을 당했던 민주화 투사들의 고통을 발톱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새벽에 참다 참다 못 참고 베개를 쾅쾅 내려치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서는 또 억지로 웃는 얼굴로 아이를 대해야 하는 게 부모다. 프리랜서인 나는 회사에서 상사 비위 맞추는 직장인들의 고충을 이제야 실감한다.


물론 아이에게 전혀 화를 안 낸 것은 아니다. 속에서 천불이 나서 “어우, 씨!”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한테 가라!”라면서 아내에게 던지다시피 아이를 건넨 적이 몇 번 있었다. 돌아서면 바로 후회하면서도 도저히 참지 못할 때가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캘리그래피를 배우러 가는 아내도, 보내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가 또 얼마나 난리를 칠지, 그것을 내가 끝까지 참아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아내가 나가고 어떻게든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한참 노래하고 춤을 췄다. 티셔츠를 걷어서 배를 까고 머리에 뒤집어썼다가 내리면서 “까꿍!” 하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다행히도 억돌이는 아빠의 노력을 갸륵하게 여겼던지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다 놀아주는 것도 지쳐서 바닥에 앉아 가만히 아이를 보자니 아내가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이 혀끝에 차올랐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 괜히 겸연쩍어서 작게 속삭이거나 그냥 속으로만 삭이던 말이었다.


“아빠가 짜증내고 신경질 내서 미안해. 네가 나빠서 그런 건 아니야. 아빠가 아직 부족해서 그래. 아이가 울고 보채는 게 당연하지. 아빠가 그런다고 주눅 들지 마. 아빠가 그런다고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아빠는 널 사랑해.”


후우. 글로 쓰자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여하튼 저렇게 (낯 뜨거운) 말을 하는데 억돌이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듣다가 빙긋 웃는다. 뭐야, 다 알아들은 거야?


그러고서 아이는 울지도 않고 혼자 놀다 자다 하고 나는 옆에서 ⟪프랑스 아이처럼⟫을 읽으며 아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을 맞췄다. 모처럼 누리는 평화였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오늘까지 무려 나흘째 말 그대로 천사 모드다. 지난주 같았으면 하루에도 족히 백 번은 울고 불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번 주는 하루에 열 번 우는 소리가 들릴까 말까다.


어제 오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는 도마에 레이저로 글씨를 새기는 수업을 들으러 갔다. 나는 또 아이와 단둘이 남아서 ⟪프랑스 아이처럼⟫을 읽었다. 육아 초보로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딱 내가 원하는 육아의 이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억돌이가 누워서 노는 게 지겨운지 잉잉거리기 시작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녀석이 누워 있는 게 싫다고 하면 어쩌자는 건지 솔직히 난감하다.


⟪프랑스 아이처럼⟫에 따르면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가 보챈다고 무조건 달래지 않는다. 적당한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게 그들의 교육법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주 어린 아이도 어엿한 인간으로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것을 말로 설명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육아법을 따라 잉잉대는 아이를 끌어안지도 달래지도 않고 조용히 말했다.


“너 지겨운 거 아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안아주고 놀아줄 수는 없어. 아빠도 아빠 하고 싶은 게 있잖아. 사람이 살다 보면 지겨울 때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지겨운 시간을 보내는 법도 배워. 그리고 좀 커서 글씨 읽는 법 배우면 아빠처럼 책 읽자. 그럼 시간 잘 가. 아빠도 너를 어떻게 대하고 너랑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 이제부터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억돌이가 당장 울음을 그치진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바로 달래주지 않으면 분에 차서 자지러지게 울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울음의 강도가 일정하게 유지됐다. 그러다 2~3분쯤 지나자 잠잠해져서는 얼마간 누워서 말 그대로 멍을 때리다가 혼자 뒤집고 버둥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물론 이게 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통해 내가 아이에게 더 솔직한 아빠가 됐다는 것, 내 마음을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순전히 내 느낌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이도 내게 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오늘 소아과에 가서 아이의 1차 영유아 검진을 했다. 발달검사에서 아이의 언어 능력과 인지 능력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상위 2퍼센트 수준으로 머리가 큰데(미안하다, 아빠 유전자다) 머리가 크고 발달이 더딘 경우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겠다. 어떤 객관적인 측정법이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문항에 주관적으로 답한 것만으로 평가를 내리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4~5개월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검사인데 우리 아이는 아직 4개월이니 앞으로 한 달간 더 발달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요 며칠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아빠 말을 그렇게 잘 알아듣는 우리 억돌이가 언어 능력과 인지 능력이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자식이라면 덮어놓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방 소도시라 근처에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도 없는 터라 일단 몇 주간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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