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 엄밀히 말하자면 국제학교 유치부 입학설명회에 다녀왔다. 현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문득 우리 애도 나중에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테니 미리 이것저것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침 일도 잠시 끊겼고 거리도 가까웠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굳이 비싼 돈 주고 그런 데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데 부모가 되니까 또 생각이 달라진다. 애를 낳아 보니 뭐든 제일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물론 영어 유치원이 제일 좋은 교육 기관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돈 주는 만큼 대접이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보니 교육 서비스도 학비가 비싸면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더욱이 영어는 일찍부터 배워두면 좋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알면 다른 걸 다 떠나서 즐길 거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유튜브만 해도 한국어 콘텐츠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전 세계인이 영어로 만드는 콘텐츠의 방대한 규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책도 그렇다. 아무리 국내 출판 서적 중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20퍼센트나 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외국에서 발행되는 서적 중에서 국내 시장에 팔릴 만한 극소수의 책을 고르고 고른 것 밖에 안 된다. 전자책이 발달한 요즘은 영어를 알면 무수히 많은 책을 즉석에서 받아 읽을 수 있다.
음악, 만화, 영화, 게임, 공연 모두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문화 콘텐츠는 영어판이 존재한다. 공식판이 없으면 비공식판이라도 존재한다.
영어를 알면 인터넷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다. 내가 책을 번역하다 보면 이것저것 조사할 게 많은데 네이버에 없는 건 있어도 구글에 없는 건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구글에서 거의 100퍼센트 답을 얻을 수 있다. 직접 답을 얻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자료를 봐야 하는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번역가들은 '구글신'을 추앙한다.
거기에 더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공간의 제약 없이 전 세계인과 교류할 수 있다. 유튜브, 트위치 같은 방송 플랫폼에서 외국인과 대화하고, 레딧에서 온 세상 덕후와 함께 덕질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영어를 할 줄만 알면 인생을 더 즐겁게,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영어를 모르면 답답한 인생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영어를 알면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구사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어거지로,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싶진 않다. 배우는 과정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적어도 괴롭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를 배운 곳도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게임이었다(<번역과 게임과 나> 참고).
영어 유치원에 다니면 매 순간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니까 일반 유치원에서 영어를 어떤 독립된 과목처럼 배울 때보다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영어를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시기에는 언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고 하는데 집에서 엄마 아빠가 종일 영어로 대화할 수준은 안 되니까(<번역가라고 다 쏼라쏼라하진 않아요>) 집에서는 한국어를 빨아들이고 유치원에서는 영어를 빨아들이면 이상적이지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어 유치원에 다닐 정도면 다들 집이 좀 사는 애들일 테니 아이가 비슷비슷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포스코 직원 가족이 사는 단지에 살면서 직원 자녀만 다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나왔다. 당연히 모든 아이의 생활환경이 엇비슷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그랬다. 다들 떵떵거리며 살진 못해도 쪼들리진 않았다. 유복하다면 유복한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유순했다. 가끔 치고받고 싸우긴 해도 큰 사고는 안 쳤다. 우리는 온실 속 화초처럼 얌전히 컸다.
서로 가정환경이 비슷하다 보니 그 안에서 누가 잘 사니 못 사니를 따지며 우쭐해하거나 주눅이 드는 일이 없었다. 아파트가 몇 평이니, 아파트 단지 이름이 뭐니 따지며 누군가를 "XX거지"라고 놀리는 차별 행위가 없었다. 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 틀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서로 간에 계급을 나누지는 않았다. 물론 그 단지에 살고 그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게 사회 전체로 보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또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여하튼 속물 같은 말일지 몰라도 어릴 때는 비슷비슷한 환경의 아이들끼리 지내는 것도 내 아이만 생각했을 때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설마 "우리 집은 롤스로이스야, 이 BMW 거지야!"라고 하는 애는 없을 테니까. 사회 전체를 보자면 이렇게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차별과 분열을 조장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자식 하나 키우기도 벅찬데 무슨 사회 걱정까지 하느냐는 게 솔직하고 이기적인 심정이다.
큭큭.
웃을 수밖에 없다. 이게 다 우습고 부질없는 소리니까. 그도 그럴 게 그 유치원 학비가 무려 700만 원이란다. 1년이 아니라 1학기에 700! 거기다가 식비, 통학비, 교재비 등은 또 별도라니까 애 하나 유치원 보내는 데만 1년에 1,50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말씀. 우리 부부 벌이가 몇 년 내에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가당치도 않은 금액이다.
끼리끼리고 나발이고 그 '끼리'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주절주절 떠들어봐야 뭔 소용이람.
아들아, 아빠 로또 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