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이었다. 아니, 장승마냥 길쭉한 나무 기둥 다섯 개. 기둥마다 손잡이처럼 생긴 짧은 막대가 사람의 목 정도 되는 높이에 두 개, 배 높이에 하나 박혀 있고, 그 아래로 길게 구부러진 막대기가 다리처럼 바닥을 지지하고 있었다.
사방이 막힌 지하실이었다. 대여섯 개쯤 되는 일체형 책걸상은 뒤쪽으로 밀려 있고 기둥이 서 있는 앞쪽만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나마도 침침했다. 이런 곳에서 소설 쓰기 수업을 한다고?
기둥마다 한 사람씩 서서 손으로 막대를 감쌌다 풀었다, 막대 사이로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손놀림이 부지런했다.
끼이이익. 잡고 있던 손을 놓자 낡은 철문은 새된 울음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가운데 기둥을 치고 있던 중년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 네 사람은 여전히 기둥에 열중했다.
남자는 소리 없이 어느새 내 앞에 닥쳐 있었다. 단단히 선 목칼라부터 발목까지 통짜로 이어지며 허리 아래에서 벌어지는 중국식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시커먼 옷과 대비되는 창백한 얼굴에 입술만 유난하게 붉었다.
"처음 오셨죠? 반갑습니다."
자신을 견 선생이라 소개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쇠를 긁는 것처럼 서걱거렸다.
"저, 여기가 그, 엽편 소설 쓰기 클래스—"
"엽문 소설!"
견 선생은 짧게 내 말을 정정했다.
대관절 엽문 소설이라니? 엽문……이 뭐람?
그런 의문은 나를 빤히 보는 견 선생의 눈길 앞에서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지만 마치 흰자위가 눈동자를 잡아먹은 것처럼 허연 그의 두 눈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았다.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유난하게 붉고 큰 달이 선생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나무 기둥 앞이었다. 견 선생이 한 손으로 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몸부터 풉시다."
곁눈질로 옆사람을 살피며 양손을 펴고 섰다. 기둥은 얼룩덜룩한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천장의 조명이 앓는 사람처럼 깜빡여서 시야가 어지러웠다.
"마흘… 우를… 라야 하타."
가까이 서니 나머지 네 사람은 한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로지 기둥만 응시하는 눈은 어둑한 조명 때문인지 하얀 눈자위만 도드라져 보였다.
등을 지그시 누르는 견 선생의 손길이 느껴졌다. 등골에 찬바람을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어설픈 동작으로 기둥을 때리고 감고 푸는 시늉을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속삭임에 가까운 그들의 말이 똑똑히 들리기 시작했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손이 저릿해 잠시 동작을 멈췄다. 손가락 끝과 손날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려고 눈 앞에 가져다 댔더니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이 아니었다.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 다시 보니 기둥에 진 얼룩은 핏자국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가 얼굴에 닿는 미끈한 액체의 감촉에 진저리치며 급히 손을 뗐다.
"저, 전, 그만 가봐야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계처럼 기둥만 두드리던 네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모두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유난히 붉은 입술들로. 그들의 텅 빈 눈자위들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히히히. 히히히히. 히히히히히."
종 속에 갇힌 것처럼 사방에서 그들의 날카로운 웃음이 메아리쳤다. 귀를 막으며 뒤를 돌아보자 견 선생도 눈동자 없는 얼굴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유난히 붉은 달도 입술이 찢어져라 웃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쓰러졌다.
*
"신체 수련은 그만!"
견 선생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기둥 앞에 서 있었다. 손이 욱신거리고 축축했지만 상태를 살필 겨를도 없이 견 선생의 지령이 떨어졌다.
"모두 뒤로 돌아!"
나머지 네 사람을 따라 몸을 돌렸다. 기분 탓일까. 그들이 의지 없이 흐느적대는 바람 인형처럼 느껴졌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서 엽문 선생님께 예를 올리겠다."
맞은편 벽에 파르스름하게 머리가 벗겨진 노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매서웠다.
"일동 재배!"
견 선생을 포함한 다섯 사람이 손을 포개며 바닥으로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저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던 견 선생의 시선이 내 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와 내 눈에서 멈췄다. 또르륵. 내 등줄기에 흐르는 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전 교회 다녀서 절은 좀—"
그는 긴 혀로 입술을 핥고는 하아악 긴 숨을 토했다.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졌다.
"엽문 선생님을 욕보이겠다는 건가?"
"전 그런 사람 몰라요."
"절해!"
견 선생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나는 양손으로 턱을 받치며 버텼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남은 넷이 여전히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나를 에워싸고 사지를 붙들었다. 눈동자 없이 희번뜩이는 네 쌍의 눈과 주문을 읊는 네 개의 입이 내 심장을 조여왔다.
"안 돼, 안 돼. 이건 우상숭배야!"
나는 발버둥치며 견 선생의 손아귀 안에서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고개를 힘껏 쳐들었다. 사진 속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아니, 두 개의 붉은 달이 박동하고 있었다.
꾹 다물었던 노인의 입이 벌어지면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눈도 입술도 시뻘겋게 빛나는 노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숭배해… 숭배해… 숭해배…"
꽈르릉. 천둥과 함께 모든 조명이 죽었다. 별안간 머리 위로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시커먼 방 안에서 오로지 노인의 붉은 눈과 그 하수인들의 허연 눈만 둥둥 떠다녔다. 히죽히죽, 히죽히죽. 그들의 입술이 자꾸만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마흔 가주는 남우를 갈아야 한다."
"숭배해… 숭배해… 숭배해…"
빗발마저도 나를 굴복시키려는 듯 매섭게 내리 꽂았다. 온몸을 제압당한 나는 이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개만은 죽을 힘을 다해 쳐들었다. 두두둑두두둑. 목덜미에서 안간힘을 쓰던 뼈들이 견 선생의 악력에 하나둘 굴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진 속 노인은 숫제 입을 쩍 벌리고 웃고 있었다. 그 검은 구덩이에서 뻗어나온 두 손이 빗줄기 속에서 내게 닥쳐왔다. 주체할 수 없는 몸서리가 내 몸을 타고 흐르더니 꼼짝없이 고개를 붙들렸다. 노인의 엄지손가락이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시야에 온통 벌건 물이 들고 있었다. 나는 무참히 가라앉으면서도 고개만은 꼿꼿히 세우며—
*
"안 돼애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였다. 잠결에 곧추 세운 등줄기가 축축했다. 머리를 어루만져보니 나를 짓누르던 손은 없어졌지만 감촉은 아직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목이 탔다. 더듬더듬 바닥의 물병을 찾아 목을 축였다.
끔찍한 꿈이었다.
침대를 나오자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이 있었다. 장승이었다. 아니, 장승 같은 기둥. 목과 배 높이에 짧은 막대가 달리고 길게 구부러진 막대기가 바닥을 지지하는, 목인장(木人樁).
나는 그 앞에 서서 부드럽게 편 손으로 목인장을 치고 감고 풀기를 반복하며 읊조렸다.
"마음가짐은 나무와 같아야 한다. 마음가짐은 나무와 같아야 한다"
잡귀가 들러붙은 것 같은 기분이 가시고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의자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닦고 뒤돌아 섰다.
맞은편 벽에서 머리가 벗겨진 엽문 선생님의 초상이 은은한 미소로 나를 맞았다. 초상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문서 파일을 열었다.
엽문의일생_3장_초고.hwp
깍지 낀 손을 이리저리 비틀어 푼 후 지난번에 멈춘 부분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견자단이 주연한 <엽문> 시리즈에서는 인용되지 않았지만 생전에 엽문이 남긴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마음가짐은 나무와 같아야 한다"일 것이다. 이 말은 대중에게 영춘권의 문호를 열어 일대종사의 칭호를 얻은 엽문의 인생론이기도 한데
끔찍한 꿈이었다.
엽문을 모르는 삶이라니.
대관절 엽편 소설이라니.
후기: 진주문고에서 서장원 작가님이 진행하는 엽편 소설 쓰기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 글은 첫 번째 과제로 제출한 작품입니다. 합평회에서 여러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메시지의 부재였습니다.
이 소설의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는 아무 메시지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원래 소설을 읽을 때 메시지를 중시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 작품에도 굳이 메시지를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글로 옮겼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메세지를 안 넣으려면 이것보다 더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정말로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준이 되면 메시지가 없어도 괜찮다고요. 그리고 같은 수강생들에게서 다 읽고 나서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그것 역시 메시지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피드백은 분량 배분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이 글은 꿈 속의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꿈과 현실의 비중이 반반 정도 됐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게 꿈이었다는 식으로 끝나버리니 독자 입장에서는 역시 허탈하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두 가지 다 글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듣고 보니 모두 수긍이 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