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4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말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지인 D(Feat. 내가 원래 좀 솔직하잖아)


*오늘의 사례는 지인 D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이며, D의 동의하에 쓰인 글입니다.

출처: unslplash



"글몽아, 내가 원래 빈말을 못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서로 좋은 거 아니야?"


D와 알고 지낸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말투와 화법에 적응되지 않을 때가 있다. 본인은 늘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다고 표현한다.


솔직한 거 물론 중요하지만 요즘 솔직함을 무례함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듯하다. D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글몽씨, 되게 말 없고 조용하시네요. 있는 줄도 모르겠어요. ㅎㅎ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 많이 없었죠? 친구 없을 스타일이야."


처음에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대놓고 하는 사람은 뭘까.라는 생각에 거리를 두었다. 사람들 다 모여있는 공간에서 나를 저격하듯이 친구가 없을 스타일이라니(물론 사실을 들킨 것 같아서 흠칫했다).


스스로를 활발하고 활동적이라고 생각하는 D와 존재감 없을 정도로 조용한 내가 어떻게 친분이 생겼는지 지금 돌아봐도 신기하지만, 오히려 너무 극과 극이라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서로 '뭐 저런 애가 다 있어?'라는 생각을 했을 테니까.






D와 나, 둘 사이에는 겹치는 또 한 명의 지인 H가 있다. 어찌 보면 H 때문에 맺어진 특별한 애증의 관계랄까. 셋의 관계가 유지되는 건 H가 중재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D와는 절대 친해질 수도, 친해지기도 싫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 뒤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런 꼴을 못 보는 D가 나에게 물었다.


"글몽아, 너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아니면 내가 뭐 실수했나? 답답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솔직히 말을 좀 해줘. 꽁하게 그러면 누가 알아? 너는 착한 거 같은데 진짜 너무 숨 막힐 때가 있어"


맙소사. D는 그 짧은 찰나에 나에게 3연타 훅을 날렸다.

답답하다

꽁하다

숨 막힌다


이때 나는 확신을 했다. 얘는 정말 무례함의 끝이구나. 내가 지금껏 살면서 만나온 부류 중에 최악 top3안에 들기에 충분하다.라고 말이다.


저 세 단어 중 어떤 것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서 D에게 말했다.


"너 되게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네"






D: "뭐? 내가?"


D는 당황한 게 아니라 황당해 보였다. 마치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다는 듯이.


: 너 그런 거 여태 몰랐어? 단어 하나하나 표현하는 거 기분 나쁘게 하잖아. 그래서 너랑 대화하면 부담스럽고 불편..


D: (말 끊기) 아 글몽아, 내가 원래 빈말이랑 거짓말을 잘 못해. 솔직하게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긴 한데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 솔직하게 너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다야? 상대방 기분은 생각 안 해? 아무리 너 생각에 답답하고 거슬리는 면이 있다고 해도 누가 너처럼 그렇게 대놓고..


D: (말 끊기) 나 진심 황당하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어. 있는 말 솔직하게 하면 금세 친해지고 허물없어지던데. 너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속을 알 수도 없고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건데.


: 그러니까. 너랑 나는 성향이 너무 안 맞아. 난 솔직함을 가장해서 있는 말 없는 말로 상처 주는 사람 불편하고 싫거든.


내가 언성 높여 말하는 거에 놀랐는지 H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H: 글몽아, D야. 내가 봐도 둘 성향이 극과 극이긴 하거든? 그래서 아마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 D가 말하는 어투나 단어들이 세서 처음 대하는 사람은 놀라고 당황스럽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글몽이는 말을 좀 예쁘게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더더욱 D가 특이하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해. 난 너희 둘이랑 친하다 보니 각자의 장점이 뭔지 잘 알잖아.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성향이 다른 거라서 둘이 시간을 좀 가져보면 어떨까 싶어.






마치 유치원생들끼리 다투고 선생님이 중재한 기분이랄까. H의 희생 덕분인지 그날의 다툼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이 말다툼 사건(?)으로 나도 D에게 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희한하게도 처음보다 친해지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D는 말을 할 때마다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간히 튀어나오는 단어와 직설적인 표현에 놀랄 때가 있었지만.


D가 보이는 성향은 대략 이러하다.


첫 번째, 대화 도중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앞선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D는 상대의 말을 끊고 본인의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사용하는 단어들이 공격적이고 날카롭다. D는 거리낌 없이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 솔직한 게 좋은 거 아니냐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 모든 사람들이 본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D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오죽하면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도 있을까. 그런데 D는 사람들이 본인을 다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렇지 않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어떤 심리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 자기 방어적 합리화

D가 “난 원래 빈말을 못해, 솔직한 게 좋은 거잖아”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공격적인 표현을 ‘솔직함’이라는 가치로 포장해 정당화하려는 심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자기 합리화(Self-justification)’의 일종으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을 때 나타나는 방어기제이다. 즉,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남들이 예민한 거야”라는 식으로 불편한 책임을 회피하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 결여

D는 상대의 반응보다 자신의 의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보이는데 이건 흔히 공감 능력(Empathy)이 낮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상대가 상처받는 걸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게 왜 문제야?”라고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유형은 감정의 언어를 배울 기회가 부족했거나, 항상 자기주장이 강한 환경에서 공감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 관계 속 불안과 통제 욕구

D가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허물없어지는 걸 좋아한다”면서도 상대가 거리를 두면 “답답하다”, “숨 막힌다”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이는 관계에 대한 불안과 통제 욕구가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누군가 자신을 피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그 불안을 ‘직설적인 말’이나 ‘지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로 표현하는 것이다.


# 자기애적 성향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고, 그렇지 않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자기애적 성향(Narcissistic tendencies)’ 과 연결될 수 있겠다. 꼭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NPD)까지는 아니어도,

타인의 반응이 자신의 자존감을 위협할 때 강한 부정, 분노, 혹은 억울함으로 반응하는 특징을 보인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왜 날 싫어하지?’라는 심리적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서 그 감정을 공격성으로 바꿔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람의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숨어 있다. 그 말이 날카로울수록, 그 안에는 어쩌면 더 큰 두려움이나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D의 직설적인 화법은 겉보기엔 자신감처럼 보였지만, 실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방어의 언어였다.

그는 ‘솔직함’을 무기 삼아 스스로를 지키려 했지만, 그 칼끝이 종종 타인을 향해 있었다. 우리는 종종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은 잊곤 한다.

D의 말속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나 역시, 어쩌면 나만의 기준으로 ‘솔직함’을 재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관계란 서로의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일 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솔직하다’는 말에는 사실 두 가지 뜻이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솔직함과 상대를 배려하며 진심을 전하는 솔직함. D는 전자를, 나는 후자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뿐이다.


누군가는 말로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그 상처 속에서 배우며 자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며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