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는게 때론 좋을때가 있다. 돌고돌고돌려말하는 화법을 해석하다보면 듣는 사람까지 돌아버리고 말테니까.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건 '바른대로 말하는 것', 즉 꾸밈이나 에둘러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태도이다. 이것을 솔직함으로 포장해서 상처주는 말을 뱉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이지, 직설적인 것은 핵심만 간결히 말해 오해를 줄이고 의사소통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내 친구J의 직장 상사, 과장 G씨에 대한 이야기를 각색해보았다.
J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특히 회사 이야기나 자기개발 등 소위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많은 대화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J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J: 글몽아,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야?
나: 응? 갑자기 왜?
J: 아니, 과장님이 뭔가 말을 할때 내가 유독 못알아채는건지 눈치가 느린건지 모르겠더라고. 직장 선배가 나한테 과장님이 말한 의미는 그게 아니라고 하는데 난 아직도 모르겠거든.
J의 말에 의하면 과장 G씨는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와 중저음의 안정된 목소리로 팀원들과 차분히 대화하는 꼰대 같지 않은 '점잖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G씨가 말하는 화법이 칭찬을 가장한 욕인건지, 칭찬인건지 애매하게 들릴때가 많다는 것이다.
G과장: J대리, 오늘 발표한 성과보고 잘 봤어요. 그동안 일한거 요약 정리를 아주 잘했던데? 시간이 빠듯했을텐데 언제 이렇게 준비를 했어요? 지니(소원을 들어주는 요정)라도 도와준건가? 고생했어요. 하하하.
J: 네, 과장님! 이번에 부장님께서 성과보고를 눈여겨보신다고 들어서 좀 더 신경썼습니다. 잘봐주셔서 감사해요!
나: 이게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그냥 잘했다고 칭찬한거 아니야?
J: 그치? 잘 했다고 칭찬하는거 아니야? 근데 여기 오래다닌 선배가 그러는데 저게 칭찬하는게 아니라 비꼬는거래.
선배K: J야, 오늘 발표 너무 잘한거 맞는데 G과장님이 말하는게 잘했다고 하는게 아니야. 이게 참 알아듣기가 어렵고 짜증나긴하는데.
J: 네? 선배, 과장님이 말하신게 칭찬이 아니라고요? 그럼 뭐예요? 분명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하셨는데..
선배K: 아, 그렇긴한데 과장님이 지니가 도와줬나? 이렇게 말했자나? 저건 니가 진짜한게 맞냐 이런 뉘앙스로 말한거야. 그리고 요약정리 잘했다, 시간 빠듯했을텐데 언제 이렇게 했냐, 이것도 평소에 일도 안하는것처럼 보이는데 용케도 했네. 이런거라고 알아들으면 돼.
J: 진짜요? 저렇게까지 꼬아서 말하시는거라고요?
선배K: 응, 그렇더라고. 저 과장님이랑 오래 일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너는 아직 얼마 안되기도 했고 알아채기 어려울거야. 나도 처음에 안믿었거든. 저렇게까지 꼬아서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근데 G과장이랑 사석에서 말해보면 알게 된다고 하더라.
J: 겉으로 봐서는 온화하고 칭찬만 하셔서 좋은 분인줄만 알았어요. 다른 분들도 다 존경하고 좋아하는거 아니에요?
선배K: 회사에서 적으로 둘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저냥 지내는거지뭐. 그리고 너 말대로 겉으로 대놓고 티가 나지 않으니까.
G과장은 요즘 말하는 *교토화법의 달인인거 같았다.
교토화법이란, 일본 교토(京都) 사람들의 독특한 말투나 의사소통 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교토 사투리’만 의미하는 건 아니고,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예의바른 화법을 말할 때 자주 쓰인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이거 좀 짜네요”라고 하면, 그건 그냥 짜다는 뜻이지만, 교토식으로는 “이거 참 밥이랑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속뜻은 “짜서 밥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는 공손하고 부드럽지만, 속뜻은 다르게 깔려 있는 말투로 일본 안에서도 “교토 사람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일종의 우회적인 소통 방식이자, ‘정중함 뒤의 진심’을 읽어야 하는 문화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해서 우회적인 표현을 하는 건 의사소통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고 중요한것도 맞다. 하지만 저렇게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돌려돌려 말하는 표현은 상대가 너무 피로할 뿐만 아니라, 진심을 전한다고 해도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J는 G과장의 화법을 말하는 그대로 들어어야할지, 한번 꼬아서 해석을 해야할지, 두번 꼬아서 해석을 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J: 저게 G과장님의 화법에 충격을 받은 첫 번째 에피소드였어.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과장님이 무슨 말을 해도 자꾸 의심이 되는거야. 칭찬인건지 돌려까는건지. 내가 눈치가 없어서 못알아먹는건지 나한테서 원인을 찾게 되고 그래서 요즘 스트레스야.
나: 저렇게 돌려말하는거 말고도 또 힘들게 하는 것도 있어?
J: 일단 저 화법이 제일 크지. 무슨 일을 시켜도, 칭찬을 해도 내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게 맞는지 한참을 생각하게 되니까. 저번주에도 팀 회식이 있었는데, 과장님이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노는데 본인이 끼면 불편하다면서 한사코 거절을 하는거야. 우리는 저 말이 진심이 아닌걸 아니까 한번 더 물어봤지. 근데 진짜진짜 아니라면서 나중에는 정색까지 하시길래 억지로 끌고 갈수는 없으니까 대리들끼리 갔거든?
나: 근데 역시나 그 뜻이 아니였던거야?
J: 가고 싶지 않았던건 맞나봐. 근데 우리가 자꾸 눈치없이 물어보고 가자고 했다고, 부장님한테 요즘 친구들은 차암~끈기가 있다고 그렇게 표했다는거야.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ㅎㅎ
J: 그리고 은연중에 후배들이 본인보다 성과가 좋거나 승진을 하게 되면 경계하는 거 같더라고. 이것도 내가 그 성향을 알기전까지는 몰랐는데, 다 돌려말하는거에 드러나더라. K선배가 승급했을때도 과장님이 다 모인 자리에서 "K대리, 이번에 진급한거 축하해! 입사한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정말 대단하네~ 앞으로도 과장, 차장, 부장까지 쭉쭉 나아가야지?" 이렇게 말하더라.
나: 저 말뜻에도 다른 진심이 있는거겠지?
J: 물론. ㅎㅎ K선배 말로는 빨리 진급해서 퇴직도 빨리해라. 이런 의미라고 하더라. ㅎㅎ 다른 곳에 스카웃 될 수도 있고, 이직도 하고 그러니까.
나: 그런데 G과장의 화법을 너무 오해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있지 않을까? 너도 선배도 다른 직원들도 어떻게 G과장의 화법을 눈치챌 수 있었던 거야? 너도 처음엔 몰랐을정도로 우회적으로 말하는 거 같은데 말야.
J: 응 맞아. 워낙 교묘하게 표현을 해서 나도 헷갈릴 때가 많으니까. 본인도 저렇게 돌려말하는게 마냥 좋지는 않겠지. 과장님도 본심을 털어놓는 동료가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런데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그 동료분이 일부러 말하고 다닌건 아니겠지만 어찌저찌 G과장님의 속뜻을 직원들이 알게 된거지. G과장님은 자신이 젠틀하고 멋진 상사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 그래서 말을 조심해서 한다는게 저렇게 된거 같은데 듣는 사람들은 너무 짜증나. 말할때마다 속뜻을 해석해야된다는거 자체가 스트레스잖아.
첫 번째, 말의 핵심을 돌려돌려 말하는 태도이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말하는 의도는 그게 아니면서 겉으로는 칭찬으로 포장한 듯한 그의 언행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짜증나게 한다.
두 번째, 자신의 온화하고 점잖은 이미지에 많이 신경쓴다. 돌려말하는 태도도 자신이 솔직하게 표현하면 사람들에게 날카롭고 까다롭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어떤 심리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돌려 말하는 태도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이미지를 방어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까칠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어서,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피하고 싶고, 동시에 우월함은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뒤섞인 결과로, 돌려 말하기(간접화법)가 그 심리적 타협점이 된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G과장은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하는 성향이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노출되거나, 진심이 오해받는 걸 피하고 싶어서 '감정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시에 통제욕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계속 의식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직접적 피드백 대신, 암시형 대화를 통해 관계를 조정하려고 하며 상대방이 스스로 눈치채길 바라는 수동적 통제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G과장이 후배의 승진이나 성과에 대해 ‘돌려 칭찬’을 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건 일종의 질투와 은근한 비교 의식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직접적으로 경쟁을 인정하기보단, 유머나 풍자로 감정을 포장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자기감정에 대한 인식 회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직설적인 사람은 종종 거칠어 보이고, 돌려 말하는 사람은 부드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태도 모두 결국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솔직함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누군가는 완곡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이해받고 싶다’는 같은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G과장 처럼 에둘러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피로할 때가 있다. 그의 말에는 늘 숨은 뜻이 있고, 듣는 사람은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감정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역시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곧 공격으로 오해받는 세상에서, 그는 말의 모서리를 최대한 둥글게 다듬는 법을 배운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그런 순간이 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속마음을 말할 때는 수백 번의 표현을 고르고, ‘이 말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그렇다면 G과장의 화법은 단순히 그의 성격이라기보다, 누구나 사회 속에서 조금씩 배우게 되는 생존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직설적이냐 완곡하냐가 아니라, 그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돌려 말하든, 바르게 말하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의도가 있다면 언어는 조금 서툴어도 괜찮다.
말을 예쁘게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용기를 내는 것, 그게 아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