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의 8번째 에피소드는 브런치에서 글쓰는 몽상가 LEE로 활동하는 글몽이, 제 스스로에 대한 특성을 심리적 시선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이나 백자일기에서도 언뜻언뜻 보이는 나의 특성을 알아차리신 독자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나의 MBTI는 INFJ이다. 희귀한 MBTI라고들 하지만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MBTI의 신봉자는 아니지만 꽤나 나의 특성에 맞는 MBTI라고 생각이 든다. INFJ를 표현했던 말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거울과 같은 사람'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눈눈이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의식해서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타인이 나에게 행동하는 스타일에 비슷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친절과 배려하는 사람에겐 그에 맞는 친절과 배려를, 무례하고 예의 없는 사람에겐 또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것이다. 그릇이 작다고 하면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의 간극은 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누군가에겐 한없이 온순하고 친절한 천사이지만 누군가에겐 냉정하고 차가운 얼음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건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면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맞춤형이 가능한 것뿐, 가식적이거나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정리했다.
타인의 성향에 맞춤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겉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집에 오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것처럼 뭄과 마음이 흐물흐물 무너져버린다.
그러기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부담감이 상당하여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선호하게 된다. 그 최소한의 인간관계에서도 고민이나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지는 못한다. 주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다.
최근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회사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 글몽씨는 뭐랄까, 좀 비밀스러운 거 같아. 본인의 이야기는 잘 안 하고 주로 듣기만 하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달까, 카카오톡에 개인 정보 같은 거 거의 없고 말이야. 나는 뭐 뒤에서 말하는 거 싫어하니까 솔직히 앞에서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은 음흉해 보이는 거 같더라고. 감추는 게 많은 건 뭔가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 이 말을 듣는데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을 시전 했던 ep.4의 내 친구 D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보다 한참 선배이기도 해서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애써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듣던 동료들의 당황스러움과 찰나의 굳은 내 표정을 보았는지 선배는 이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바꾸었다.
음흉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봐서 순간 머리가 띵 했던 것도 있었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 중에 손에 꼽히는 불쾌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나와 1:1 상황이 아닌 다른 직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를 저격한 것이니까.
아무튼 선배는 뇌를 거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음흉하다로 표출된 것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친구들도 나에게 비밀이 많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글몽아 요즘 어떻게 지내? 만나면 내 얘기만 하는 거 같아. 너도 힘든 일이나 좋은 일 있으면 말 좀 해줘!"
나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거나 과정 중에 말하지 않고, 다 마무리되고 스스로 정리가 되고 나서야 말하는 편이다. 나도 왜 그런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어렸을 때의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나 피아노 진짜 열심히 칠 거야! 그래서 상도 받을 거고 나중에 피아니스트도 @!@!##$"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엄마에게 떼썼던 기억이 난다. 형편이 넉넉지 못했는데(그 당시에 거금이었던 피아노를 사주기 힘들었을 텐데) 자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리해서 사주셨다.
처음엔 포부를 가지고 피아노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연습도 했지만 이내 금방 싫증이 났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할 때마다 틀리면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도 무서웠고 숙제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학원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피아노는 그저 장식품이 되었다.
부모님은 별말씀도 안 하셨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떼쓰고 힘겹게 사주신 피아노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몇 달 가지 못해서 싫증 나고 포기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랄까.
그게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경험하면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하는 과정은 굳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성과가 나오고(그것이 꼭 성공이 아니어도), 내가 스스로 정리가 되어야 지나간 에피소드를 말하듯이 말하게 된다.
지나간 이야기를 들은 지인과 친구, 심지어 부모님 조차도 이렇게 고민과 힘든 과정이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놀라움과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들이 비밀스럽고 조심스럼이 많은, 좋게 보면 신중하고 차분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저 선배처럼 음흉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몽씨, 글몽씨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도 하루하루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고, 치료도 꾸준히 받고 이런 것들도 잘 버티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남들의 장점과 능력은 잘 인정해 주면서 왜 본인의 장점과 능력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인정을 안 해주는 거지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 좀 많이 해주세요."
내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의사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잘 찾아내고 부러워하는 반면, 나의 장점은 작게 본다던지 타인이 이룬 성과는 크게 인정하면서도 같은 성과를 내가 해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면이 있다.
친구가 직장을 다니면서 토익 시험을 보고 이직 준비를 잘 해내고 있었다. 그 무렵 나도 이직을 위해 퇴근 후, 주말에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당시 목표한 토익 점수를 받은 친구가 대단해 보여서 많은 칭찬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자격증 합격자 명단을 보고 합격했음에도 순간의 기쁨도 잠시, 나도 회사 다니면서 취득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쉽게 취득했을 테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말 사소한 자격증이라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운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는데, 시간을 꽤 투자하며 공부했음에도 스스로에 대한 성과는 인정하지 않았다.
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내가 보이는 성향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상대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성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에너지가 쉽게 소진되고 최소한관계만을 선호한다.
두 번째, '눈눈이이', '거울과 같은 사람'. 상대의 언행에 따라 그대로 반응한다. 한 없이 따뜻하고, 배려하는 천사 같은 사람이다가도 냉정하고 차가운 얼음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비밀이 많다. 나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 편이고,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다 정리되고 지나간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 번째, 스스로 과소평가한다. 같은 성과를 이루었어도 상대의 성과는 크게, 스스로에 대한 성과는 작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어떤 심리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겉으로는 문제없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혼자 있는 순간 에너지가 무너지는 경험은 자기애성 취약성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자기애'는 흔히 말하는 과장형 자기애가 아니라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읽고, 상처를 피하려고 감정을 조절하며,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취약한 자기애’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유형은 관계에서 조용하고 배려가 많아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정서적 탈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정리된 뒤에야 말하는 특성은 정신병리학적으로 보면 회피성 인격 특성과 관련된 패턴이 있다. 실망시키기 싫다, 실패를 보이면 비난받을까 두렵다, 불완전한 상태의 자신을 보여주기 어렵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하면 ‘과정은 감추고 결과만 말하는’ 소통 방식이 형성된다. 어린 시절 “호언장담 → 포기 → 죄책감”의 경험은 이러한 회피적 패턴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학습 경로다. 실패에 대한 상태 불안이 말하기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의 성과는 축소하고, 타인의 성과는 크게 평가하는 경향은 정신병리학에서는 자기 개념 불균형으로 설명한다. 불안기반 완벽주의(기준이 타인을 향할 때는 관대하지만 자기에게는 과도하게 엄격), 부정적 자동사고(“이 정도는 누구나 한다”), 인지왜곡(“내 성과는 별거 아냐”), 취약한 자존감(외부 칭찬은 잠시만 유지되고 곧 무의미해짐)의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말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움직인다. 내가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도, 누군가의 말에 오래 머무르는 이유도 결국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누가 말하듯 음흉한 것도 아니고, 또 누군가가 칭찬하듯 완벽하게 배려심 깊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때로는 너무 많이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균형을 잡아왔던 것뿐이다.
말을 아끼는 성향도, 상대의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타인의 성과는 크게 보고 내 성취는 작게 보는 습관도 모두 나의 약함이자 동시에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
사람은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따뜻함과 단호함이 공존할 수 있고, 조심스러움 속에도 진심이 있고, 말 없는 침묵에도 나름의 서사가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하려 애쓸 필요 없고 관계는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며 천천히 맞춰 가는 과정이며 나는 단지 그 과정에서 조용히 나 자신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울 테고, 때때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통해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또 한 번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남에게 친절하듯 나에게도 조금 더 따뜻해져 보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조금씩, 나도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