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9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물어보는 F씨(feat.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 오늘의 에피소드는 친구가 지인으로부터 겪은 경험을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unsplash


J는 몇 안 되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다. 20대 중반에 회사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늘 편안함을 느끼는 사이이다.


연말이 다가와서 오랜만에 J를 만나게 되었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그와 이런저런 근황을 물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는 같은 듯 다른 면이 많은 J는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관계를 잘 유지하는 편이다.


J: 글몽아, 내가 웬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편이긴 하거든?


나: 그렇지, 그래서 나랑도 친해졌잖아(웃음).


J: (웃음) 아니 그래도 너는 나랑 비슷한 점도 많고 결이 맞으니까 금세 친해진 거지!


나: 그렇긴 하지! 근데 무슨 일 있었어?


J: 대학교 친구가 있는데 예전에도 그러긴 했지만 요즘 들어서 좀 더 심해진 거 같아. 답정너 증상.


나: 아 그 F씨? 너랑 꽤 가깝게 지내는 사람아냐? 인스타 댓글에서도 자주 보이시던데.


J: 응 맞아. F가 나랑 다니는 걸 좋아하거든. 내가 사람들이랑 잘 지내기도 하고, 놀러 다니는 게 부럽다고 모임이 있으면 같이 데려가달라고 하더라고. 어렵지 않으니까 가끔 같이 다니고 있어.


나: 근데 F씨가 답정너였어? 몰랐네 ㅎㅎ


J: 그니까 뭐 할 때마다 내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려고 하거든? 근데 웃긴 게 내가 말하는 거가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면 그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물어보더라고.


나: 예를 들면?


J: 인스타에 F랑 같이 찍은 사진 올렸었거든? 그것도 F가 여러 장을 보여주면서 어떤 게 나아 보이냐는 거야. 그래서 나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니까 아무거나 말했는데, 원하는 게 아니었는지 2-3번을 더 묻더라고(웃음).


나: 아 ㅎㅎ 뭔지 대충 알겠다.


J: 대학교 때도 그 정도는 봤어서 대수롭지 않았는데 요즘은 나한테 물어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거야. 최근엔 F가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어느 대학원에 가면 좋을 거 같냐는 질문을 하더라고?


나: 그건 본인이 원하는 학교를 정해야 되는 건데 특이하긴 하네.


J: 뭐 쉽게 결정 못할 수도 있긴 하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학교를 정해놓지도 않고 두루뭉술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원 중에 OO계열로 가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너라면 어디로 결정할 거야?' 이런 식인 거야.


나: 아, 아예 결정을 너한테 넘기는구나.


J: 응. 내 의견을 참고하는 게 아니라 결정해 주길 바라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서울에 유명한 대학원을 추천했다? 그랬는데


나: 그건 또 아니래? ㅎㅎ


J: 거긴 너무 수준이 높아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래서 나도 F야, 학교 진학하는 거는 네가 원해서 결심한 건데, 너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해줬어.


나: 그랬더니?


J: 본인도 알고 있대. 근데 결정을 못 내리겠다고 하더라고. 자신이 없대. 그냥 누군가가 정해줬으면 좋겠는데 F가 생각했을 때 나는 결단력 있어 보여서 자꾸 물어보게 된다고 하더라고.


나: 그렇지, 네가 결정도 잘하고 실행력도 좋으니까 그게 부러웠나 보다.


J: 그런 거 같아. 근데 매사에 나한테 의지하고 물어보니까 나도 부담스럽고 지치더라고. 그리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정해 버린다니까(웃음).





J: 나도 F랑 잘 맞는 점이 있고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어서 그냥 까놓고 솔직하게 말했어.


나: 오, 그래 대화해 보면 F씨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잘했네.


J: 그냥 내 마음도 불편하고, 불편하니까 나도 모르게 F를 거리 두게 되는 게 신경 쓰이더라고. 그래서 말했지 뭐. 'F야, 너 무슨 결정할 때 나한테 의견을 물어보는 건 괜찮지만 그건 어느 정도 네가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타인의 생각을 참고하기만 해야지. 아예 결정을 해달라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그리고 얘기하다 보면 결국 네가 정해놓은 답이 있는데, 그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느낌도 들고. 그게 듣는 사람입장에선 부담스럽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거든.'이라고 말했어.

나: 꽤나 직접적으로 말해줬네. 그랬더니 F씨가 뭐랬어?


J: 듣더니 표정이 시무룩해지더라고. 나한테 그렇게 부담될 줄은 몰랐다면서. 그러면서 앞으로는 물어보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끝났어.


나: 아 뭔가 좀 상황이 애매해졌네.


J: 그래서 지금까지 F는 아무것도 나한테 물어보지 않고 있어. 나는 또 괜한 말을 한 걸까 싶은데 그래도 F도 내 말을 듣고 뭔가 느낀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나: 네가 괜히 말한 건 아닌 거 같아. 다 F씨를 위해서 말한 거니까. 그래서 사이도 어색해진 거야?


J: 아냐 연락도 평소처럼 하고 잘 지내. 근데 그 미묘한 간극이 생긴 기분? 뭔지 알지?(웃음) 근데 이게 끝이 아니야 글몽아.


나: 응?


J: 나한테 질문을 못하니까 F가 다른 친구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나 봐. F랑 나랑 둘 다 알고 있는 또 다른 친구 H가 있거든. 근데 H는 이런 거 용납을 못해서 칼같이 자르는 편이라 그동안 F가 나한테 의지했던 건데, 내가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H한테 의지하기 시작했나 보더라고.


나: 아, H씨도 F씨도 서로 좀 힘들겠네.


J: 응. 그 말을 들으니까 또 마음이 쓰이는 게 다시 예전처럼 편하게 물어보라고 해야 할지 고민되는 거 있지(웃음).





J는 말해서 후련하고 괜찮다고 했지만, F 씨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F씨가 보이는 성향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 번째, 타인에게 의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이 잘 나온 사진을 고르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 중대한 것까지 타인이 결정해 주길 바란다.


두 번째,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할 때까지 질문하는 답정너 모습을 보인다. 상대에게 결정을 넘기려는 성향을 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하는 성향이 있다.


세 번째,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J가 F씨에게 너의 성향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놨을 때 해결점을 찾으려기보다 앞으로는 질문을 하지 않겠다고 상황을 피해버리고 곧바로 다른 대상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어떤 심리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 타인 결정 의존성과 외부 기준에 고착된 자기 구조

F씨의 반복되는 의사결정 의존은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의존성 성향자기 가치의 외부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유형은 내적 기준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아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고 안정감을 확보하려는 패턴을 보인다. 사소한 사진 선정부터 진로와 같은 중요한 선택까지 외부에 결정을 넘기고자 하는 성향은 결정의 결과가 가져올 책임과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답정너’ 반복 질문, 자기 확신의 취약성과 연결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은 고집스러움이라기보다 확증추구적 행동 패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 판단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 반응으로 자기 내부에서 기준을 생성하지 못하니 타인의 말이 ‘정답 역할’을 해주어야 안정되는 것이다. F씨는 타인에게 결정권을 넘기면서도, 동시에 이미 내면에 고정된 선호나 불안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답을 들을 때까지 대화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양상을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부분적으로 투사적 동일시의 초기 형태로 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결론’을 상대를 통해 되찾아오려는 무의식적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 갈등 회피와 부정적 평가에 대한 민감성

J가 솔직하게 어려움을 표현했을 때, F씨가 대화를 이어가며 조율하기보다 “앞으로 안 물어볼게” 라며 즉시 빠져버리는 모습은 갈등 회피적 대처의 전형이다. 이 회피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과민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불편함을 줬다느니 나는 거절당할 수 있다”라는 자동 사고가 빠르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보다는 즉시 상황을 종결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그 뒤엔 동일한 의존 패턴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며 재현한다. 회피성 성향의존성 성향이 혼재될 때 자주 관찰되는 패턴이다.






J와 F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관계란 결국 서로의 결을 맞추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쉽게 기대고,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맞춰주고, 그러다 어느 순간 한쪽이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지침 역시 누군가를 밀어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F씨가 계속 질문을 던졌던 것도, J가 솔직한 마음을 말해야 했던 것도, 그리고 그 이후에 생긴 미묘한 간극까지도 모두 둘 사이의 관계가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단계일 것이다.

어떤 관계는 말하지 않으면 버거워지고, 어떤 관계는 말함으로써 잠시 어색해지지만 결국 더 건강해진다.

사람의 행동 뒤에는 각자의 두려움과 바람이 숨어 있다. F씨의 의존은 불안을 숨기기 위한 방식이었고, J의 솔직함은 관계를 지키려는 용기였으며, 그 사이에서 생긴 감정들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둘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완벽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솔직해지고, 때로는 물러서고, 때로는 다시 다가가며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 역시 타인을 들여다보듯,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 더 조용히 마주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