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10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언제나 미소를 유지하는 미소천사 L씨


* 오늘의 에피소드는 직장동료 L씨에 대한 이야기를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unsplash


L씨는 나와 동갑이지만 먼저 입사한 선배이다. 최근 인사이동으로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업무는 달라서 나와 교류가 많지 않았지만 오며 가며 인사하고 소소한 스몰토크 정도는 나누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L씨는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미소천사', '천사같은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그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친절하고 정중한 태도가 배어있었다. 그래서 L씨를 마주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L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늘 친절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매사 친절한 미소와 말투를 보이는 그가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날 출근하다가 회사 로비에서 L을 만났다. L은 늘 그렇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L: 글몽씨, 좋은 아침이에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오느라 힘들었죠?


나: 아, 그러게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어요. 오늘도 일찍 출근하셨어요?


L: (웃음) 네! 미리와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아참 어제 보고서는 잘 끝났어요? 제가 끝까지 내용 봐드렸으면 좋았을텐데 마음에 계속 걸리더라고요.


나: 덕분에 잘 마무리했어요! 처음에 알려주신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걸요!


L은 내가 여지껏 본 사람들 중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 작성하는게 어려워서 L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끝까지 완성한걸 도와주지 못한것에 대해 내내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L: 다행이에요! 글몽씨 커피 한잔 드릴까요? 저는 어제 일을 다 못하고 퇴근해서 오늘은 또 열심히 달려야겠어요(웃음).


나: 혹시 어제 저 신경써주시느라 일 못한거 아니에요?


L: 아 아니에요~ 제가 일을 천천히해서 그래요. 전혀 신경쓰지 마세요! 모르는거 있으면 꼭 물어보시고요!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L씨는 어제도 야근을 한듯했다. 야근뿐만 아니라 그는 주말 근무도 자주하는 편이었는데, 업무량이 많은 것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업무를 도와주다가 정작 자신의 업무를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의 업무를 도와주는 그가 너무나 고맙고 천사같지만, 자신의 업무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남을 돕는 그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나는 이런 점이 고마우면서도 뭔지 모를 부담감도 느껴져서 웬만하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료들 중에는 그의 이타적이고 배려심있는 면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있었다. 본인이 할 수 있음에도 찾아보지도 않고 바로 L에게 직진하는 것이다.


K: L씨, 있잖아. 하 정말 왜이렇게 일이 많은지 모르겠어.


L: K대리님 무슨 일 있으세요?


K: 아니, 내가 이번에 프로젝트를 받았는데 말이야. 내일까지 과장님이 내용 정리해서 올리라고 하더라고? 부장님께 보고할거라고. 근데 내가 한번도 해본적 없는 종류라서 뭘 어떻게 정리하는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L: 아.. 그럼 제가 한번 봐드릴까요?


K: 응? 자기도 지금 바쁜거 아니야? 괜찮은데, 그럼 어떤건지 한번만 봐줄래?


이런식이다. K가 나쁘다고 하는것은 아니지만,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고 바로 L에게 물어보는 것은 L이 어떻게든 해결해줄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L씨는 K대리의 업무를 유심히봐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 건은 신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라 다들 처음 접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L도 잘 모르는 분야인것이다. 도움을 못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L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K대리에게 더 찾아보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K대리는 못이기는척 L에게 프로젝트를 넘기게 되었다. 윗선에는 어떻게 보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업무시간 내내 다른 사람의 일을 알아봐주고 찾느라 자신의 업무를 하지 못한듯했다.

그날은 나도 마감할 업무가 있어 L과 같이 야근을 하게 되었고 그에게 커피 한잔을 건냈다.


나: 오늘도 야근하시는거에요? 너무 힘드시지 않아요? 주말에도 나오시는걸로 아는데..


L: (웃음) 맞아요. 힘들긴한데, 제 업무를 제대로 하질 못해서 남아서라도 하고 가야죠!


나: 저.. 근데 저번에 저 일 도와주신것도 너무 감사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세요?


질문이 혹시나 무례하지 않았는지, 걱정했지만 미소천사 L씨는 전혀 개의치 않아보였다.


L: (웃음) 아, 그쵸? 제가 오지랖에 좀 넓어서 다른 사람들 일에 좀 관심이 많아요. 어렵다고 도움을 청하는데 외면하기가 어렵다라고요. 그리고 잘 해결된거보면 제 마음도 편하고.


나: 근데 정작 L님이 해야할 일을 뒤로 하게 되니까 스스로가 힘들지 않으세요? 저도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에너지가 많이 소진될거 같아서요.


L: 집에가면 쓰러지듯이 기절하지만, 괜찮아요! 사람들이 저로 인해서 편해지면 그걸로도 만족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웃음).




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L씨가 보이는 성향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 번째, 타인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L씨는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느끼면 그것이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인다.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할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도와야 마음이 편해지는’ 공감 기반의 행동을 보인다.


두 번째,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거절하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걱정이 큰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보다 남의 업무를 우선순위에 두고,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스스로의 업무가 밀려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남이 편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편해지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크게 느낀다. 즉, 타인의 긍정적인 반응이 L씨에게는 중요한 자기 확신의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어떤 심리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 과도한 ‘착한 사람 역할’ 유지 욕구

일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도움 잘 주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처럼 자리 잡는다. L씨도 타인을 돕는 행동이 단순한 친절을 넘어 '그래야 나다운 것 같다'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 관계 속에서의 안정감 추구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은 일종의 관계 안정 장치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면, 그 관계는 갈등 없이 편안하게 유지된다는 믿음이 있을 수 있다. L씨는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했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불편함이나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 자기효능감의 외부 의존

자기효능감(“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을 스스로의 성취보다 타인의 반응에서 더 얻는 사람들이 있는데, L씨가 “도와줬는데 잘 해결되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 것도,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편안함 → 타인의 감사 → 자신의 만족이라는 구조에서 확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서적 회피 또는 자기감정의 후순위

본인의 어려움이나 피로를 ‘괜찮아요!’라는 미소 뒤로 감추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에,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휴식이나 경계 설정을 쉽게 하지 못한다.






L씨를 바라보고 있으면, 친절함이라는 것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누가 부탁하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먼저 다가간다. 때로는 그 마음이 자신을 조금 힘들게 만들더라도, 누군가의 하루가 가벼워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미소를 건넨다.


하지만 사람의 진심은 늘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피로가 있고, 한 번쯤은 솔직히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L씨는 자신의 어려움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떠올리고, 그것이 익숙한 만큼 스스로도 모르게 그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친절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그 너머에 있는 마음의 무게를 놓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친절한 사람에게 더 부탁하기 쉬워지는 것도, 그들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결국 서로의 리듬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주는 데 익숙하고, 누군가는 받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진짜 건강한 관계는 한쪽의 헌신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무리 없이 버틸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싶다.


L씨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나 역시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