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
서운함은 대체로 사소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연락이 늦어졌을 때 혹은 내가 한 말이 가볍게 넘겨졌을 때, 분명히 기대했던 반응이 오지 않았을 때 등등.
서운함은 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도 완전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다만 마음 한쪽이 접히는 감정에 가깝다.
이 감정이 더 다루기 어려운 이유는 서운함은 대부분 기대에서 오기 때문이다.
상대가 이 정도는 알아주길 바랐고 이만큼은 해주길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말로 꺼내지지 않았고 결과만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서운함은 자주 이렇게 변한다.
“내가 예민한가?”
“이 정도로 서운해하는 내가 문제인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데 판단만 늘어나는 것이다. 서운함을 오래 쌓아두고 방치하면 관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예전만큼 기대하지 않게 되고 대신 거리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지만 마음은 이미 한 발 물러서 있다.
그래서 서운함을 느낄 때 필요한 건 참는 것도, 바로 따지는 것도 아니다. 먼저 이 감정을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다.
감정노트에 서운함을 이렇게 적어본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그 기대를 상대는 알고 있었을까
이 감정의 이름은 정말 서운함일까, 아니면 외로움일까
지금 이 감정은 말해지길 원하는가, 정리되길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서운함은 ‘상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말하지 않은 기대와 설명하지 않은 마음 그 사이에서 생긴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서운함은 관계를 망치기 위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생기는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말하기 어렵다.
오늘 누군가에게 서운함이 남아 있다면 그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적어보자.
말하지 못한 기대 하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 덜 아프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