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14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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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도시는 늦은 밤에도 완전히 잠들지 않는다. 불이 꺼진 창문 사이로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빛이 새어 나오고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의 밤을 알지는 못한다. 오늘 소개할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전쟁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화면 속에는 단지 밤늦은 식당과 몇 명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한 감각이 생긴다. 장면은 평온해 보이는데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서늘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공간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이 천천히 스며든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도시의 풍경을 자주 그렸다. 그러나 그의 도시에는 늘 이상한 정적이 흐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있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다. 화면 속 식당은 밝게 빛나고 큰 유리창 너머로 내부가 훤히 보인다. 하지만 그 밝음은 따뜻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차갑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식당 안의 인물들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도시는 연결된 공간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각기 다른 섬처럼 떠 있는 것 같다.

출처: 구글[에드워드 호퍼, 밤을 새우는 사람들]


*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

호퍼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화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비교적 늦게 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유럽을 여러 차례 여행하며 미술을 공부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실험이나 급진적인 양식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매우 평범한 장면들을 그렸다. 주유소, 호텔 방, 기차역,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는 이상하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이 흐른다. 호퍼는 도시와 인간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포착하는 데 능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서로 가까운 공간에 있으면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창문을 바라보거나 생각에 잠긴 채 고요하게 머물러 있다. 마치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작은 내면의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국 사회가 빠르게 도시화되던 시기였다. 거대한 도시와 현대적 삶의 속도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더 고립된 감각을 경험하기도 했다.


호퍼는 그 감각을 극적인 사건 없이 포착했다. 강한 감정이나 서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빛, 공간, 침묵 같은 요소들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드러냈다.


1942년에 발표된 Nighthawks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으로 여겨진다. 늦은 밤 도시의 식당 안에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장면이지만 그 사이에는 묘한 거리감이 흐른다. 이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도시 풍경이 아니라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처럼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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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하여]


Nighthawks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빛’이다. 어두운 거리 한가운데 유리창을 통해 식당 내부의 형광빛이 강하게 흘러나온다. 그 빛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외부와 분리시키는 경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식당 안에는 네 명의 인물이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뚜렷한 상호작용이 보이지 않는다.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잔을 바라보고 있고 또 다른 인물은 창밖을 향해 앉아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이 장면은 꽤나 익숙하다. 도시에서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지하철, 카페, 거리, 식당. 그러나 그 대부분의 관계는 스쳐 지나가는 접촉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도시적 고독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수는 많지만 관계의 밀도는 얕아지는 상태.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오히려 멀어지는 역설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고독은 특별한 사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밤 속에서 형성된다. 이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는 것.


사람은 완전히 혼자일 때는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으면서도 연결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더 또렷하게 고립을 느낀다.


이 그림의 인물들은 단순히 밤늦게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뒤늦은 밤의 도시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밝은 창문이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지나칠 때면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고독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밤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