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를 지도로 펼친 제주여행 이야기
“삑, 삑, 삑, 삑, 또리릭~ 철컥, 쾅!”
“털썩, 휴.,.”
아침부터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와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간은 12시쯤, 이 시간에 집에 있는데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자신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 백주 대낮에도 집에 있을 수 있는 남루한 자격이 지금 나의 것이라니’
공기업 입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한 달이 좀 더 지났을까. 불행하게도 시작할 때 가졌던 확고함이 꽤 희미해져 있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쌓으려고 스스로를 몰아세운 태도의 말로인지, 휴식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주중, 주말 없이 무식하게 밀어붙인 판단은 스스로에 대한 미련한 믿음이었고 그것은 예전만 못한 체력, 정신과 결탁하여 나 자신을 자꾸 멈춰 세우는 결과로 돌아왔다.
29살의 나이에 이렇게 정처 없는 사람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을까. 실체가 없는 아니 어쩌면 스스로 실체가 없는 것이라 믿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설정해둔 방향이 너무 쉽게 흔들릴 때마다 심란해지고, 어떤 사람의 어떤 이야기를 듣는가에 따라 나 자신의 정체성이 가면을 바꿔 쓰듯 달라지는 기분이다. 분명히 향해가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이 나를 정처 없게 만드는지. 잠이 들 때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불편해진 지 오래다.
“내 생각엔 넌 뭔가 차선을 많이 택하며 살아온 것 같아. 욕구를 우선적으로 쫓지 않았다고 할까?”
불현듯 얼마 전 형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이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평생 그림쟁이에다가 지금은 전시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밤낮과 주말의 경계가 붕괴된 7년 차 프로 직장러다. 터진 맹장을 부여잡고 새벽까지 일을 마감했다던 영웅적 일화가 유명하다. 물론 당시에는 맹장이 터진 줄은 몰랐으며 자기가 119를 불러 응급실에 실려 간 뒤에나 그것이 맹장이었는지 알았다고는 하지만 아니 무슨 119가 택시도 아니고, 그렇게 바쁘게 일하면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아무튼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한 번은 형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슬슬 물이 들어와 철수할 때가 되자 ‘가만있어봐 그림 좀 그리게’라고 너스레를 떨더니 해변에 낚시의자를 펼쳐 놓고 풍경을 그리는데 그 모습이 참 멋있더라. 미술적 행위를 일보다 더 깊은 의미로 삶 속에서 영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형의 일을 보고 나는 종종 그것을 천직이라고 말한다.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관점에서다.
욕구라는 말, 본능이 인간의 보편성이라면 욕구는 개인의 특수성일까. 그렇다고 하면 외면하기 어려운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 욕구를 탐하는 것을 항상 실체가 없는 미래로 미뤄둔 것은 아닐까? 주변을 맴돈 것인가?, 무엇이 중심에 있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뭔가 선명해 보이지는 않은 기분이다.
‘난 지금 뭐가 하고 싶은가?’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흘러가는 감정을 확인했다. 어쩌면 아주 기초적인 단계서부터 욕구를 따라가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오늘보다 가까운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욕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다. 그것은 충동적이라기보다는 발생하는 나 자신의 솔직한 욕구에 배경을 깔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연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주도’
제주도가 떠오른다. 살면서 4번이나 다녀온 정서적 안식처. 제주도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이 참 좋은 곳이다. 거리로는 가장 멀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 가장 멀리 떠날 수 있으면서도 비행기를 타는 덕분에 역으로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심에 의심이 생기기 전 상상을 눈앞에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은가? 몇 번이나 혼자서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거의 항상 곧바로 ‘굳이 왜?’라는 생각이 따라왔었기 때문에 매번 시작도 하기 전에 단념하고는 했었다. 항상 그런 식으로 혼자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머무름이 타당해지기 전에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제주도에 가자. 당장’
시간은 1시 30분 정도를 향하고 있었다. 당장 인터넷을 켜서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비수기라 그런지 티켓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몇 개의 항공사를 비교해 대충 아귀가 맞는 가격과 시간 때를 살피다 당일 4시 30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취소 불가 티켓을 끊었다.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떠날 채비를 하기 위해 가방을 열고 뭐가 필요한지를 대충 생각해보다가 떠오르는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가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 속옷 3벌
- 양말 4켤레
- 칫솔
- 휴대폰 충전기
- 책(책은 도끼다),
- 일기장, 필기구
- 이어폰
- 잘 때 입을 위아래 옷.
- 블루투스 스피커
종류에 따라 가방의 여러 공간에 물건들을 나누어 넣으며 짐을 쌌다. ‘뭐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딱히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가벼운 잠바 하나를 집어 입고 미련 없이 집을 나왔다.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
다행히 집 근처에서 김포공항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정류장은 걸어서 15분 정도에 있었고, 버스를 타고 약 1시간을 가야 했다. 그렇게 되면 3시 반쯤 공항에 도착하게 되니 발권과 수속을 하기에 시간이 충분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아직 집에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라 병원에 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약을 타러 병원에 간 상태였다.
“응 아들~”
“응 엄마?, 나 제주도 갔다 올게.”
“제주도? 갑자기 웬 제주도~ 여행?”
“응.”
“어디서 자게?”
“몰라, 가면서 알아보게.”
“아이고(웃음) 그래, 알았어, 가서 잘 쉬다와~”
엄마와의 통화는 몇 마디 만에 끝이 났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 쿨한 사람이다. 살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지금 이렇게 아들이 남루한 상태여도 그 태도가 참 일관적이다.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다가도 믿음으로 느껴져 고마워지게 되고, 반대로 고맙다가 서운해지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정류장에 가까워져 있었다. 제주도에 가면 뭘 할까, 풍광을 즐기고 싶고,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러기엔 뭐가 좋을까, 스쿠터를 또 타볼까? 20대 중반에 친구들과 제주도를 스쿠터로 일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태풍이 오기 직전이었던 지라 일주하는 내내 비가 왔었다. 우의를 입고 돌아다녔었는데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빗줄기가 몸을 때리는 게 너무 아파서 가다가 멈추고 가다 멈추고를 반복할 정도였다. 그래서 날 맑을 때 다시 한번 제대로 돌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했었다.
‘이번에는 스쿠터를 제대로 타고 오자. 풍광도 즐기고 가고 싶은 곳도 가고. 후훗,’
해안 길을 스쿠터로 달릴 생각을 하니 설레는 감정이 점차 마음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마음만은 이미 제주에 도착해있었다. 정신을 보내 놓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몸의 차례. 하지만 이 남루한 육신을 보내줄 버스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 나는 그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반전의 복선이자 무계획한 자가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 내 여행 인생에서 거의 매 번 찾아오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 바로 ‘비’였다. 눈꽃 모양의 빗물이 스마트폰 화면에 떨어져 맺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 순간 나는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던 김어준 씨가 어느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 강연의 끝에서 청중들을 웃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그 말, 본인은 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 던 그 말, 그 한마디가 나의 머릿속을 훅하고 스쳐 지나갔다.
‘이것들이 계획을 세웠어(비웃음)’
신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